"'신화적 역사'와 '역사적 신화'", 이 타이틀로 글을 냈었다. 2016년에.



이 논문을 볼 수 있는 곳은 여기, 한신대 종교와문화연구소. 간행물>종교문화연구>26호 신화와 콘텐츠..로 들어가 아티클 클릭.


이 글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다룬 사례들을 활용해서, "승자의 역사와 신화적 역사"의 논의를 확장해서 완성한 것이었다. 이 글에서 나는 '신화'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화'라는 게 '종교' 개념과 마찬가지로 역사-문화적 특수성을 지닌 것으로 사람들이 가진 어떤 일반성을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화 개념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전범으로 하는 인간화된 신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그리스-로마 신화만 하더라도 그냥 '신들의 이야기'로 포괄할 수 없다. 도시 건설 이야기, 영웅의 성장 이야기 등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 개념을 다른 문화권의 신비한 이야기에 적용할 때, 신화 개념 적용의 타당성을 묻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로마 신화가 '제대로 된 신화'이고 나머지 지역의 신화라고 불리는 것들은 아류라는 식의 평가를 내리기 마련이다.


'한국 신화', 이 말은 '한국의 신화'를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 들어간다고 여겨지는 이야기에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제왕운기》 《동국이상국집》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규원사화》  등의 기록물 속 이야기, 민간전승, 무가 전승 등을 '민간 신화', '무속 신화' 등으로 부르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구분은 기록 형태에 따른 구분이고, 내용상 우주창생신화, 영웅신화, 문명기원신화, 건국신화 등등으로 분류된다(두백, '한국신화').


지금이야 이런 분류학이 정리되어 있지만 '신화' 개념이 우리에게 낯설던 개항기에는 우리에게 신화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우리 안에서 신화를 발견하게 되었다. 민담과 전설로 분류되던 것이 신화로 인정되기도 했다. 이 세 범주의 경계는 여전히 모호하다.


신화는 자연적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 개념이고 역사성을 지닌 개념이다. 애초 mythos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 플라톤 시대 이전에 logos와 대비되어 '진실한 이야기'로 이해되었다. logos는 '기교적이고 수사적인, 남을 속일 수 있는 교활한 이야기'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관계가 역전되는 것은 플라톤 시대에 이르러서이다. 브루스 링컨, 《신화 이론화하기》 참고. 호메로스 시대의 '뮈토스'는 권위 있는 '진실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는데, 그 시대에도 '거짓 이야기'와의 대비는 존재했다. 이 시대의 '진실'과 '거짓'은 일어난 사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링컨이 헤시오도스의 글에서 읽어내는 용례를 보면 전쟁, 법정이라는 '싸우는 자리에서의 공격'과 관련되고 있다. 그것은 권력자 남성의 발화이기도 하다.


신화가 민족의 발견과 함께 새로이 각광을 받으며 다시 주목될 때도 이 말에 대한 '긴장'은 지속되었다. 민족의 고유한 심성을 담은 '진실한 이야기'라는 해석과 '만들어진 역사'로서의 허구적 이야기라는 해석이 대립하였다. 신화에 대한 관심은 그러나 전자의 관점에서 합리화될 수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제3세계의 '자국 신화'는 이러한 관점에서 발굴 혹은 발명되었다.


신화 개념은 그렇게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서 달리 보일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그러니 '신화'를 달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신화라고 불리는 핵심 모델(그리스-로마 신화)과 그 유사물(단군 신화 등등)로 '신화'를 상상할 게 아니라 신화를 둘러싼 긴장의 특성, 그것의 일반성에 근거해서 신화를 바라보면 어떤가?


신화, 그것은 '진실한 이야기'이자 '거짓 이야기'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자, 인간들은 이런 이야기를 언제 만들어 내던가? '진실이자 거짓 이야기'


1. 진실이자 거짓.


정말 순수하게 '문학'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그 이야기는 사람들이 모두 '지어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가 현실의 어떤 실상을 '비추고 있다'고 생각되면 '참된 이야기'라고 여긴다. 문학도 그렇다면 넓은 범주의 '신화'로 상상할 수 있을까? 모든 문학 작품이 이러한 특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모두는 아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진실한 이야기'로 소비될 수 있지만, 거기에는 항상 '유행'의 측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지고 진실성을 어필하는 면이 있다.


2.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인다.


'힘'을 가진 이야기, 근대에는 단연 '팩트'가 그러한 힘을 가진 이야기의 '기본'이다.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실'에 기반을 둬야 한다. '사실에 관한 이야기', 우리는 역사를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출처: http://memolition.com/2017/01/17/9-historical-myths-we-need-to-stop-believing/


역사는 '어떤 판본'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통상 '다른 버전의 기억'을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역사가들의 '합의'에 의해서 말이다. 이 합의의 과정은 보다 '과학'스럽게 표현될 수도 있지만, data의 객관성을 판단하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점'이라는 측면에서의 '주관성'은 줄곧 남겨진다.


사실은 사실이지만 항상 '누군가의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는 통상 앞의 수식어인 '누군가의'를 생략한 '순수한 사실'인 양 행세한다. 세계사가 유럽-미국사 중심인 것이라든지, 과거의 역사가 왕들의 역사, 정치사가 중심이었다든지, 그래서 역사를 두고 '승자의 역사'라고 부른 것을 보면 이것이 명확히 드러난다.


그럼 '민주적' 사실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승자의 역사와 신화적 역사"라는 글에서는 이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신화적 역사'와 '역사적 신화'"라는 글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조금 해 보았다. 현실 민주주의가 '다수의 결정'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맹점이 드러나듯이 이론적 의미의 '민주적' 사실은 존재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수의 결정'은 한정된 정보, 정보 접근성의 차이 등으로 인해서 쉽게 '소수의 결정'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항상 '속임수', '은폐', '음모'가 피어난다.



이런 이야기는 '신화'나 '역사'의 한계를 사유하기 위한 게 아니다. 그것이 서로 분간될 수 없는 특성이 있다는 점, 그것이 인간의 인지능력의 한계 탓이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점, 그러할 때 '신화'를 어떻게 바라볼 필요가 있는지, '신화연구자의 일'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데 주안점을 두고자 했다.


*위 글의 논의에서 '신화적 역사'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믿고 있는 허구로서의 역사'를, '역사적 신화'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허구로 받아들이는, 과거의 사람들이 진실로 받아들인 이야기로서의 신화'(통상 우리가 이야기하는 '신화'를 이 개념으로 포착하고자 함)를 말한다.


신화연구자는 모두가 긍정할 수 있는 '진실'로서 과거의 이야기를 재편하는 데 골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화하고 정당화를 위해 정보를 선택하는 과정은 우리의 인지처리 방식의 아주 기본적인 전략으로 개인 수준이나 집단 수준이나 어김없이 나타나며, 인간 집단의 정보처리 방식이 근원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은 변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화석화된' 이야기, 우리가 통상 '신화'로 이해하는 그런 이야기만을 신화연구자의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도 부조리해 보인다. 지금 '진실이자 거짓, 거짓이자 진실'로 판단되는 이야기들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사라지거나 지속되거나 하고 있다. 또 그런 이야기들이 각 학문 분야의 '전제'가 되기도 하고, 특정 사회의 '신앙적 사실'이 되기도 한다.


성상 파괴적 기획이나 상징화/미화의 기획('고유한 신화'라거나 '집단정신의 보고'라거나 하는 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신화' 개념의 해체, '역사' 개념의 해체 작업이기도 하다.


그 자리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지금 어떻게 '우리만의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그것이 함의하는바, 그리고 공동체의 이익 혹은 '보편적 가치'로 상상되는 기준, 즉 '어떤 신념'에 입각한 진단과 평가를 하는 것이 되겠다.


1. '신화'라는 대상의 변화...지금 우리가 '진실'로 받아들이는, 그러나 다소 허구적인 이야기 모두


2. 성상 파괴적 기획/상징화 기획이 아닌 문화 비평적 기획


문화 비평적 기획에는 다분히 '신념'에 입각한 '새로운 이야기 만들기'의 차원이 존재한다. 신화연구는, 그런 의미에서 


3. 하나의 '참여(앙가주망)'일 수밖에 없다.


사실 "'신화적 역사'와 '역사적 신화'"라는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신화'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 화석화된 허구적 이야기에 대한 논의로 보였기 때문이다. 학위논문을 쓰면서 이 영역에서도 대상의 확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신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신화'라는 표제를 전면에 내 건 작업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이 여전히 '역사적 신화'를 지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신화적 역사'에 훨씬 관심이 있다.


그러니 나의 연구 작업에 대해 '이건 역사학', '이건 정치학', '이건 국적불명'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쓴 논문도 이렇게 '퇴짜'를 받았다. 한 심사자는 해당 논문이 '국가-지역'의 차원에서 상징화를 논하고 '종교적 상징화'를 다루지 않으므로 다른 저널에 투고하라고 안내해 주었다. 연구재단에 연구과제를 신청할 때도 종종 듣는 말이다. 종교연구자인가? 아니면 다른 분야의 연구자인가? 이건 우리 영역에 맞지 않는데? ...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분명 기성의 과점과는 다르게 '종교'와 '신화'를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을 중심에 두면, 연구대상을 제도화되고 기성화 된 종교에만 국한할 수 없고, 화석화된, 모두가 허구라고 생각하는 그런 이야기로서 신화에만 국한할 수가 없다. 지금도 사람들은 그런 개념에 포착되지 않는 방식으로 종교적 삶을 살아가고 신화적 이야기를 향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숭고한 신앙심이나 집단의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이익을 얻기 위해서, 이겨 먹기 위해서, 공허함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그저 편하기 때문에 그러고 있다.


동시대인과 소통하는,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증진하는 그런 연구만이 '쓸모'의 가치를 확인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종교학이, 이러한 신화학이 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학과 신화학의 경계마저도 교란하는 그런 것으로서. 그래서 나는 특정 학문의 담장 안에서 나올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인간'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다고 믿는다(이 믿음의 전도사는 분명 내게 구형찬 박사였다).


글: 심형준


※ 본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STEINSFACTORY)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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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의 골자는 중반부 이후에 제시된다.


우리는 온라인 정보가 가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할까. 학계에서는 이를 ‘웹 신뢰성 평가’라고 부른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와 ‘전문성은 있는가’ 등 2가지 기준과, ‘발화자’(출처가 어딘가), ‘말의 내용’(편향된 내용은 없는가), ‘디자인’(웹 디자인이 조악하지 않은가) 등 3가지 내용을 조합해 6가지 영역의 매트릭스를 동원해(물론 의식적으로 동원하는 이는 없겠지만) 정교한 평가를 내린다. 문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이런 매트릭스가 쉽게 헝클어진다는 점이다. 트윗에 리트윗을 거듭하거나 카톡이 전달에 전달을 거듭하면 어디까지 사실이고 거짓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을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대형 서비스 업체에 맡기는 방식으로 해결해왔다. 이런 업체들이 짠 알고리즘이 선별해주는 검색 서비스 추천이나, 소셜네트워크의 뉴스피드 등의 정보를 믿어왔다. 최근 가짜뉴스가 화제가 된 이유는 갑자기 가짜가 판을 쳐서라기보다, 이런 우리가 믿고 맡긴 ‘판단의 대리자’가 정보의 평가에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앞엔 두 길이 펼쳐져 있다. 하나는 더 강력한 대리자를 만들어서 판단을 계속 맡기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맡겨두었던 판단을 자신이 좀더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무엇이 옳은 길일지 판단하긴 쉽지 않지만, 편하다고 누군가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기묘한 정치 지도자에게 핵폭탄을 맡기는 것처럼 말이다.


'카더라 통신'이 리트윗, 공유 등으로 전파되어 정보의 본래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 '진실'과 '거짓'을 어떻게 판별하는 것이 좋을까?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 전문가에게 판단을 맡기는 경우에도 한계가 있으며, 주체적인 비판적 판단을 통해 보완하고자 해도 그게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저널리즘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가짜 뉴스 문제는 중요한 문제다. 저널리즘이 '팩트'에 기초해 있지 않다면 '객관적 정보 전달'로서의 언론의 기능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우리는 저널리즘이 팩트을 어떻게 은폐하고 왜곡하는지 낱낱이 보아왔다. 그것이 특정 정치세력이 집권하여 두드러진 문제라면 정권교체가 된 지금에 와서는 충분히 개선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 따라서 이제 언론의 그러한 왜곡 행위는 '과거의 일'이 될 것이라고, 또는 일부 보수적 정치색의 언론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선명하지 않다. 한겨레신문 등은 현 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가 고초를 겪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겨레신문을, 과거 정권의 입맛에 따라 국정원이 앞장서서 이미지화한 '한걸레'라는 이름을 써서 비난하였다. 사람들은 '입진보'를 운운하면서, 언론이 기계적 중립의 태도를 갖는 것을 문제 삼았다. 이러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정보의 '객관성'이 판단되는 현실을 비춰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언론의 주장, 정보라는 게 언론인(혹은 그가 속한 집단)의 가치관에 의해 규정되는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사실상 저널리즘에 '순수한 정보'는 없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의 존재는 인정할 수 있으며, 그것이 '사회적 사실'로서 통용될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자체가 하나의 관점의 산물인 점은 부정되지 않는다.



'구술성'은 구전전승을 연구하는 분야에서 주로 논의된다. 구전은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하고, 그래서 상황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원본을 생각할 수 없는 정보 전달 체계이다. 문자전승은 '기록된 문자' 덕분에 기억 의존성이 약화되고, 정보의 고정성이 강화되며, 그래서 정보의 축적이 용이하게 되어, 원본을 따질 수 있게 된 정보 전달 체계로 이해된다. 그런데 '가짜 뉴스' 문제는 문자전승의 이러한 특징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이는 다분히 문자기록의 양적 팽창이 만들어 낸 효과이다.


일찍이 월터 옹은 그의 책 Orality and Literacy(1982)에서 '2차 구술성'secondary orality을 이야기하였다. 전자 기술의 발전으로 야기될 일로 그가 염두에 둔 것은 전화, 라디오, TV 같은 매체에서 문자 정보를 근거로 만들어진 구술 정보의 차원에서 나타나는 구전성을 말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의 발달이 '텍스트' 자체의 구전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든다.


텍스트 생산자가 특별한 전문가가 아닌 시대, 전문가 생산 텍스트와 비전문가 생산 텍스트가 그 중요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매체(특히 인터넷, 소셜 미디어 등)에서 유통될 때, 더 이상 '텍스트 정보'의 특별한 가치가 유지될 수 없게 된다.


말로 소문이 전파되듯이 이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텍스트 소문'이 전파되고 있다. 과거에는 분명 그러한 성격의 텍스트 정보라고 하더라도 사회적 권위가 뒷받침된 정보의 탈을 쓰고 있었지만(신문, 책 등), 지금은 그보다 더욱 광범위한 영역에서 많은 양의 새로운 정보와 가짜 정보가 뒤엉켜서 '권위' 자체를 식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럴 때 정보의 신뢰도 판단은 구술정보의 신뢰도 판단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의 '뇌'라는 정보 처리 체계의 한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서 나온 정보(가령, 그런 사람이 공유한 정보), 내가 믿고 싶은 정보(정치적 입장 등), 과거에 익히 사람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인 정보와 연결된 정보, '위험예방체계'를 자극하는 정보(공포는 직관적 판단을 쉽게 자극), 기억하기 쉬운 정보(극적 구조를 가진 스토리텔링이 된 정보) 등이 주목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전략이 정보의 진실성을 정확하게 판단하기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이 한계를 넘어서게 해 줄 수 있는 장치(인공지능으로 신뢰도를 평가한다든지)를 개발해서 대안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오염과 오류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인간은 언제나 '신화의 시대'를 살아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제 정말 '신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과거에는 문자 정보의 '객관성'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화'가 역사가 되는 것에 별 저항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문자의 그러한 가치가 뉴미디어 환경에서 증발해 버리면서 객관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 버렸다. 신화처럼 '그럴듯한 이야기'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학문적 논의의 차원은 이와 질적으로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 거기에는 항상 '검증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의 한계를 갖는다. 어떤 정보나 이론은 검증되기까지 아주 긴 시간을 요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의 공론장에서는 '검증'이 완료되기 이전에 이미 정보가 확산되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신뢰도가 평가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의 차별성이 잘 수용되기 어렵다.


2차 구술성의 시대에 종교연구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을 던져 볼 필요가 있겠다.


글: 심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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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최근(2004년부터 현재까지) ‘밀양’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소환되었을까? 구글 트렌드로 알아보면 ‘밀양’이 어떤 사건들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왔는지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위의 그림을 보면 밀양에 대한 관심이 가장 폭발적이었던 때는 2004년 12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밀양에서 있었던 사건은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2004년 밀양’으로 구글링을 해보면 볼 수 있는 핵심 정보들이 해당 사건에 관한 것들이다.



‘밀양’을 구글링 해보면 영화 〈밀양〉 정보를 먼저 볼 수 있다.



〈그림1〉로 보면 2010년, 2013년, 2014년, 2016년에 밀양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2010년 12월과 2016년 6월에는 ‘신공항’ 이슈가 있었고, 2013년과 2014년에는 ‘송전탑’ 이슈가 있었다. 2016년 2월에는 ‘시그널’이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치면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새로이 조명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보면 밀양이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사건은 단연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밀양’에 관해서 이 사건과 함께 불러일으켜진 관심을 넘어서는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을 때(2016년 2월)도 역시 이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기본 정보). ‘집단 성폭행’ 사건 그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다른 집단 성폭행과 질적으로 달라지게 만든 일들은 사건이 문제시 된 이후에 나타났다. 은폐, 은폐, 은폐, 피해자의 2차 피해 등등. 가해자 부모의 막말, 피해자 배려 없는 경찰 수사, 가해자에 대한 온정적 판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부조리한 모습을 사람들이 확인했던 사건이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본 사람들의 추악한 모습을 우리 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유력자에 의해서 저질러진 사회적 물의는 약하게 처벌되며, 어떤 사람들은 예외적으로 ‘나라를 위해서’ 처벌을 면제받는 특혜까지 받기도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처지가 뒤바뀌는 것은 너무나 쉽게 목격하게 된다. 피해자가 2차 피해 등 제대로 사회에 적응하여 살아가지 못하는 반면 가해자는 무탈하게 살고 있는 모습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가해자들이 그러한 행위를 왜 하게 되었는지는 사실 물음으로 등장하지도 않았다. 큰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어떻게 잘 해결할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그와 유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뭐 그런 고민이란 것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집단 성폭행 사건의 전형으로 기억되는 '밀양 사건'


어쨌든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준 사건이고, 성폭행 사건 중에서도 손꼽히는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서는 하나의 모델이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밀양'하면 떠올리는 가장 핵심적인 이미지를 이 사건이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지역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사건은 '강력한 환기력'이 필수 요소일 것으로 보인다.



밀양을 대표하는 이 사건 외에 밀양이 전국적 관심을 받은 것은 한창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이 있던 시기이다. 



그 다음이 ‘신공항’ 이슈이고 그 다음 정도가 영화 ‘밀양’이다. 



밀양 송전탑 사건


밀양 송전탑 사건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해당 지역에 송전선로가 지나는데, 보상을 더 받기 위해서 반대 시위가 이루어졌던 사건 정도로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해당 사건은 총체적 문제를 안고 있는 사건이었다. 아래의 동영상에서 답을 들을 수 있다.




이 사건이 비추는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테일을 좀 살펴야 한다.


밀양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존(재산권, 조망권 등)을 위해 일어섰기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로 비춰질 수 있다. 한국이 전기가 부족하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핵발전소가 필요하고,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대량의 전기를 송전하기 위한 설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의 경우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많은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서 이러한 설명을 일방적으로 듣기 때문에 그러려니 생각한다. 실체가 어떠한지는 알 길이 없기도 하다.


위 동영상에서 하승수 변호사의 설명 중에 나오는대로 한국의 전력소비량이 급증하였는데, 그 중요 이유는 산업용 전기료가 저렴해서다. 정부에서 전력 수요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족' 운운할 정도로 전력 소비량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체 전력 소비량을 인구당 소비량으로 보면 한국이 주요 선진국들의 소비량을 앞지르고 있다. 이런 결과는 단지 '가정'의 소비량의 증가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산업용 전력 소비량이 큰 폭으로 오른 결과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표가 위의 표이다(출처: "한국 가정용 전기 소비, OECD 절반 불과"). 1인당 전력 소비량으로만 보면 위 표에서 미국에 이어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주거용 전력 소비량을 보면 상황이 정반대이다. 위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전체 전기 사용량의 13.6%에 불과한 가정용 전기는 최대 11.7배의 누진제를 적용하면서 종류별 전기 가운데 두번째로 비싼 요금을 내고 있다. 반면, 산업용 전기는 전체 소비량의 56.6%를 차지하면서도 종류별 전기 가운데 상업용, 가정용, 가로등용, 교육용보다 더 싼 요금을 낸다. 산업용보다 더 싼 요금을 내는 것은 심야용과 농사용 전기뿐이다.


산업용 등 전기 요금을 싸게 해서 해당 종류의 전기를 사용하는 업종에서 전기 사용을 늘린 결과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전은 해마다 전기요금 인상을 이야기하며,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기요금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산업용 전기 요금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수출 경쟁력을 위해서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문제들에 사람들이 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전기 과소비 정책'에 따라서 지방 주민들이 다양한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현실이다. 재산피해, 건강피해가 대표적인 발전소 및 송전탑 인근 주민의 피해 사례다. 이 피해가 본인들에게 돌아올 때는 누구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타인, 지방민, 시골사람, 노인들 등에게 돌아갈 때는 '너희도 혜택을 보는데, 손해 보기 싫다고 하는 것은 이기적이다'라고 비난한다. 실상을 모르고 자기 속만 편한 이야기를 한 셈이다.


밀양 이야기에서 전기 이야기로 다소 벗어났지만, 이 이야기가 밀양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밀양 송전탑 사건은 한국인 다수의 '침묵의 공모'를 통해서 만들어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강정마을, 평택 대추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 자기 몸을 태워 죽음을 맞았다. 2012년 1월의 일이었다.



그제서야 밀양의 싸움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위 그림 참고. 2012년 1월부터 그래프가 다시 나타난다). 많은 경찰이 투입되어 마을 주민들이 끌려나오는 장면이 만들어져서야 사람들이 밀양의 싸움에 관심을 기울였다. 언론이 그러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기레기'라는 표현이 이미 충분히 익숙해진 시기였기 때문에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희망버스'를 통해서 사람들의 연대가 이루어졌다. 2013년에서 2014년의 일이다.





밀양 송전탑이 세워졌지만 아직 반대 운동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탈핵을 위해 싸워왔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위해 싸워왔다. 여전히 150가구가 보상을 거부하며 반대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희망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사람들에게 이 밀양의 싸움이 잊혀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로 밀양 송전탑 철거 혹은 축소의 꿈은 사라져버렸다.


'눈물을 타고 흐르는 전기'에 대해서 사람들은 별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남의 복잡한 싸움에 개입하지 않는 게 상수라고 배워왔다. 괜히 엮이면 골치아픈 일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밀양의 싸움을 힘겹게 해왔던 한 할머니도 마찬가지의 결론에 이르렀다.


〈밀해의 사계절〉에서 김말해 할머니, 도곡마을의 유일한 반대자였던 그녀는 싸움 과정에서 많은 몸의 상처를 얻었는데, 고립되어 고통에 빠졌다. 후회에 사무쳐 김말해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 배운기라... 하나 배운기라...' 나서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는 말이었다. 약자에게 가해진 고통에 대해 다수가 침묵할 때, 이러한 인식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세월호를 설명하는 핵심적 표현이 '가만히 있으라'였다. 나서면 정 맞는 사회이기 때문에 저런 말이 의미심장하게 회자되었다. 우리는 아직 '정당한 저항'조차도, 외면 속에서 불의함만 못한 가치를 갖는 행위로 치부하는 정서를 유지시키고 있다. 밀양 송전탑 사건은 이런 모습을 비춰준다. 순응의 공범자로서 '우리'의 모습을 말이다.


밀양 송전탑 사건은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 비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1차적 환기력은 낮은 지역 이슈였다(전기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국적 이슈이기도 했지만). 권위주의적 정부의 공권력 집행에 문제를 느끼고 있던 대중에게 호소력이 있었던 사건(분신, 행정대집행의 폭력)이 기사회되면서 밀양 송전탑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당대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조건이 이 사건의 환기력을 높인 측면이 있었다. 반면 탈핵 이슈에서는 밀양이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다.


신공항



송전탑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국책사업이다. 땅을 빼앗길 사람들, 공항 옆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지역 개발'과 그 이익을 향유하는 지역 사람들에 의해서 주목된 사업이다. 2016년 여름에 결국 현재의 김해 공항을 확장하는 안으로 결정되었다. 밀양과 가덕도에서 격렬한 시위가 잠시 있었다.


송전탑과 닮은 측면은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밀양 신공항은 2011년 3월에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경쟁지인 가덕도도 역시 경제성 없음으로 판단되어 신공항 계획이 백지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은 설왕설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안은 확실히 지역적 이슈에 불과했다. 타지역 사람들은 영남지역 신공항론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경제성, 환경문제 등 여러가지로 말이 되지 않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런 분석과는 상관없이 지역개발이 가능하다고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난리를 치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이건 확실히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어느 지역이나 특히 상대적으로 덜 개발된 농어촌 지역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세금의 낭비요소나 환경문제 등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 당장 짓고 보자는 식으로 나서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밀양'을 규정하는, 밀양 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되지는 못했다. 계획 단계에서 무산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밀양'



앞서도 보았듯이 '밀양'을 검색하면 영화정보를 볼 가능성이 높다. 밀양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密陽을 'secret sunshine'으로, '비밀스러운 빛'으로 파악하게 함으로써 영화의 공간 '밀양'은 실제 밀양보다는 비유적 의미를 담는 상상의 공간처럼 여겨진다. 밀양이라는 지역 자체를 의미화하는 측면에서 이 영화가 크게 기여했는지는 그래서 의문이다.


'밀양'이 비추는 한국은?


'밀양'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충격적인 사건들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 자극적 정보(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여중생, 집단 성폭행, 2차 피해, 가해자의 적반하장, 경미한 처벌, 경찰의 발언 등, 송전탑 사건의 경우 분신사건, 경찰과 할매할배의 대치와 진압 등)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제대로 구제받지 못했고, 사회 구조적 폭력에 희생자로 남아 있다.


한국 역사의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일제 강점, 미군정, 친일파 득세, 6.25전쟁, 군부정권, 반공주의와 공포정치, 서울의 봄, 5.18, 6월 항쟁, 6.29, IMF 등등. 유사한 패턴이 이 사건들에 내재되어 있다. 악의 평범성, 무사유의 성실과 방조의 문제. 자신에게 부조리한 폭력과 고통이 가해지지 않으면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는 '타자'의 문제이다. 그러한 구조와 시스템을 은폐하는 언어, 만들어진 이야기, 왜곡된 사실을 검증하지 않는다. 그 허구성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것은 귀찮은 일이고, 어려운 일이다. 생각만큼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생각되기 때문에 진실에 다가서는 한 걸음이 무겁다.


밀양은 사회의 문제를 지역의 문제로, 정의의 문제를 숫자의 문제로, 생명의 문제를 돈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주류의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믿으며 안락을 누리는 우리의 감춰진 얼굴에 빛을 드리운다. 그런 의미에서 '비밀스러운 빛'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이러한 수준에까지 밀양의 이미지가 투사되는 것은 아니다. 밀양은 그저 추악한 누군가들의 얼굴만을 비추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밀양이라는 한정된 지역이 그 모든 죄악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드는 우리의 민낯 탓이다.


밀양은 그저 우리의 은폐된 공모를 밝혀주고 있다.


'하나 배운기라...'

'대학 가서는 시위한다고 앞에 나서지 말그라...'

'모난 돌이 정맞는다'

'혼자 잘난 척 하지 마라'

'입바른 소리 하면 너만 손해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


...


그렇게 비춰지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좀 더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다면, 서로에게 연대한다면, 세상은 변할 수 있을까?'


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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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종교인문학 블로그는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매월 내 놓는 종교문화에 대한 한 발 더 들어간 논평과 에세이 등을 '월간 종교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내 놓는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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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돌의 눈'(steinsein)은 연구소 연구원인 심형준 선생님의 '개인 연구노트'의 이름입니다.



종교학 학위를 받고 종종 ‘나는 종교학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종교학자’,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어색하다. ‘학자’는 어떤 활동을 하며 어떤 모습을 하는지에 대한 평소 마음속 이미지와 내가 하는 행동과 모습이 전혀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이 표현은 언제나 어색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도 일부 글에서 ‘종교학자’ 운운한 것이 있으니 낯 뜨거울 뿐이다.


여전히 ‘종교연구자’라든지, ‘인간학연구자’라는 표현이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연구자라는 자의식을 갖는 것은 분명 ‘마스터’에는 이르지 못한 수련 중인,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거나 믿는 것에 여전히 확신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전문가로서 아직은 한참 미숙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학자의 꿈’을 꾸는 연구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 꿈의 가치를 생각해 보게 된 것은 분명 소명의식과 관련이 된다. 그런 생각을 떠올려 본 것은 한종연 뉴스레터로 썼던 글,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종교학의 스펙에 대한 두 번째 단상〉에서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학위를 준비하면서, ‘나의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답답해하기만 했었던 것 같다. 2015년 박사학위논문을 꾸역꾸역 써내고 있었을 때, ‘나의 연구 주제’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렸다. ‘난...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적어도 이전의 내 모습은 아니다.’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생각한 연구 주제는 과거에 내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용은 아니다. 파편들로서는 이미 나의 ‘근본 질문’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2015년, 2016년 그 시기에 과거에 써 놓은 글을 찾아보면서 놀라는 경험들을 했다. 예전에 이런 관심이 있었구나, 이게 지금 내 안에서 이렇게 커나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위 뉴스레터 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앎’은 여전히 존재 지평의 변형이고, 과거의 자신과의 결별적 화해이며, 세계의 변화이다. ‘흔들리는 대지’ 위에서 세계는 탄생하며, 그렇게 聖이 현현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으리라. 소크라테스가 덕을 통해서 정의와 경건을 연결했듯이, 세계의 변형 논리 안에서 세계의 질서는 聖을 피워 올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거기에서 지금 무모하게 ‘종교 밖’의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고 고집스럽게 믿고 있다.



《종교로 보는 세상》에 실린 〈종교학의 스펙〉이라는 글에 붙인 후기에서도 인용한 바 있다. ‘앎’과 존재의 관계, 존재와 기억, 세계인식과 현실감각, 성스러움과 질서, 그런 주제들과 정의(올바름)의 관련 양상, 그리고 그런 현실 감각을 빚어내는 인식체계(인지, 몸, 환경 등)의 일반성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우리의 삶’, ‘나의 삶’으로 되돌아오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 그런 순환 과정을 통해서 지적 성취의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리라는 전망, 아니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종교학 공부를 하면서 내내 걸렸던 문제, ‘내가 지금 하는 것이 내가 사는 세계와 나에게 쓸모가 있는가’라는 의문에 위의 이야기가 나름의 답변이 될 수 있다는 인식에 도달한 것이었다.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종교’를 통해서 ‘인간’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에 긍정적 답변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서 따옴표를 쳐서 종교를 말한 것은 종교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그런 대상으로서의 종교를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 개념에 대한 비판적 이해, 그것이 역사성을 가진 개념이고, 서구 문화권의 구성물이며, 기독교를 핵심 모델로 하고 있으며, 그 확장판이 ‘세계종교’로 나타난 것으로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비춰주는 렌즈는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다음 발을 내딛는 것이 언제나 문제였다. 현실을 왜곡시키는 렌즈로 현상을 분석하는 것의 한계를 인정했다면, 그럼 어떤 렌즈가 필요한가? 이 질문에 적절한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석사학위는 ‘문학 석사’다. 전통에 따른 명명법 일 텐데, 나는 한 번도 그 명칭이 심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소위 ‘객관적 이론화, 일반화’가 어려운 분야의 작업은 죄다 ‘문학일 수밖에 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환기하기 때문이다(이것이 '문학' 비하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설 쓰고 있네'라는 이야기가 다뤄질 수 있는 맥락에서의 '문학'을 말하는 것뿐이다. '문학'은 다른 맥락에서 인간성의 실험장으로서 인류의 값진 정신적 자산의 하나이다). Master of Arts라는 말의 연원과 실질적 의미를 고려하면 ‘문학 석사’는 딱 들어맞는 것 같지는 않다. Art가 기예, 솜씨 정도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맥락에 맞게 하면 ‘인문학 석사’ 정도여야 할까? 그러나 우리는 관습적으로 ‘문학 석사’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으니, 또 그 나름의 의미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 같다.


석사논문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종교학의 ‘과학성’을 ‘근대의 객관적 학문성’ 정도로 이해하고자 할 때, 변함없이 대상의 명료함은 문제가 된다. 서구적 ‘종교’ 개념의 이중성과 이 개념을 사용하는 주체의 위치(제국/민족, 특정 종교 안/밖 등)의 조합수 안에서 복수의 개념이 존재하게 된다. 종교개념의 경계상황이 노출시키고 있는 종교 개념의 복수 상황은 종교 연구자에게도 적용된다. 여기에서 연구자의 개념 선택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연구 대상을 규정하는 방식의 다양성은 해결 불가능한 난제로 남겨지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을 난제로 남겨 놓고, ‘객관적 연구’를 지속한다는 것은 성립되는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타개책이 무엇일지, 해당 글에서는 ‘상상력’과 ‘세계이해의 변화’ 정도로 얼버무리면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정도의 의미를 시사하고자 했다. 당시에는 정말 ‘해법’이 없었다. ‘설득력 있는 소설 쓰기’로서의 인문학적 연구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뿐이었다. 그런 인식을 드러냈던 건 2004년 “쓸모없음의 쓸모”를 이야기한 글에서였다. 5년여가 흐른 상황(2009)에서도 그 문제에서 별 해법을 찾지 못했다.


‘민중의 종교’를 운운하다가 제법 욕을 먹기도 했다(민중의 종교, 그 존재방식). 해당 글을 발전시켜서 논문을 만들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심사에서 혹평을 들어야 했다. 2010년 하반기 종교학회에서 “‘민중종교’에 나타나는 인간의 욕망: 민중의 아편에 대한 재고’”라는 글로 발표를 했었고, 그것을 수정해서 어느 종교학 저널에 투고했다가 그런 평가를 받았다. 이 글은 결국 해체해서 마르크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을 실마리로 해서 ‘아편과 종교’를 이야기하는 글로 바꾸어 “아편(마약)과 종교: 아편의 비유, 그 이면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종교학연구》라는 저널에 실었다.



인간의 종교적 특성을 일반화할 방법, 틀 찾기는 ‘낡은 틀의 재활용’, ‘욕망 개념의 모호성’, ‘어설픈 탈맥락화된 문화 비교’들로 번번이 좌절되었다. 아마 그런 시기에 구형찬 박사의 조언을 여러 번 들었던 것 같다. 별로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진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조언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해 보지 않았다는 게 맞을 듯하다.


인지종교학 이야기가 그 시기 즈음 주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처음 접한 것은 장석만 선생님의 〈종교인류학〉 수업 때였던 것 같다. 2004년 금방이었는데, 그때 제본한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별로 관심을 가지고 보진 않았었다. 한신대 종교와문화연구소,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심포가 이루어졌고 몇몇 의미 있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여전히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환원론에 대한 의심이 하나의 장벽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뇌신경학적 종교연구를 심심치 않게 봤던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너무 조악한 수준이어서 별로 신통치 않다고 판단했다. 학부 때 학내 ‘뇌 주간’ 행사들을 쫓아다녀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뇌신경 치료와 관련된 논의가 많이 다뤄져서 금세 흥미를 잃었었다. 그런 개인적인 경험들이 있어서 더욱 ‘인지과학’, ‘뇌과학’, ‘신경과학’ 등의 연구 방법론으로 종교를 연구하는 것이 아직은 시기상조고, 그것이 무르익으려면 아직 한참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던 것 같다.


박사학위논문 작업이 시작된 이후에 인지종교학의 가능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것 같다. 부지런히 공부했다면 충분히 ‘인지종교학’ 분위기를 많이 담아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는 못했다. ‘성스러운 인간’이라는 범주를 만들어서 ‘비범한 인간에 대한 상상력’을 다루고자 했고, 그래서 영웅, 반영웅, 왕, 폐위된 왕, 조상, 반정-왕, 역적, 도적, 성현, 간신 등이 전형적인 비범한 인간의 상상되는 방식을 ‘일반화할 수 있는 틀’로 다뤄보고자 했다. 성스러움 개념, 예외상태 개념을 이용해서 비범한 인간을 상상하는 논리에 영향을 미치는 세 요소를 인간적 조건(생물학적 구조, 인지능력 등), 상황적 조건(예외상태/전이기), 문화적 자원(모델)으로 정리하였다.



문헌 자료를 이용한 ‘어설프고 조악하며 시론적인 일반화 작업’이 시도되었을 따름이다. 여러 주제의식이 유기적으로 잘 조직되어 정리되지 못했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선명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여러모로 부족한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내 안의 관심사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나의 근본 물음을 선명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문적 의의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 미진함에도 나의 연구가 계속될 수 있는 어떤 자가 발전기를 얻은 개인적 의미가 있는 성과물이다.


무의미한 것을 의미로 변형시키고, 의미를 본질로 규정하면서 현실이라는 딛고 설 자리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생존의 문제, 집단적 수준의 생존과 질서 그리고 권력의 문제, 질서와 권력의 기본 자원이 되는 올바름의 기준, 또 그것이 만들어 내는 상상적 현실, 이러한 문제들이 내게 있어 관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인간에 관한 것들이다. 신화, 의례, 환상, 엑스터시, 진화, 도덕, 정치적인 것, 종교적인 것 등등이 그러한 관심사들 안에서 나름의 좌표들을 설정하게 되었다.


이건 어떤 세계를 보는 눈의 완성 같은 것이 아니다. 겨우 내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느낌적 느낌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할 따름이다. 이제 겨우 공부하는 게 즐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정말 궁금하다. 살아남기 위해서 아등바등 옆 사람들과 손을 잡고 애를 썼던 인간들이 결국 살아남아서 지금의 나와 우리가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종교에 관한 많은 질문들을 해체시키고 물음을 바꿔내면서 인간의 종교적 측면에 대한 연구를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그것은 동시에 다른 학문의 연구와 긴밀히 접목되는 것을 뜻한다) 더 명확한(혹은 검증 가능한) 이론을 구축할 수 있을지.



‘돌의 눈’은 그러한 궁금증에 대한 더디고 느린 공부의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로 삼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1. 학위논문의 발전적 해체와 재구성(인물상징론, 역사적 인물의 영웅화/반영웅화로 상징론 다시 생각해 보기)

2. 인지종교학에 기반을 둔 기독교민속신앙론

3. 사회성의 진화와 도덕성 그리고 종교

4. 사회적 재난과 내러티브


등등의 이야기를 다룰 생각이다.


To be continued...


글: 심형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같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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