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의 원활한 발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점 죄송합니다.


6호는 꼭 발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생로병사 주제로는 '여자의 어른되기, 엄마되기'와 관련된 내용이 다뤄질 예정입니다(제목과 내용 상에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공간과 장소 주제로는 '진도-해남 일대의 종교문화탐방 기록'이 다뤄질 예정입니다.


아울러 (New) '연구노트' 항목도 시작될 예정입니다.


11월 30일 발간 예정입니다만, 원고 수합과 편집 과정에서 다소 지체되면 12월 1일이나 2일에 발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곧 6호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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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수정


생로병사 주제는 6호에서 다뤄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진도-해남 일대의 종교문화탐방 기록'도 연기되었습니다.


6호에서는 공간과 장소 주제로 '밀양'이 다뤄질 예정입니다.


'연구노트'는 앞서 안내해 드린 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곧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발간은 12월 4일이나 5일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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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월간 종교인문학 블로그는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매월 내 놓는 종교문화에 대한 한 발 더 들어간 논평과 에세이 등을 '월간 종교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내 놓는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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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미-연어-동백-사막의 꽃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오랫동안 땅속에 있다가 지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다. 약 한 달 동안 저렇게 소리치다가 땅에 떨어져 죽을 것이다. 5년 혹은 7년의 땅속 생활 끝에 날개를 달고 마음껏 고함치다가 간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자신의 청각을 손상할 정도여서 매미는 잠시 자기 귀를 닫아 놓는다고 한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하늘에 닿고, 산이 울리도록 내지르는 매미의 그 소리를 무시하지 못한다. 필자와 함께 걷다가 매미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춘 노 교수는 가슴이 저려온다고 조용히 말한다. 어느 시인은 그런 매미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근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 박지웅,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매미 소리가 우리에게 주는 처연함은 여름과 함께 그 소리도 곧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에 생긴다. 마음이 애틋하게 곧 스러질 생명체를 향해 기울여지는 것이다. 저절로 아름다움의 감각도 일어난다. 매미만이 아니다.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태어난 강기슭으로 돌아와 죽는 연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몸 안에 있는 한 가닥 힘까지 모두 짜내어 회귀한 다음, 알을 낳고 죽는 연어를 보면서 우리는 결코 심드렁할 수 없다. 


어디 매미나 연어뿐이랴? 목이 꺾기는 듯이 한 송이 꽃이 툭 떨어지는 동백의 지는 모습도 우리들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도대체 왜 꽃잎이 하나씩 날리지 않고, 미련 없이 세상을 하직하는 듯이 그렇게 떨어진단 말인가! 우리는 동백꽃의 지는 모습을 감당하기 어렵다. 송창식의 《선운사》를 우리가 30년 넘게 불러왔고, 앞으로도 부르게 될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에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또 다른 풍경도 떠오른다.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라는 칠레의 아타카마(Atacama) 사막에 핀 엄청난 꽃들! 엘니뇨의 영향으로 20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리자, 사막이 온통 꽃으로 뒤덮인 것이다. 그 풍경을 그냥 아름답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거기에는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생명의 환희와 스러짐이 아주 가깝게 붙어있다. 사막에 습기가 사라지게 되면 그들은 곧 사라지고, 이전의 황량한 사막으로 다시 돌아간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은 불꽃 놀이하듯이 서둘러 꽃을 피우고 말라 죽는다.


Flowers Bloom in Chile's Atacama Desert
Photo:Espores
사진출처: telesurtv.net



2. 인간의 늙음


매미와 연어, 그리고 동백꽃과 사막의 야생화는 모두 닮은 점이 있다. 삶의 정점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몸부림은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보는 이에게 깊은 공감을 남긴다. 우리는 남은 자로서 열심히 살다가 스러지는 자를 보며, 결코 무심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있지만, 그들에게는 없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늙음이다. 그들은 천천히 죽음으로 향하는 늙음의 과정이 없다. 매미는 목청 높게 짝을 찾고 교미하자마자 곧바로 죽는다. 연어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강을 거슬러 올라가, 수정란을 만든 다음에 곧 숨을 거둔다. 동백꽃은 가장 활짝 핀 상태에서 갑자기 목을 꺾고 땅에 떨어지며, 사막의 야생화는 몇 년을 기다려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다음에 서둘러 사라진다. 하지만 인간은 어떠한가? 그들은 번식기가 지난 다음에도 한참동안 살아남아 있다. 


필자에게는 가끔 불현듯이 생각나곤 하는 영화가 있는데, 오래 전에 본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가 그 가운데 하나다. 1983년에 만들어졌으나,[각주:1] 한국에 개봉된 것은 1999년이다. 하지만 필자는 개봉관이 아니라, 비공식 영화제에서 보았으니 아마도 1980년대 후반에 접했을 것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부모 나이가 70살이 되면 자식이 그를 깊은 산 속에 내다버려야 하는 일본의 시골 마을이다. 일본판 “고려장”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렇게 부모를 버리는 까닭은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마을에서 식량을 절약하기 위함이다. 45살의 장남, 타츠헤이(辰平)가 건강하지만 이제 70세가 된 어머니, 오린을 마을의 관습대로 산 속에 버리는 이야기이다. 자연의 순환대로 생명의 탄생, 성적 교접, 그리고 죽음은 “단호하게” 이어진다. 


이 단호함은 노골적인 성 행위와 삶의 폭력적 장면으로 나타난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보기에 여기에 윤리가 끼어드는 것은 어쭙잖은 짓이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곤충과 새, 뱀 등의 동물이 태어나는 장면, 그리고 서로 잡아먹고, 노래하며, 교접하는 장면이 클로즈업되는데, 결국 인간도 이들과 다를 게 없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어머니 오린은 건강한 치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식량이 부족한 마을에서 부러움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린은 이제 쓸모없어진 자신을 보이기 위해 스스로 돌로 이빨을 부러뜨린다. 오린으로 나오는 사카모토 스미코(坂本澄子)는 이 장면을 위해 실제 자신의 이빨을 여러 개 부러뜨렸다고 한다. 이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이나 배우들이 가졌던 분위기를 짐작할 만하다.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북극의 이누이트인들도 눈이 침침해져서 바느질을 하기 힘들게 되면 스스로 집을 떠나 북극곰이 출몰하는 곳으로 간다. 곰이 자신을 먹고, 그 곰을 후손들이 잡아먹는다. 어차피 삶은 그런 식으로 움직여야 되는 것이 아니던가? 


오린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마친 다음에 장남 타츠헤이에게 나라야마 산으로의 여행을 강요한다.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장남을 재혼시키고 차남에게 총각 딱지를 떼게 하는 것이다. 오린은 타츠헤이의 등에 업혀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라야마 산 속으로 들어간다.


이 마을에서 70살은 삶의 한계선이다. 더 이상은 삶을 영위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이 마을에서 늙음은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인간도 매미와 연어, 그리고 동백꽃과 사막의 야생화처럼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 같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끼워 넣은 동물의 장면도 그런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늙음이 있다. 〈나라야마 부시코〉가 만들어진 것도 그것을 전제한다. 


고(古)인류학자 이상희는 현생 인류의 노년기가 갑자기 늘어난 것이 30,000년 전인 후기 구석기 시대라고 말한다. 그동안 유타대학교 커스틴 호크스(Kirsten Hawkes) 교수의 “할머니 가설”에 따라 200만 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부터 노년기가 부각되었다고 봤는데, 이상희는 이를 반박한 것이다. 커스틴 호크스는 할머니가 손주를 돌봄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보다 잘 유지하기 때문에 폐경기의 할머니도 필요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였다. 하지만 이상희는 노년이 후기 구석기 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본 것이다. 그게 맞는다면, 왜 하필 그때였을까? 


이상희에 따르면 당시에는 기후변화가 예측 불허할 정도로 변화무쌍했는데, 이런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할 필요가 부각되었고, 축적된 정보의 필요성이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그 지식 축적을 구현하고 있던 것이 바로 노인이었던 셈이다. 3대(代)가 모여 노인이 체득한 지식을 나누고 후대에 전수하는 것이다. 기원 전 30,000년경부터 이른바 예술적 행위 및 상징적 활동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것도 노년층의 형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각주:2]


그런데 이상희의 노년은 우리가 생각하는 노년과는 사뭇 다르다. 그가 노년을 설정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젊은이의 시기를 체구의 성장이 끝나고 재생산이 가능한 때로 보고 맨 뒤쪽 어금니인 사랑니가 나온 시점을 기준으로 삼았다. 반면 노년기는 사랑니의 치아 마모도가 젊은이보다 2배 더 닳은 시점으로 정했다. 사랑니가 18살 때 나온 젊은이는 이 때 재생산이 가능한 나이가 되어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가 자라 18살이 되었을 때 손주를 봤을 것으로 간주하여 젊은이의 2배를 노년으로 삼은 것이다. OY 비율(Old/Young ratio)은 젊은이 수에 대한 노인 수의 비율을 말하는데, 1을 넘지 못하다가 후기 구석기 시대에 갑자기 비율이 2를 넘게 되었다는 것이다.[각주:3]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이상희가 주장하는 노년이 우리네의 30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 언제부터 늙은이로 여겨야 하는가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고, 기준이 되는 시대와 사회마다 달라질 것이다.


3. 다양한 늙음: 그리드-그룹(Grid-Group) 분석


필자의 관심사는 현재 우리가 노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이고, 급격하게 바뀌는 노년에 대한 관점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우선 노년 혹은 노인에 대한 태도가 다양하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 자신의 관점을 마치 보편타당한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 기준에 의거하여 작업을 행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관점을 당연하게 간주하면서 출발하는 대신, 그 관점이 소속되어 있는 보다 포괄적인 맥락을 검토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요청된다.


여기에서 늙음을 보는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1921-2007)의 “그리드-그룹”(grid-group) 분석에서 늙음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더글러스는 “그리드”와 “그룹”의 두 가지 축을 만들고 그 강약(强弱)에 따라 4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그리드는 수직축으로서, 분류체계 혹은 규범의 규제력이 강하게 작용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위, 아래로 구분된다. 공유된 분류체계가 사람들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칠 경우에 강한 그리드인 반면, 약할 경우에는 개인적 분류체계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분류체계 혹은 세계관의 공유 정도를 알려주는 것이 그리드이다. 


그룹은 수평축으로서, 특정집단에 소속됨으로써 받는 압력을 나타낸다. 집단내의 관계로 인해 개인의 행동과 사유가 소속 집단의 압력에 통제되는가, 아니면 그로부터 벗어나는가에 따라 오른쪽과 왼쪽으로 구분된다. “그룹”은 개인의 행동과 사유가 사회적 집단의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제약받는 정도를 나타낸다. “그리드”와 “그룹”의 강약(强弱)에 따라 4가지 유형이 만들어진다. 



각 영역의 기본 특징과 늙음에 대한 태도는 다음과 같다.


1) 늙음은 저주


A 영역: 약(弱)그리드-약(弱)그룹: 개인주의(individualism)


여기에서 개인은 특정 집단의 소속 여부에 별로 관계없이 사회적 경험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인의 사회적 맥락을 이루는 외적 경계(境界)에 제약받지 않으며, 개인을 분류하는 사회적 규범에도 묶이지 않는다. 개인의 거의 유일한 관심사는 사적(私的)인 이익 추구이다. 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자유 시장 체제가 이상적인 상태로 간주되며, 경쟁자로부터도 부러움을 사는 혁신적 기업가가 이상적인 인물이다. 집단 외부뿐 아니라, 집단 내부의 경계선이 모두 분명하지 않다. 


A 영역에서 나이를 먹는 것은 결코 자랑스럽지 않다. 늙는다는 것이 공경의 증좌이기는커녕 물질적 정신적 능력의 쇠퇴를 의미하며 경쟁에서 탈락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늙은이에 대한 배려나 우대 정책이 있을 리 없다. 늙은이는 저절로 배제된 자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 늙은 모습은 수치스럽고 숨겨야 하는 것처럼 간주되어서 가능한 한, 젊은이와 같은 용모와 몸매를 가지려고 애를 쓰게 된다.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으며, 젊은이와 같은 스타일과 정열적인 색깔로 치장한다. 질병에 걸리면 개인이 알아서 처리해야 하듯이, 몸이 늙게 되면 개인이 알아서 그 과정을 멈추게 하든지 천천히 완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인이면서 병자(病者)는 최악의 조합으로서, 이중적인 “루저”(loser)를 나타내며 거의 저주받은 상태에 있다.


2) 소외되는 늙음


B 영역: 강(强)그리드-약(弱)그룹: 숙명주의(fatalism)


개인의 행동이 사회적 분류체계 혹은 세계관에 의해 강하게 규제되어, 개인의 사회적 역할 및 지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반면, 사회에 통합된 정도가 약해서 개인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다. 자기의 역할을 완수하더라도 사회적 보상을 받지 못하며, 자신을 고립된 상태로 유지시키는 힘이 멀리 있으며 비인격적이라고 여긴다. 외부의 힘에 의해 통제되고 있지만, 자신은 다른 이들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처지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이 이 영역의 전형적인 구성원이다. 따라서 개인의 자율성이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게 되며, 소외된 채 외부에서 부과된 규범에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집단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분명치 않은 반면, 집단 내부의 경계선은 뚜렷하게 분할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B 영역에서 죽음은 전적으로 사적(私的)인 문제이며, 전형적인 죽음은 고독사(孤獨死)다. 매스컴에서 고독사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것이 B 영역에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통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안락사는 긍정적으로 수용된다. 비록 절망적인 해결책이지만 필요하다고 본다. 병자(病者)가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여지는 없다. 국가를 비롯하여 여느 집단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병자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취약한 상태에 처해있다. 


노인도 병자의 상태와 비슷하다. 노인에 대한 복지정책은 마련되어 있지도 않고, 앞으로도 마련될 가능성이 없다. 아무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지 않으며 당사자도 자포자기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노인이 비슷한 처지의 이들과 접촉하지 않고 격리되어 있으며, 젊은이들과의 관계도 없다. 집단의 지원(支援)도 없는데다가 친지와 친구와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철저한 고립무원 속에 처해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 대한 개선의 의지가 없고, 그런 조건에 대해 저항할 생각도 없이 무기력감에 빠져있다. B 영역의 미덕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도 그런 상황을 만든 권력에 그저 복종하는 것이다. 


3) 늙음은 성숙


C 영역: 강(强)그리드-강(强)그룹: 위계주의(hierarchism)


개인의 모든 행동과 생각이 규범에 의해 치밀하게 규제되어 정해진 대로 이루어지게 만들며, 집단 소속감이 강하게 작용한다. 집단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개인의 모든 삶을 전반적으로 통제하고, 그의 사회관계를 좌우하기 때문에 개인 선택 폭이 최소화된다. 그가 태어난 가문, 성별 등에 따라 지위와 할 일이 정해지는 위계적 질서화가 촘촘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분류체계의 발달이 고도화된다.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혈연(血緣)과 지연(地緣)그리고 학벌(學閥)에 따른 인맥(人脈)에 따라 사회관계가 형성된다. C 영역은 집단의 안과 밖을 분리하고, 안에 포함된 내부인과는 강한 유대감을 표시하는 반면, 밖으로 배제된 외부인에게는 강한 배타심을 드러낸다. 집단의 강한 결속감 때문에 내부 분열을 경계하며, 집단의 규모를 크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집단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선이 뚜렷하고, 집단 내부의 경계선 역시 분명하다는 특징이 있다.   


C 영역에서는 늙는 것을 수치스럽거나 감추어야 할 것으로 보는 대신, 자연스러운 일로 여긴다.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의 활력이 떨어져도, 평생에 쌓인 지혜가 더욱 빛을 발한다는 식으로 젊은이와 구별되는 노인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노인의 독자적인 생활 스타일을 인정해준다. 따라서 체제가 원활하게 운영되는 한, 젊은이와 노인 사이의 세대 갈등은 발생하지 않는다. 사회는 노인을 공경할 만한 존재로서 간주하고, 융숭한 대접의 조건을 마련한다. C 영역은 늙은이에게 매우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4) 늙음, 자연스러운 그러나 불안한 지위


D 영역: 약(弱)그리드-강(强)그룹: 평등주의(egalitarianism)


개인의 사회적 경험은 무엇보다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면서 집단의 결속을 다짐하는 모습을 취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개인이 발휘하는 힘은 오직 집단의 가치와 목표를 내세울 때 드러나며, 집단의 이름을 걸고 움직이는 소속원은 집단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반면 집단의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내부적 역할 분할 및 서열(序列)적 질서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집단 내 관계가 어쩔 수 없이 모호성을 띠게 된다. 그래서 만일 내부의 갈등이 생길 경우에 이를 해소할 효과적인 기제가 없기 때문에 체제의 불안정이 늘 잠재되어 있다. 갈등 유발자에 대한 거의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처벌이 집단으로부터 축출(逐出)이다. 


집단 안에서는 모든 이가 서로 평등하고, 신의(信義)로우며, 외부의 적대적인 세력과 맞서서 함께 단합할 것으로 기대된다. 내부 갈등은 마지막 단계까지 수면 밑에서 잠재되어 있다가, 드러나는 순간 파국을 맞게 된다. 외부세상을 적대시하는 평등주의적 코뮨 혹은 섹트(sect)가 전형적인 예이며, 리더가 집단을 이끌고, 의사결정을 내리며, 권위를 행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집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서 대개 소규모이다. 집단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선이 뚜렷한 반면 집단 내부의 경계선은 분명하지 않은 점이 기본 특징이다. 


D 영역에서 병에 걸리는 것은 신체의 방어선을 뚫고 침입한 사악한 존재가 준동(蠢動)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치료는 이런 사악한 기운을 쫓아버리는 것이다. 병자(病者)의 몸은 선과 악의 대결이 일어나는 곳이며, 공동체는 이런 결투에 승리하도록 병자를 지원해줄 의무가 있다. 병자에 대한 돌봄은 집단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병자와 간호하는 사람 모두 악의 세력에 맞서 전투를 선의 승리로 이끌기 위해 영웅적으로 노력하는 존재들이다. 


D 영역에서는 늘 환자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간호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다. 또한 죽음은 삶의 단계에서 거쳐야 하는 하나의 자연적인 과정으로 간주된다. 장례식은 공공적인 관심사이므로 모두가 참석한다. 자살하는 것과 안락사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자살이 칭송되는 경우는 집단을 위해 자기희생을 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동안(童顔)을 위해 주름진 얼굴을 성형수술하려고 하지도 않고, 축 늘어진 피부를 팽팽하게 당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노인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간주되며, 집단 내 논쟁이 격화되었을 때,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D 영역에 늘 잠재되어 있는 체제적 불안정성 때문에, 내부인과 외부인의 대립, 선과 악의 대결 구도, 흑백 논리가 지배할 때에는 노인의 지위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만일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의 의견 대립이 내부인-외부인의 갈등 구도로 전개될 경우에 집단의 폭력적 에너지가 늙은이를 희생양 삼는 방향으로 진행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5) 늙음의 초월


E 영역: 은둔자”(Hermit)의 영역


“그리드-그룹” 분석의 특징은 구분된 네 가지 영역이 거의 완결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네 가지 영역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간과하는 약점이 있다. 각 영역과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면 좌우, 상하, 그리고 대각선의 방향으로 활발한 움직임이 생기는데, 여기서 각 영역이 합치는 중간 지대가 중요해진다. 


“그리드-그룹” 분석에서 이 중간 지대는 텅 비어있는 곳, 혹은 혹처럼 붙어있는 곳으로서 별로 의미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다섯 번째인 E 영역은 각 영역의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곳으로서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은둔자”의 영역은 네 가지 범주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자신의 변화를 위해 숨을 고르는 곳, 자신들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곳, 그리고 다른 영역으로 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곳의 성격을 띤다. “은둔자” 영역은 교섭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여, 모든 형태의 강압적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을 취한다. 또 다른 특징은 앞의 네 영역이 각각 나머지 세 영역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낸다면, “은둔자” 영역의 아이덴티티는 네 영역을 한 묶음으로 하면서 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은둔자”는 다른 네 영역의 구성원과는 구별되는 성격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내세운다. 예컨대 네 영역은 갑론을박하면서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은둔자” 영역에서 볼 때, 그들은 비슷하다. 반면 은둔자는 4가지 영역의 소속원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은둔자의 초월적 성격(transcendence)이 강조되며,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성격이 부각된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의 일치성, 서로 상반된 것의 합일성, 삶의 고통으로부터 궁극적인 해방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 등의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이처럼 자율성과 초월성을 강조하는 “은둔자” 영역에서 늙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 1883–1983)은 전형적인 예를 보여준다. 그는 왕성한 삶을 영위하다가 100살이 되어 한 달 반의 단식 끝에 스스로 목숨을 거둔 사람이다. 


헬렌과 스콧 니어링 부부는 화폐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했고 돈 사용을 자제했다. 자신들이 먹는 것은 텃밭에서 길러 자급자족했다. 그들은 하루를 둘로 나누고, 반(半)은 빵을 얻기 위한 노동(“bread labor”)을 하고 다른 반(半)은 글 읽기와 글쓰기, 음악 연주 등 의미 있는 활동에 썼다. 스콧 니어링의 주름 가득한 늙은 얼굴이 보여주듯이 그는 외모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늙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일하는 것은 늙는 것을 막아준다. 나의 작업은 나의 인생이다. 어느 한쪽 없이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 그리고 지루해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 희망과 미래의 계획대신 후회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늙게 된다. 가치 있는 일에 관심을 쏟고 일을 하는 것이 나이 드는 것을 막는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이석태 역, 서울: 보리, 1997), 215쪽.


헬렌은 스콧에게 누가 늙었다라고 하면 화를 냈다. 헬렌은 대부분의 사람이 60살 정도에 늙기 시작한다면 스콧은 90살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늙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스콧이 50대에 햇볕 속에서 일을 해서 얼굴에 주름이 많지만, 몸과 마음의 활기는 왕성했다는 것이다.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삶은 “은둔자” 영역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들의 자립적 생활과 불굴의 저항정신, 그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 이론과 실천의 합일, 죽음을 맞이하는 담담한 태도는 삶의 자율성과 초월성을 강조하는 자세와 잘 연결된다. 늙음에 대한 태도에도 은둔자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늙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도 아니다.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측면과 세상 전체를 관조하면서 파악하는 측면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태도는 앞의 네 가지 영역 어디에도 발견하기 힘든 것으로서, 다섯 번째 영역의 특징을 나타낸다.


4. 마무리를 대신하여


단세포 동물에게는 늙음이 없다. 대부분의 다세포 동물도 마찬가지다. 포유류의 경우에, 이제 비로소 인간과 비교될 수 있는 늙음의 주제가 거론되고 있지만[각주:4] 인간의 늙음과 견주기는 힘들다. 늙음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길이와 농도의 측면에서 다른 포유류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늙음을 대하는 태도는 이미 거기에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물론 인간의 경우에는 더하다. 


필자가 메리 더글러스의 “그리드-그룹” 분석에 주목한 것은 늙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다양하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어떻게 그 다양한 태도를 평가할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살펴보는 과정에서 그 가운데 어느 태도가 옳고 그르냐고 묻는 것은 적합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특정의 조건이 결합하면서 특정의 태도가 등장하고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사회적 문화적 분석이 그리드-그룹의 4가지 유형 가운데 A와 C의 영역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또한 전통과 근대, 집단적 사고(思考)와 개인적 사고, 공동체와 이익단체 등의 이분법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그리드-그룹”은 A와 C 영역만 있는 것이 아니고, B와 D의 영역도 있음을 환기시켜 주었다. 


또한 각 영역의 관점이 다른 영역을 전제하면서 만들어진다는 점도 깨닫게 해주었다. B의 숙명적 고립주의자와 D의 전투적 코뮨주의자의 영역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으면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게 된다는 점도 알 수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이 전(全) 지구에 걸쳐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전체적 관점을 갖는 것은 긴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각 영역의 상호작용의 측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5의 영역인 “은둔자” 영역은 전 시스템을 조망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우리가 반드시 은둔자의 시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쨌든 포괄하는 시각에서 설명을 해야 한다. 


늙음을 보는 이 다섯 가지 관점이 구체적으로 우리사회에 어떻게 서로 얽히고 주고받는 작용을 하는가? 그래서 어떤 효과를 산출하고 있는가? 다음에 이 주제를 살펴보고 싶다.



  1. 후카자와 시치로(深沢七郎)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으로, 1983년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이 소설은 1958년에 기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된 적이 있다. [본문으로]
  2. 이상희, 윤신영, 《인류의 기원》, 사이언스북스, 2015, 105-115쪽. [본문으로]
  3. 위의 책, 111-112쪽. [본문으로]
  4. 앤 이니스 대그,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 노승영 옮김, 서울: 시대의 창, 201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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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종교인문학 블로그는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매월 내 놓는 종교문화에 대한 한 발 더 들어간 논평과 에세이 등을 '월간 종교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내 놓는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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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출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나는 내 출생을 의도하지도 않았고, 내 출생을 예상하지도 않았으며, 내 출생을 스스로 확인하지도 않았다. 나는 내 출생을 당연히 자축했을 까닭이 없다. 나는 내 출생에 무지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출생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 출생 이전에 나는 없다. 나는 내 출생과 더불어 ‘있기’ 비롯했다. 나의 없음과 있음을 가르는 계기가 내 출생인데, 그렇다고 하는 것은 그 출생과 내가 전혀 무관한 채 내가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내가 나도 모르게 내가 되었다는 것은 지극한 ‘부조리’이다. 나 스스로 나의 있음의 자리에서 나의 없음의 자리를 바라볼 때 그러하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없음의 자리에서 내 있음을 일컫는 엄청난 이야기들이 현존한다. 그것은 너무 다양하고 얽히고 몽롱하고 때로는 놀랍고 때로는 두려워서 내 있음으로는 감당하기 버겁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는 나와 아랑곳없이 쉼이 없다. 듣다 보면 짜증도 나고 지루하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몰두하게 하기도 하고 끝자락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게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 이야기의 구조는 헤어날 길 없는 소용돌이다. 나는 늘 빙글빙글 돌아 처음자리에 되돌아오지만 다시 끝자리로 나아간다.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주체가 실재하는지, 아니면 내가 내 없음과 있음에 엉키어 그것을 풀려고 다만 그렇다고 내가 여기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주 어렸을 적이다. 어머님께서 늙은 호박을 따다가 이를 썰어 마당 빨랫줄에 너실 때면 나는 내 생일을 예감했다. 그것은 배추를 뽑아 텅 빈 밭에 서리가 내릴 즈음과 거의 같은 때였다. 생일 점심때 나는 호박꼬지를 넣은 백설기를 먹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으레 아욱죽을 먹었는데, 떡에 쓴 쌀을 어머님께서는 그렇게 채우셨다. 

  나는 누님들 둘에 이어 ‘마침내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당신 친구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내 맏상제요.’ 하시던 것도 기억난다. ‘아들’과 ‘맏상제’의 함축을 터득하는 데는 무척 긴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터득은 나의 출생을 설명하는 소음의 소용돌이와 함께 있었다. 그 세월은 내게 꽤 팽팽한 긴장의 지속이었다. 이유 있음과 이유 없음의 뒤섞임이, 그리고 책임 있음과 책임 없음의 얽힘이, 나와 이어진 ‘사실’인 것일 때, 그 긴장은 자연스레 내게 그 사실을 간과하고 싶은 현실이게도 하였다.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질끈 눈감아버리면 모든 사물이 가벼워진다는 경험은 상당히 편리한 해답으로 내게 참 오래 지속되었던 것이라고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부끄러운 증언이지만. 

  아무튼 나는 애써 그 소용돌이에 무관심하려 했는데, 그러다 어느 결에 그 소음들이 실은 나 있기 이전에 있었던 어떤 주체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나한테 하는 발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짙어졌는데, 그래서 그 이야기의 주체들이란 실은 나의 다른 주체들일 거라는 생각에 경도(傾倒)되었는데, 다행하게도 나는 그러면서 그 긴장을 조금은 느슨하게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그 경사의 내림 길을 이어 살아간다. 그 끝이 어디인지 조금은 불안하지만.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의도하지 않은 일인데도, 나도 모르게 내게 과해진 일인데도, 그 일을 불가불 꾸려가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삶은 그랬다. 차마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참으로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기 이전에 이미 나는 먹고 싸고 놀고 잠자고 하면서 ‘자라고’ 있었다. 남들이 나를 꽤 자랐다고 했을 때 나도 나 스스로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때 내게 일었던 삶이란 온통 꿈으로 범벅이 된 것이었다. 삶의 주인이란 자신의 삶을 자기의 꿈으로 채우는 사람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그 꿈은 이른바 ‘꿈의 실현’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론 꿈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내겐 꿈과 현실의 갈등이 자주 일었다. 꿈에 오줌을 누면 참 시원했다. 그러나 그 꿈은 현실에서 요를 모두 적셨고, 나는 키를 머리에 이고 이웃집에 가서 소금을 받아와야 했다. 그래서 그랬겠는데, 가끔 꿈이 무서워 어서 깨어나야겠다고 꿈꾸면서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그런데도 거듭 말하지만 삶보다 꿈이 더 좋았다. 꿈에는 날개를 달고 날 수 있었다. 나는 꿈을 꿀 수 있는 밤이 좋아 하루가 즐거웠다. 그러면서 꿈이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안위라는 사실 때문에도 밤을 품은 낮이 즐거웠다는 사실마저 첨언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래도 정직하지 않을 듯하다. 

  아무런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겪은 것은 내가 꽤 자란 뒤의 일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꿈을 꾸려는 생각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를 안 것이라고 말해야 할 텐데,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 사치스러움을 누릴 아무런 자격이 내게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누군지 내게 강요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라고 해야 할 텐데, 아마도 그때부터 삶이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을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힘든 것이라는 사실에 익숙해진 것일 거라고 지금 생각한다. 그때는 내가 내 이야기를 모두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 없다는 것을 터득한 때와 같이한다. 내 몸의 현존을, 몸이 있어 내가 있음을, 그래서 내 실존을, 부모 탓이라고 해도 좋을 거라는 발언을 하고 싶은데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내가 너무 자랐었다고 해야 옳다. 그래서 나는 꿈을 꾸었다고 해도 좋다. 삶은 꿈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어진다. 내 출생과 이어진 그 많은 이야기의 소용돌이도 꿈의 출렁임과 다르지 않지 않으냐고 나는 아무에게나 묻고 싶다. 삶은 꿈이다. 꿈에서 깨어나도 꿈이고, 꿈에서 꿈을 꾸어도 꿈이다. 


  

  아버님은 찬데 따듯하셨다. 어머님은 따듯한데 차셨다. 나는 아버님이 더 좋았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고자 했다. 아버님을 잃었을 때 나는 내 ‘마지막 자리’의 상실을 경험했다. 나는 지금도 그 사실이 내 꿈의 상실과 이어져 있다는 것, 그러나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그 상실의 회복에 대한 기대로 내 생애가 점철(點綴)되었던 것이라고 믿고 싶다. 꿈의 상실이란 없다. 

  ‘따듯한 자리’의 소멸을 안은 채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건데, 쉽지 않다. ‘하느님 아버지’를 뇌이면서 나는 언제나 그것의 사실 아님과 그렇게라도 해서 내 현실에서의 아버지의 부재를 보상받아야만 겨우 숨을 쉴 수 있다는 그것의 사실성 사이에서, 그래야 따듯함에의 귀착을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의 사실성 사이에서, 편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사실은 그렇게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나는 편했었다고 발언하고 싶은데, 그 발언이 엉키게 할 숱한 내 발언에 대한 남과 나 스스로의 메아리를 나는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틀림없이 무서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버님처럼 살지 않았다. 그렇게 살지 못한 것 아니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뚜렷하게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서서히 어머님처럼 살고 싶어졌기 때문인데, 이제는 어머님처럼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 감히 그렇게 내 삶을 스스로 애써 채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내가 바라는 색이 드러나지 않는다. 답답하다. 여러 색깔의 물감을 섞어 되지으면서 끊임없이 내 삶을 개칠한다. 꿈은 아버님 편이었지만 현실은 어머님 편이었다고 말하면 왜 내가 더 좋아한 아버님 편을 떠나 어머님 편에 섰는지를 조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러한 분류방식은 나를 거의 질식하도록 한다. 아무튼 이에 대한 반응은 실은 내 몫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을 안다는 것이 때론 절망적이기조차 하다. 그런데 내 삶은 긴 삶의 흐름 과정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 내 몫의 영역을 벗어난다.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그것이 현실이다. 세월을 좇는다는 일이, 내게서는, 어느 틈에 그렇게 각인되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뜻밖에 길었다. 왜 짧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참 길다. 나는 오래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내 삶을 책임진다는 일이 ‘말도 아닌 것’이라는 자학을 일상화하고 있던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방금 말한 ‘책임’이라든지 ‘말도 안 된다’든지 ‘자학’이라든지 ‘일상화’라든지 하는 언어들이 갑자기 역겹다. 그렇게 발언하고 있는, 그러니까 그 발언을 낳은 내 삶의 경험을 그 언어들은 불완전해도 더 그럴 수 없을 만큼 모자라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언어에 담으려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싶은데, 그렇게 하지 않고는 그나마 담을 그릇이 그리 마땅치 않다는 것을 나는 넘어설 수 없다. ‘삶은 몸의 짓인데~’라고 탄식할 뿐이다. 겨우 발언한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배고팠어요. 추웠어요. 아팠어요.’ 다음에 이어진 당연한 귀결은 분명하다. ‘죽고 싶었어요.’ 몸이 겪는 일은 몸을 버리면 없는 일이 된다. 몸의 발언은 늘 이렇다. 우리는 너무 많이, 그리고 자주, 우리의 몸을 살면서도 몸을 지나친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사치라고 나는 말한다.    

  살면서, 그러니까 몸의 지속을 시간 속에서 확인하면서, 늘 배고프고 춥고 아프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좋기도 했고, 그래서 웃기조차 했다. 그러나 몸의 조건과 분리된 그런 것은 내게 불가능했고 비현실적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미워하기도 했고 분노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것도 몸의 현실과 단절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하고 싶다. 두려움도 속수무책감(束手無策感)도 다르지 않다. 나는 삶의 과정이 이른바 정신적인 것이라든지 영적인 것이라든지 하는 주장과 만나면 그의 삶의 경험이 나와 어쩌면 이렇게도 이질적일 수 있을까 갸우뚱해진다. 너도 나도 몸의 현실을 살아가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내게 참 부러운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청장년 때 늘 그랬는데, 지금은 더 그렇다. 몸과는 아무런 이어짐 없이, 몸을 넘어, 몸을 없는 듯 여기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 훌륭했던 분, 내게 인간적이었던 분, 내게 꿈과 내일을 보여준 분, 그리고 참 많은 좋은 분들이 내게 그런 다른 사람들이었다. 부러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 얼마나 압도적인 거였는지 나는 그렇다고 하는 사실이 내 열등감조차 충동하지 못하면서도 내게 늘 있는 ‘정서’였다고 실토하고 싶다. 그 정서를 벗으면 이미 내가 아니었다. 그런데 나를 스스로 슬프게 하는 것은 그 부러움을 감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늘 쫓겼다는 사실이다. 가리고 숨기고 덮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면 그 부러움은 나를 슬프게 하는 것도 아니고 강박관념을 일게 하는 것일 수도 없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기술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묘사를 찾아낼 수 없다. 그래서 이제는 오히려 부러움에의 침잠 속에서 내가 살아왔다고 하는 것이 실은 나를 편하게 한 것이라고 스스로 나를 다독거린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닿을 길 없는 것에 이르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았어도 되었다는 자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며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 싶다. 적어도 내 몸이 더 이상 있지 않을 때까지는 그렇게 나는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실은 정직하지 않다. 나는 어느 틈에 부러운 사람들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내가’ 한 일이다. 나이 먹음은 그렇게 자기를 속이는 것으로 누적된다. 그것이 또 다른 꿈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내가 범한 가장 지독한 사치였다. 나는 이를 위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과불(過拂)을 짐 지웠기 때문이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가시지 않았다. 내게서, 그리고 그들에게서. 그런데 학교는 나를 욱죄는 틀 이상의 아무것도 내게 남겨진 흔적이 없는데도 나는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을 팔면서 그것으로 먹고 살았다. 지금도 그 여운에 실려 몸을 굴리면서 살아간다. 

  앎에의 탐구, 그 알쏭달쏭한 실체는 그때나 이제나 내게 지워진 천형(天刑)이다. 왜 나는 물어야 하나? 왜 나는 소박한 수용을 살지 못하나? 왜 나는 그 많은 훌륭한 분들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이름의 잣대를 들이대야 하나? 왜 나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도 앎을 빙자한 권위를 휘둘러야 하나? 반응과 상관없이 나는 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자신하는가? 내심 인류의 지성사(知性史)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고 단언하고 싶은데, 그것은 천박하고 무지한 발언이라는 비난이 폭포처럼 내게 쏟아질 거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내 학문함의 세월이 나를 그리 어리석은 소박함 속에 가둬둘 까닭이 없다. 나는 내가 익힌 ‘학문의 기교’로 인류의 지성사는 경탄스럽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발언해 왔다. 다만 나는 그 경탄의 내용을 결코 서술하지 않음으로써 내 정직성을 유지한다고 스스로 나에게 설득하고 있을 뿐이다. 혹 누가 은밀히 물으면 나는 내가 불가피하게 참 사치스러웠다는 사실을 가늘고 낮은 소리로 발언할 터이지만 그것을 들어줄 만한 ‘좋은 사람’들은 이미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것도 꿈이다.  


  나이를 먹어 사랑을 했다. 몸이 자랐기 때문이다. 몸 없이 어떻게 사랑을 하나? 나는 그렇게 단언한다. 남자만으로는 모자란다고 내 남자가 스스로 절규하는데. 그런데 여자를 정말 만났을 때, 몸의 현존을 때로 넘어서는 전율을 사랑이라고 하고 싶어졌었다. 그 전율이 몸의 현실이 설명할 수 없는 몸의 현실을 담고 있다는 역설을 나는 처음으로 겪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기술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해도 좋을 듯하다. 나는 이를 몸의 퇴거와 몸의 새로운 내재(內在)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런 언표(言表)는 그때의 일이 아니라 지금의 일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만큼 부자연스럽게 나는 남편이 되었고 아비가 되었다. 그 삶의 마디가 제대로 선명해지지 않는다. 겨우 발언한다면 누구나 신비의 한복판에 빠지면 판단을 잃는다고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아니, 신비는 그 판단부재의 상황에서 비로소 신비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더 나아가 그 신비는 언제나 나를 자기 밖으로 내치면서 어서 나가 여기에서의 경험을 증언하라고 강요하는 폭력의 주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나를 신비스러운 불안에 떨게 한다고 하는 사실도 내처 말하고 싶다. 나는 신비에 쫓겨 내 삶을 서둘렀다. 삶이 신비를 좇는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아니다!’라고 나는 단단히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고 하는 사실을 내가 마침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래서 드디어 내게서 발언되었을 때, 그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자식들이라는 사실을 나는 발견한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 그것은 짐작 못한 놀라움이다. 공포이기도 하고 환희이기도 한다. 애써 가렸던 것의 절망스러운 노출이기도 하고, 이제야 획득한 자유의 처음 호흡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나는 일그러지는 몸의 쇠잔함과 ‘버텨온’ 내 실존의 뚜렷한 기욺의 낌새를 확인했었다. 이제는 낡아진 것이다. 이렇게 삶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늙은이라고 부른다. 나도 그렇게 나를 알고 있다.  

  

  몸의 회복 불가능한 퇴행 과정에의 들어섬. 몸의 준거를 배제한 노년의 묘사는 거짓이다.  그러므로 노년을 일컫는 이러한 묘사는 참이다. 세월의 흐름에 실려 떠가면서 햇볕에 의해 퇴색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몸의 현실이 삶인 것을.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도 일컫는 초월이란 어쩌면 퇴행에의 저항을 개념화한 슬픈 언어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지막 자기의 자존(自尊)을 지키려는 몸의 도로(徒勞)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초월이 몸의 현실에서 구체화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것이 몸의 발언이라는 사실을 승인한다면 그것은 도로이기 보다 몸이 애써 가꿔 결실(結實)한, 누려야 할 실재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의 퇴행이 짓는 그늘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삶은 어차피 꿈인 것인데. 

  하지만 못내 불만스럽다. 세월은 흐르지 않는다. 아니, 세월은 흐르지만 삶은 흐르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차근차근 쌓인다. 늙음은 제법 솟아오른 퇴적(堆積)이다. 그것은 집적된 덩어리이다. 길이가 길지 않아도 좋다. 자그만 탐침(探針)만 마련한다면 쪼그리고 앉아 하루 종일 나는 내 몸의 현실이 거쳐 온 온갖 작은 조각들조차 내 지층(地層)에서 파낼 수 있다. 파 들어가면 내 탐침은 내 출생과 만나고, 내 지난 어느 날의 구름과 그림자를 만나고, 지금은 쉰이 넘은 자식들의 출생을, 그 순간의 그 아이의 울음을 만나고, 왜 기억나는지 모를 찌그러진 맥주 캔을 만난다. 맏상제의 태어남, 흩어지는 구름과 그림자를 짓던 햇빛, 아가의 울음, 버려진 깡통…. 그런데 문득 그 숱한 흔적들의 내일이 거기 탐침 끝에서 묻어난다. 그 잔 흙들이 못내 내 발굴을 더디게 한다. 나는 어느 틈에 먼산바라기가 되었다고들 말한다. 내가 그때 맏상제와 구름과 울음과 깡통과 더불어 어제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내일의 어울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짐작하지 않는다. 지층의 탐사가 나를 퇴적의 저변에 묻는 것만이 아니라 하늘 위로 날아오르게 한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 해야 실감 있게 전할 수 있을지 애써보지만 나는 이미 철저하게 간과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늙음은, 내게는, 곧 사라질 몸인 것이니까. 그리고 곧 없어질 존재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病 

  손자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그 녀석 배를 쓰다듬어주면서 곧 나을 거라고 했다. 시간이 한 뼘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괜찮다고 일어선 녀석이 말했다. ‘할아버지, 이런 일만 없으면 참 좋은데!’ 나는 ‘이제 아무 일도 없을 거야!’하고 말했지만 이것은 내가 내 손자에게 한 최초의, 그리고 가장 ‘정직한 거짓말’이다. 이보다 더 완벽한 거짓말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몸을 가진 인간이 안 아프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망발이다. 여러 사람 욕보이는 일이다.

  몸은 불완전하다. 더불어 사는 사람살이의 구조도 온전하지 못하다. 아주 많이 그렇다. 그래서 배가 고플 때부터, 그래서 허기져 하늘이 노랗게 빙글거릴 때부터, 나는 몸에 대한 신뢰를 모두 치워버렸었다. 내 몸을 담고 있는 이른바 공동체에 대한 신뢰도 그렇게 말끔하게 지워버렸었다. 적어도 몸이 병들어 아픈 것과 관련해서는 그렇다. 병드는 것은 병든 사람의 팔자소관인 것을 어찌 나라님 탓을 할 수 있을 것이겠는가? 그런데 한 끼 밥을 든든하게 먹고 나면 온 세상이 달랐다. 내가 어려서 일을 하며 살았던 곳의 여전도사님은 때로 나를 불러 시장에서 장국밥을 사주셨다. 지금 곰곰이 헤아려보면 아마도 2년 동안에 그 일이 세 번쯤이었다고 생각되는데 나는 그분이 어머니처럼 나에게 늘 그렇게 해주셨다고 되뇐다. 고마움, 또는 염치없음은 먹기 전의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국에서 고기 덩어리를 건져 모두 내 국그릇에 옮겨주신 그 넉넉한 포만을 만족하고 나서야 겨우 내게서 돋은 ‘현실’이었을 뿐이다. 배가 부르면 세상이 제법 살만했다. 몸에서 힘이 솟았다. 몸에 대한 자신감이 차고 넘쳤다. 그러면서 나는 가난은 병들게 하고, 병들면 가난하게 된다는 것을 터득했다고 하고 싶은데, 그 터득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현실을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때는 왜 그리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가난과 질병의 이어짐만으로 몸의 아픔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아픔을 아파하지 않은 때였다. 

  몸의 아픔은 절대적으로 몸의 짓이다. 나는 문자 그대로 병드는 것이 싫고, 병들어 아픈 것이 두렵고, 병들어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속수무책의 경우가 저주스럽다. 내 아픔도 그렇거니와 다른 사람의 몸의 아픔도 그렇다. 내 피붙이의 아픔은 정직하게 말하건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질병’을 공유하며 아파할 만큼 선하지 않다. ‘그의 아픔’이 조금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질끈 눈을 감든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본다. 속은 찢어지는데 참여의 여지는 전혀 내게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몸과 나의 몸은 엄연히 다르다. 나는 앓는 이의 병상 옆에 서 있기보다는 티브이의 채널을 돌리듯이 그렇게 ‘타인의 질병’을 외면하는 것이 내게도 그에게도 정직한 것이 아닌가하고 고민하기도 한다.    

  게다가 질병은 아무리 해도 설명할 수가 없다. 의학적인 설명은 늘 넘친다. 그리고 더 친절해지고 있다. 원인과 처방은 날로 나아진다. 예방의학에 이르면 그 친절은 기가 막힌다. 일어날 일을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것 말고 다른 설명을 나는 아픈 사람의 아픔에 참여하려면 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런데 막상 아픈 사람의 아픔에 참여하려 해보면 그 설명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힘이 든다. 아픈 이에의 참여는 그 아픔에 대한 설명을 나에게, 또는 너에게, 해야 마땅하다는 불가능한 의무를 내게 안기기 때문이다. 괴롭다. 그런데 할 수 없는 일과의 직면은 나를 비겁하게 하고 도망치게 한다. 살아가면서 나는 정말이지 늘 이런 일을 이렇게 겪어왔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왔었으니까. 그리고 ‘산다는 것, 다 꿈이지요.’하는 말이 차마 발설되기 어려운 경우가 바로 이 경우이기도 하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나 자신의 경우라면 나는 내 아픔에 아예 푹 빠져버리는 용기를 발휘하고 싶다. 가끔 그랬었다. 용기는 때로 설명을 폐기해야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몸의 아픔의 숙명적인 수용에서 비로소 승인하게 되었다는 것을 발언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피붙이의 아픔은 또 다르다. 그것은 함께 아파하고 싶은 ‘참여’나 마주치기조차 두려운 ‘외면’하는 몸의 아픔과는 다른 아픔을 삼킬 수 있게 할 뿐이다. 그런데, 나는 사랑에서의 경험처럼, 이 경우에서도 몸의 현실을 넘어서는 아픔이 실재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질병은 몸의 현실이면서도 몸의 현실에서 비롯하는 것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을 겪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 흔한 창조의 완전성에 대한 서술에 공감하지 않을 까닭은 없다. 종국이 초래할 몸의 고통 없는 ‘나라’에 대한 동경에 감동하지 못할 까닭도 없다. 그런 이야기도 없다면 몸으로 인한 이 고통의 처절함이 말미암게 된 몸의 불완전성을 견딜 아무런 그루터기도 몸의 주체는 마련할 수 없었을 것이니까. 그래서 ‘오죽 몸의 아픔이 심하면 초월의 간섭을 못 견디게 아쉬워했을까’ 하는 데 생각이 이르면 애가 탄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진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승인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겸손할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몸은 앓아야만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너도 아프고, 나도 아프고. 

  

  나는 참 자주, 그리고 많이, 또한 오랫동안, 치병을 위한 기도를 했었다. 나는 그러한 기도가 내 성장의 궤적에 상흔처럼 남아있는 어떤 ‘충동’의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참으로 주책없는 일반화라고 느껴지는데도 나는 그것이 사람 누구나의 일상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누구에게 한 기도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할 길이 없다. 앞서 지적했듯이 초월의 간섭을 요청하는 절규였을 뿐이라고 해야 옳은데, 이러한 진술이 소통을 이룰 까닭이 없다. 초월은 이미 다듬어질 수 없을 만큼 그것 자체가 엉켜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폐기하기 전에는 그 엉킴을 풀 길이 없다. 그러니까 초월은 나를 넘어선 나에 대한 희구였다고 발언해도 할 말은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초월은 몸의 현실이 낳는 필연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꿈을 살아가는 존재니까. 

  그 기도의 성취를 믿느냐는 물음도 내게 주어진다. 이 물음 앞에서 나는 상당히 긴장한다. 그랬었다. 왜냐하면 내 현실에 대한 직설적인 서술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몸의 아픔이 ‘아직 아프지만 곧 가셔질 거야.’라고 대답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답하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발언이 의도와는 다르게 발언되는지, 또는 되어야하는지, 우리는 익히 경험하고 있지 않으냐고 항변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말은 차마 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사실이란 희구가 내용일 수 없다. 사실은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늘 희구를 배신하곤 한다. 나는 내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땀을 쏟고 숨을 멈추면서 내 바람이 아픈 이의 몸속에서 구현되기를 바란 적이 있다. 그러고 나면 몸이 휘둘릴 정도로 힘이 빠졌다. 하지만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죄의식과 자학이 내 기도를 뒤따랐었다. 결국, 치유에의 기원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지 않으냐는 자문(自問) 앞에서 나는 내 언어를 잃곤 했었다. 아픈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그런데도, 너는 몸의 아픔과 만나면 또 기도를 할 거냐고 묻는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의외로 잔인하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발언될 때 더욱 그러하다. 나는 내가 더 답변할 의무를 지니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그 물음주체가 짐작할 때까지 침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침묵을 나는 치유를 위한 기도로 채울 것이다. 때로 우리는 질병의 고통과 직면하면서 오직 기도할 수 있는 일밖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나는 무릇 기도란 몸의 아픔과 이어진 것일 때 비로소 기도다워진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어려운 일’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에 직면하여 드리는 기도는 편의를 위한 게으른 떼쓰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질병은 다르다. 그 아픔이 치유 불가능하다는 것은 기도를 통해 수용될 때 비로소 꿈의 범주 속에 수용된다. 참으로 불가능한 현실이 아니면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다. 몸의 아픔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거듭거듭 확인하게 한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거듭거듭 기도한다. 그렇게 했다. 기도의 성취 여부를 묻는 것은 그가 질병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 ‘밖의 자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차피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몸짓이 다만 기도라면 그것을 하지 않을 까닭은 없다. 질병은 내게, 우리에게 이러한 현실로 있다. 몸이 현존하는 언제 어디에서나 그렇다.   

  사랑하는 여인이 숨을 거두었을 때, 나는 내 기도의 성취를 확인했었다. 이제부터는 결코 몸의 아픔을 이 여인은 겪지 않으리라는 위로 때문이었다. 성취되지 않는 기도는 없다. 우리의 삶은 늘 꿈이다.


 死 

  몸의 소멸은 아픔을 가시게 해준다. 삶의 마디마디에 낀 그 온갖 사연들도 잠잠하게 해준다. 그랬었다. 몸이 없으면 있는 게 없다. 남는 게 없다고 해도 좋다. 

  아낙네는 화장품을 아꼈다. 비싼 것은 감히 살 엄두도 못 냈다. 친구가 외국에 다녀왔다면서 사준 크림을 그녀는 아끼고 아껴 썼다. 그러다 유효기간이 그만 지나 아직 반도 안 쓴 크림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울상을 한 채 화장대 위에 얹어 놓고 있었던 것을 남정네는 기억한다. 아낙네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남정네는 그녀의 화장대를 치우지 못했다. 꽤 오랫동안.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난 어느 봄날, 남정네는 검은 비닐봉지를 가지고 와 화장대에 있는 모든 화장품을 한꺼번에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낙네의 몸의 사라짐이 이렇게 완성되었을 때, 남정네는 갑작스러운 고요를 느꼈다. 없음과 있음이 아울러 제각기 자기 자리를 벗어나, 고요 안에서 스스로 자기를 지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고요가 아낙네를 어떻게 이어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몸이 더는 아프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고요가 남정네를 어떻게 이어갔는지는 그릴 수 있다. 그는 곧 그 고요에서 벗어나 소음의 현실 속에서 그의 삶을 이어갔다. 잊음은 상실의 흔적을 지워갔다. 몸은 고요 속에 머물 수 없어 몸이다. 몸은 언제나 새로운 오늘을 만나 새 삶을 빚는다. 다시 죽음의 고요 속에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 침묵의 늪에 들어설 때까지는 그렇다. 그렇다고 남정네는 스스로 다짐했다. 그런데 그 과정은 이제는 없는 아낙네와 더불어 있었던 소음의 세계와는 다르다. 고요의 경험은 남정네로 하여금 ‘더불어 있었던’ 세월에서는 꿈도 꾸지 못한 삶을 스스로 숨 쉬게 했다.    


  죽음은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이다. 몸의 현실에서 죽음처럼 당연하게 ‘당연한 자연’이란 없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있는 몸의 몸다움이 초래하는 자연스러운 몸의 현실이다. 그렇게 총체적이고, 그렇게 완결적이고, 그처럼 절대적인 현상이 다시 어찌 몸에서 일 수가 있겠는가. 몸은 언제나 삐거덕거리지만 죽음에서만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죽음을 구현한다. 그런데 그 일상이 사람들에게 사건이 된다. 마치 그 남정네의 경우처럼.

  사람들은 죽음을 수습(收拾)한다. 사건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망자가 각별하게 비일상적으로 다루어진다. 하지만 실은, 모든 사건에서 그렇듯이, 망자는 치밀하고 정교한 ‘절차’에 의해 ‘치워’지는 것이지 ‘모셔’지는 것은 아니다. 수습해야 하는 일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처치(處置)다. 흥미로운 것은 치우면서도 모신다는 기술(記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까닭은 어쩌면 너무 분명하다. 일상을 사건화하고 있는 것이다. 상상도 못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는 데 그 흥미로움이 자리 잡고 있다. 자연인 줄 알면서도 아니라고 하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 아니면 흔히, 우리는 늘 속고 속이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로 이를 가릴 때가 있다. 죽음의례에서 우리는 그렇다고 하는 사실이 극화(劇化)된 현실과 만난다.  

  까닭인즉 다른 것이 아니다. ‘자기의 경우’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자기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자기도 살아있는 자들에 의하여 치워질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것은 좀 싫다. 그 싫음을 분석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내가 나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안다. 그런데 그거야말로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가장 버거운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일상을 사건화하는 일은 삶의 일상을 파열(破裂)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상이 깨지는 것이다. 사건을 일상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최소한 사건이 야기할 일상의 깨짐을 예방하여 일상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경각심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일상의 사건화는 다르다. 지극히 당연하게 있어 온 일, 있을 일, 누구나 겪을 일을 마치 꿈도 꾸지 못한 난데없는 없어야 할 일, 없었던 일이 발생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일은 정상을 일탈하는 일이다. 그것은 바른 인식도, 성숙한 정서도, 고상한 지향도 아니다. 건강한 모습일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음의례의 화려함은 일상의 처참한 붕괴와 비례한다. 죽음의 정치적 의례화에서 우리는 종종 그렇다고 하는 것을 확인한다. 나는 이를 의도적으로 힘주어 발언하고 있다. 거듭 ‘사실이 그러니까.’라는 말도 곁들이고 싶다.    


  죽고 싶었었다. 춥고 배고팠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윽고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 죽고 싶었다는 생각을 잊어갈 즈음에도 때로 그런 생각이 문득 들곤 했는데, 그때는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누가 무어라 해도 죽음은 내 매일 아침, 아니면 매일 저녁의 현실이어서 죽음을 희구나 두려움이나 초조의 맥락에서 운위한다는 것이 근원적으로 현실성을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죽음은 그대로 내 삶의 현실이다. 그러니 나는 죽음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밖에 내가 지금 내 죽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실은 지금만이 아니다. 삶이 늘 그렇다. 그랬었다. 지금 그것이 더 짙게 내게 채색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철없는 나만의 울안에서 이루어지는 독백인지도 모르지 않는다.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설명할 수 없는 분노와 절망, 그리고 나도 모르는 자학이 내 속에서 가라앉지 않는다. 몸에 폭약을 두르고 시민들 한 복판에서 자신을 터트리는 사람과 그 일로 죽는 사람들, 그리고 며칠 전 우리 동네 길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배달청년의 일이 지워지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왜 ‘흐름의 마디를 건너 뛴 사건’으로서의 죽음을, 일상이기를 거부한 죽음을, 우리는 살아야 하는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바르게, 정직하게, 누구나 서로 아껴주면서 잘 살았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터인데….’라고 하는 말이 내포한 온갖 사유(事由)의 설명이 넘친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위로해줄 수 있을는지, 그럴 수 있는 힘이 과연 그 설명에 담길 수 있을는지. ‘똑똑한 사람’들의 자기 정당화의 구실로 작동하는 것 말고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신비의 용출을 확인한다는 말의 성찬에서라도 무슨 출구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내 못난 또 다른 사치일는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것을 과불하는.


  하지만 여전히 죽음은 내 죽음을 내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내 몸의 현실이니까. 

  아우가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치료가 불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달려가 아우를 만났다. ‘얼마 남은 것 같지 않아요.’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그래. 그렇구나.’라고 응수했다. 늦기 전에 사람들과 만나 풀지 못한 것들 모두 다듬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래야겠지.’라고 나는 말했다. 크리스마스 날 나는 아우가 다니는 교회에 가서 아우와 나란히 앉아 예배를 보았다. 아우가 눈물을 훔쳤다. 새해, 첫 주말, 아우는 자기가 차를 몰고 병원에 들어갔다. 그러기 전에 나는 아우와 영정사진을 사진첩에서 골랐다. ‘웃는 얼굴로 하고 싶어요.’라고 그가 말했다. 우리는 등산사진에서 그의 환한 얼굴을 찾았다. 외국에 있는 두 아들이 왔을 때는 통증완화센터에 있었다. 내게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라는 찬송가를 불러달라고 했을 때는 이미 섬망(譫妄) 현상이 가끔 나타날 때였다. 나는 그 찬송을 부르다가 나도 모르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우가 간신히 눈을 떴다. 그리고 말했다. ‘고마워요. 아버지 노릇 대신 해주셔서요.’라고. 그리고 말을 이었다. ‘참 행복했어요. 우리가 이쯤 살아온 게요. 감사해요. 모두에게.’ 의사가 계수에게 인공영양제 공급을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본인에게 이 말을 전했다. 아우가 손가락으로 오케이 표현을 했다. 웃음이 얼굴 전체에 흘렀다. 그리고 20시간 뒤 아우는 잠들 듯이 떠났다. 2월 1일 새벽 2시 17분이었다. 다음다음 날, 아우는 한 줌 재가 되어 어머님 옆에 묻혔다.  

  나는 내 죽음 다음에 아버님을 뵐 거다. ‘당신은 몸을 어디다 두고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하고 여쭈어 보고 싶지만, 저리게도 여쭙고 싶은 물음이지만, 아마 나는 그 물음을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못할 거다. 어머님도, 큰 누님도, 아우도 만날 거다. 사랑한 여인도 만날 거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들을, 그러니까 살아있는 내 피붙이를, 그곳에서 기다릴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이 꿈 이외의 죽음 이후는 내게 사치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나의 출생으로부터 비롯하여 내 삶이 이리도 길게 흐른다는 사실, 흘러왔다는 사실, 그런데 내가 내 삶의 주인이기를 선언하고 사는 일이 거의 불가능한 채, 그래도 그렇게 주인 노릇을 하는 양 내 삶을 이어왔다는 사실, 나는 설명할 수 있는 것 하나 없는 삶을 설명하려 도로(徒勞)로 점철된 내 삶을 때론 측은해 하지만,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생로병사에 그처럼 막연한 감사를 하고 싶은,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저 스스로 확인하는 나를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 내 죽음을 맞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언이었으면 좋겠다. 내 몸의 마지막이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그 꿈을 살고 싶다. 아니,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면, 아예 내 몸은 그렇게 살아왔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종교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이 꿈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고마운 꿈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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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정진홍 선생님의 글을 안내하는 이야기들로 남은 날들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편집을 진행하면서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긴 호흡의 글이지만 그냥 그대로 내 놓기로 했습니다. 그저 글의 '울림'을 그대로 놔둬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더 사족을 달지 않고자 합니다. 그저 제목으로만...


생로병사: 종교학적 자리에서의 자전적 에세이


그 이야기는 3월 31일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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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주제는 생로병사(生老病死)로 정해졌습니다. 월간 종교인문학의 첫 주제이니만큼 글감을 광범위하게 열어놓고 필자들의 차별적인 관점이 반영된 글을 모으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기획입니다. 


생로병사는 ‘일생(一生)의 다른 표현입니다. 불교와 같은 종교에서는 이를 세상에 태어난 자에게 불가피하게 닥쳐오는 고통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그저 회피하고 싶은 부정적인 계기로만 여기지 않습니다. 아기를 낳은 부부에게 축하를 하고 태어난 날을 기념하며, 나이가 들면서 어른의 의무와 권리를 갖게 되고, 61세, 70세, 80세가 된 노인을 위해 잔치를 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와 가족에게 닥쳐올 죽음에 대해 준비를 하고, 심지어 준비 없이 엄습한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생로병사에 대해 투명하게 예측하면서 담담히 대응할 수 없습니다. 사실 생로병사는 정해진 순서대로 겪게 되는 일생의 정연한 단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수많은 병과 죽음은 생각하지도 못한 때에 닥쳐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병들거나 죽기도 하고, 병을 갖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자마자 세상과 이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 일은 자연스럽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세상사에 노련(老鍊)한 어른이 되는 것과 동일시될 수는 없습니다. 나이와 출산과 장애와 질병을 이유로 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이 위태롭게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생로병사는 경제적인 여유를 가진 자와 못가진 자에게서 똑같이 경험되는 일련의 객관적 과정이 아닙니다. 인간의 종교문화는 이러한 생로병사의 일상을 가로지르며 꿈틀대고 있습니다.


생로병사는 무엇보다 몸을 지닌 인간이 일생을 통해 경험하는 삶의 계기들이며, 고금의 종교문화가 간과할 수 없었던 인간 실존의 핵심적인 토대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일생을 통해서 목격하고 느끼게 되는 신화, 의례, 상징, 믿음, 주술, 환상, 체험 등의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열 두 꼭지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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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월간 종교인문학 예고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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