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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종교인문학 블로그는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매월 내 놓는 종교문화에 대한 한 발 더 들어간 논평과 에세이 등을 '월간 종교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내 놓는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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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돌의 눈'(steinsein)은 연구소 연구원인 심형준 선생님의 '개인 연구노트'의 이름입니다.



종교학 학위를 받고 종종 ‘나는 종교학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종교학자’,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어색하다. ‘학자’는 어떤 활동을 하며 어떤 모습을 하는지에 대한 평소 마음속 이미지와 내가 하는 행동과 모습이 전혀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이 표현은 언제나 어색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도 일부 글에서 ‘종교학자’ 운운한 것이 있으니 낯 뜨거울 뿐이다.


여전히 ‘종교연구자’라든지, ‘인간학연구자’라는 표현이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연구자라는 자의식을 갖는 것은 분명 ‘마스터’에는 이르지 못한 수련 중인,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거나 믿는 것에 여전히 확신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전문가로서 아직은 한참 미숙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학자의 꿈’을 꾸는 연구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 꿈의 가치를 생각해 보게 된 것은 분명 소명의식과 관련이 된다. 그런 생각을 떠올려 본 것은 한종연 뉴스레터로 썼던 글,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종교학의 스펙에 대한 두 번째 단상〉에서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학위를 준비하면서, ‘나의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답답해하기만 했었던 것 같다. 2015년 박사학위논문을 꾸역꾸역 써내고 있었을 때, ‘나의 연구 주제’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렸다. ‘난...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적어도 이전의 내 모습은 아니다.’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생각한 연구 주제는 과거에 내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용은 아니다. 파편들로서는 이미 나의 ‘근본 질문’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2015년, 2016년 그 시기에 과거에 써 놓은 글을 찾아보면서 놀라는 경험들을 했다. 예전에 이런 관심이 있었구나, 이게 지금 내 안에서 이렇게 커나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위 뉴스레터 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앎’은 여전히 존재 지평의 변형이고, 과거의 자신과의 결별적 화해이며, 세계의 변화이다. ‘흔들리는 대지’ 위에서 세계는 탄생하며, 그렇게 聖이 현현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으리라. 소크라테스가 덕을 통해서 정의와 경건을 연결했듯이, 세계의 변형 논리 안에서 세계의 질서는 聖을 피워 올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거기에서 지금 무모하게 ‘종교 밖’의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고 고집스럽게 믿고 있다.



《종교로 보는 세상》에 실린 〈종교학의 스펙〉이라는 글에 붙인 후기에서도 인용한 바 있다. ‘앎’과 존재의 관계, 존재와 기억, 세계인식과 현실감각, 성스러움과 질서, 그런 주제들과 정의(올바름)의 관련 양상, 그리고 그런 현실 감각을 빚어내는 인식체계(인지, 몸, 환경 등)의 일반성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우리의 삶’, ‘나의 삶’으로 되돌아오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 그런 순환 과정을 통해서 지적 성취의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리라는 전망, 아니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종교학 공부를 하면서 내내 걸렸던 문제, ‘내가 지금 하는 것이 내가 사는 세계와 나에게 쓸모가 있는가’라는 의문에 위의 이야기가 나름의 답변이 될 수 있다는 인식에 도달한 것이었다.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종교’를 통해서 ‘인간’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에 긍정적 답변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서 따옴표를 쳐서 종교를 말한 것은 종교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그런 대상으로서의 종교를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 개념에 대한 비판적 이해, 그것이 역사성을 가진 개념이고, 서구 문화권의 구성물이며, 기독교를 핵심 모델로 하고 있으며, 그 확장판이 ‘세계종교’로 나타난 것으로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비춰주는 렌즈는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다음 발을 내딛는 것이 언제나 문제였다. 현실을 왜곡시키는 렌즈로 현상을 분석하는 것의 한계를 인정했다면, 그럼 어떤 렌즈가 필요한가? 이 질문에 적절한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석사학위는 ‘문학 석사’다. 전통에 따른 명명법 일 텐데, 나는 한 번도 그 명칭이 심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소위 ‘객관적 이론화, 일반화’가 어려운 분야의 작업은 죄다 ‘문학일 수밖에 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환기하기 때문이다(이것이 '문학' 비하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설 쓰고 있네'라는 이야기가 다뤄질 수 있는 맥락에서의 '문학'을 말하는 것뿐이다. '문학'은 다른 맥락에서 인간성의 실험장으로서 인류의 값진 정신적 자산의 하나이다). Master of Arts라는 말의 연원과 실질적 의미를 고려하면 ‘문학 석사’는 딱 들어맞는 것 같지는 않다. Art가 기예, 솜씨 정도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맥락에 맞게 하면 ‘인문학 석사’ 정도여야 할까? 그러나 우리는 관습적으로 ‘문학 석사’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으니, 또 그 나름의 의미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 같다.


석사논문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종교학의 ‘과학성’을 ‘근대의 객관적 학문성’ 정도로 이해하고자 할 때, 변함없이 대상의 명료함은 문제가 된다. 서구적 ‘종교’ 개념의 이중성과 이 개념을 사용하는 주체의 위치(제국/민족, 특정 종교 안/밖 등)의 조합수 안에서 복수의 개념이 존재하게 된다. 종교개념의 경계상황이 노출시키고 있는 종교 개념의 복수 상황은 종교 연구자에게도 적용된다. 여기에서 연구자의 개념 선택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연구 대상을 규정하는 방식의 다양성은 해결 불가능한 난제로 남겨지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을 난제로 남겨 놓고, ‘객관적 연구’를 지속한다는 것은 성립되는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타개책이 무엇일지, 해당 글에서는 ‘상상력’과 ‘세계이해의 변화’ 정도로 얼버무리면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정도의 의미를 시사하고자 했다. 당시에는 정말 ‘해법’이 없었다. ‘설득력 있는 소설 쓰기’로서의 인문학적 연구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뿐이었다. 그런 인식을 드러냈던 건 2004년 “쓸모없음의 쓸모”를 이야기한 글에서였다. 5년여가 흐른 상황(2009)에서도 그 문제에서 별 해법을 찾지 못했다.


‘민중의 종교’를 운운하다가 제법 욕을 먹기도 했다(민중의 종교, 그 존재방식). 해당 글을 발전시켜서 논문을 만들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심사에서 혹평을 들어야 했다. 2010년 하반기 종교학회에서 “‘민중종교’에 나타나는 인간의 욕망: 민중의 아편에 대한 재고’”라는 글로 발표를 했었고, 그것을 수정해서 어느 종교학 저널에 투고했다가 그런 평가를 받았다. 이 글은 결국 해체해서 마르크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을 실마리로 해서 ‘아편과 종교’를 이야기하는 글로 바꾸어 “아편(마약)과 종교: 아편의 비유, 그 이면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종교학연구》라는 저널에 실었다.



인간의 종교적 특성을 일반화할 방법, 틀 찾기는 ‘낡은 틀의 재활용’, ‘욕망 개념의 모호성’, ‘어설픈 탈맥락화된 문화 비교’들로 번번이 좌절되었다. 아마 그런 시기에 구형찬 박사의 조언을 여러 번 들었던 것 같다. 별로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진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조언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해 보지 않았다는 게 맞을 듯하다.


인지종교학 이야기가 그 시기 즈음 주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처음 접한 것은 장석만 선생님의 〈종교인류학〉 수업 때였던 것 같다. 2004년 금방이었는데, 그때 제본한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별로 관심을 가지고 보진 않았었다. 한신대 종교와문화연구소,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심포가 이루어졌고 몇몇 의미 있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여전히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환원론에 대한 의심이 하나의 장벽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뇌신경학적 종교연구를 심심치 않게 봤던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너무 조악한 수준이어서 별로 신통치 않다고 판단했다. 학부 때 학내 ‘뇌 주간’ 행사들을 쫓아다녀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뇌신경 치료와 관련된 논의가 많이 다뤄져서 금세 흥미를 잃었었다. 그런 개인적인 경험들이 있어서 더욱 ‘인지과학’, ‘뇌과학’, ‘신경과학’ 등의 연구 방법론으로 종교를 연구하는 것이 아직은 시기상조고, 그것이 무르익으려면 아직 한참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던 것 같다.


박사학위논문 작업이 시작된 이후에 인지종교학의 가능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것 같다. 부지런히 공부했다면 충분히 ‘인지종교학’ 분위기를 많이 담아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는 못했다. ‘성스러운 인간’이라는 범주를 만들어서 ‘비범한 인간에 대한 상상력’을 다루고자 했고, 그래서 영웅, 반영웅, 왕, 폐위된 왕, 조상, 반정-왕, 역적, 도적, 성현, 간신 등이 전형적인 비범한 인간의 상상되는 방식을 ‘일반화할 수 있는 틀’로 다뤄보고자 했다. 성스러움 개념, 예외상태 개념을 이용해서 비범한 인간을 상상하는 논리에 영향을 미치는 세 요소를 인간적 조건(생물학적 구조, 인지능력 등), 상황적 조건(예외상태/전이기), 문화적 자원(모델)으로 정리하였다.



문헌 자료를 이용한 ‘어설프고 조악하며 시론적인 일반화 작업’이 시도되었을 따름이다. 여러 주제의식이 유기적으로 잘 조직되어 정리되지 못했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선명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여러모로 부족한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내 안의 관심사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나의 근본 물음을 선명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문적 의의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 미진함에도 나의 연구가 계속될 수 있는 어떤 자가 발전기를 얻은 개인적 의미가 있는 성과물이다.


무의미한 것을 의미로 변형시키고, 의미를 본질로 규정하면서 현실이라는 딛고 설 자리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생존의 문제, 집단적 수준의 생존과 질서 그리고 권력의 문제, 질서와 권력의 기본 자원이 되는 올바름의 기준, 또 그것이 만들어 내는 상상적 현실, 이러한 문제들이 내게 있어 관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인간에 관한 것들이다. 신화, 의례, 환상, 엑스터시, 진화, 도덕, 정치적인 것, 종교적인 것 등등이 그러한 관심사들 안에서 나름의 좌표들을 설정하게 되었다.


이건 어떤 세계를 보는 눈의 완성 같은 것이 아니다. 겨우 내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느낌적 느낌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할 따름이다. 이제 겨우 공부하는 게 즐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정말 궁금하다. 살아남기 위해서 아등바등 옆 사람들과 손을 잡고 애를 썼던 인간들이 결국 살아남아서 지금의 나와 우리가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종교에 관한 많은 질문들을 해체시키고 물음을 바꿔내면서 인간의 종교적 측면에 대한 연구를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그것은 동시에 다른 학문의 연구와 긴밀히 접목되는 것을 뜻한다) 더 명확한(혹은 검증 가능한) 이론을 구축할 수 있을지.



‘돌의 눈’은 그러한 궁금증에 대한 더디고 느린 공부의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로 삼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1. 학위논문의 발전적 해체와 재구성(인물상징론, 역사적 인물의 영웅화/반영웅화로 상징론 다시 생각해 보기)

2. 인지종교학에 기반을 둔 기독교민속신앙론

3. 사회성의 진화와 도덕성 그리고 종교

4. 사회적 재난과 내러티브


등등의 이야기를 다룰 생각이다.


To be continued...


글: 심형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같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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