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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생로병사

늙음을 보는 관점의 다양성_장석만


1. 매미-연어-동백-사막의 꽃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오랫동안 땅속에 있다가 지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다. 약 한 달 동안 저렇게 소리치다가 땅에 떨어져 죽을 것이다. 5년 혹은 7년의 땅속 생활 끝에 날개를 달고 마음껏 고함치다가 간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자신의 청각을 손상할 정도여서 매미는 잠시 자기 귀를 닫아 놓는다고 한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하늘에 닿고, 산이 울리도록 내지르는 매미의 그 소리를 무시하지 못한다. 필자와 함께 걷다가 매미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춘 노 교수는 가슴이 저려온다고 조용히 말한다. 어느 시인은 그런 매미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근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 박지웅,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매미 소리가 우리에게 주는 처연함은 여름과 함께 그 소리도 곧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에 생긴다. 마음이 애틋하게 곧 스러질 생명체를 향해 기울여지는 것이다. 저절로 아름다움의 감각도 일어난다. 매미만이 아니다.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태어난 강기슭으로 돌아와 죽는 연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몸 안에 있는 한 가닥 힘까지 모두 짜내어 회귀한 다음, 알을 낳고 죽는 연어를 보면서 우리는 결코 심드렁할 수 없다. 


어디 매미나 연어뿐이랴? 목이 꺾기는 듯이 한 송이 꽃이 툭 떨어지는 동백의 지는 모습도 우리들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도대체 왜 꽃잎이 하나씩 날리지 않고, 미련 없이 세상을 하직하는 듯이 그렇게 떨어진단 말인가! 우리는 동백꽃의 지는 모습을 감당하기 어렵다. 송창식의 《선운사》를 우리가 30년 넘게 불러왔고, 앞으로도 부르게 될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에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또 다른 풍경도 떠오른다.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라는 칠레의 아타카마(Atacama) 사막에 핀 엄청난 꽃들! 엘니뇨의 영향으로 20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리자, 사막이 온통 꽃으로 뒤덮인 것이다. 그 풍경을 그냥 아름답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거기에는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생명의 환희와 스러짐이 아주 가깝게 붙어있다. 사막에 습기가 사라지게 되면 그들은 곧 사라지고, 이전의 황량한 사막으로 다시 돌아간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은 불꽃 놀이하듯이 서둘러 꽃을 피우고 말라 죽는다.


Flowers Bloom in Chile's Atacama Desert
Photo:Espores
사진출처: telesurtv.net



2. 인간의 늙음


매미와 연어, 그리고 동백꽃과 사막의 야생화는 모두 닮은 점이 있다. 삶의 정점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몸부림은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보는 이에게 깊은 공감을 남긴다. 우리는 남은 자로서 열심히 살다가 스러지는 자를 보며, 결코 무심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있지만, 그들에게는 없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늙음이다. 그들은 천천히 죽음으로 향하는 늙음의 과정이 없다. 매미는 목청 높게 짝을 찾고 교미하자마자 곧바로 죽는다. 연어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강을 거슬러 올라가, 수정란을 만든 다음에 곧 숨을 거둔다. 동백꽃은 가장 활짝 핀 상태에서 갑자기 목을 꺾고 땅에 떨어지며, 사막의 야생화는 몇 년을 기다려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다음에 서둘러 사라진다. 하지만 인간은 어떠한가? 그들은 번식기가 지난 다음에도 한참동안 살아남아 있다. 


필자에게는 가끔 불현듯이 생각나곤 하는 영화가 있는데, 오래 전에 본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가 그 가운데 하나다. 1983년에 만들어졌으나,[각주:1] 한국에 개봉된 것은 1999년이다. 하지만 필자는 개봉관이 아니라, 비공식 영화제에서 보았으니 아마도 1980년대 후반에 접했을 것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부모 나이가 70살이 되면 자식이 그를 깊은 산 속에 내다버려야 하는 일본의 시골 마을이다. 일본판 “고려장”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렇게 부모를 버리는 까닭은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마을에서 식량을 절약하기 위함이다. 45살의 장남, 타츠헤이(辰平)가 건강하지만 이제 70세가 된 어머니, 오린을 마을의 관습대로 산 속에 버리는 이야기이다. 자연의 순환대로 생명의 탄생, 성적 교접, 그리고 죽음은 “단호하게” 이어진다. 


이 단호함은 노골적인 성 행위와 삶의 폭력적 장면으로 나타난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보기에 여기에 윤리가 끼어드는 것은 어쭙잖은 짓이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곤충과 새, 뱀 등의 동물이 태어나는 장면, 그리고 서로 잡아먹고, 노래하며, 교접하는 장면이 클로즈업되는데, 결국 인간도 이들과 다를 게 없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어머니 오린은 건강한 치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식량이 부족한 마을에서 부러움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린은 이제 쓸모없어진 자신을 보이기 위해 스스로 돌로 이빨을 부러뜨린다. 오린으로 나오는 사카모토 스미코(坂本澄子)는 이 장면을 위해 실제 자신의 이빨을 여러 개 부러뜨렸다고 한다. 이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이나 배우들이 가졌던 분위기를 짐작할 만하다.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북극의 이누이트인들도 눈이 침침해져서 바느질을 하기 힘들게 되면 스스로 집을 떠나 북극곰이 출몰하는 곳으로 간다. 곰이 자신을 먹고, 그 곰을 후손들이 잡아먹는다. 어차피 삶은 그런 식으로 움직여야 되는 것이 아니던가? 


오린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마친 다음에 장남 타츠헤이에게 나라야마 산으로의 여행을 강요한다.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장남을 재혼시키고 차남에게 총각 딱지를 떼게 하는 것이다. 오린은 타츠헤이의 등에 업혀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라야마 산 속으로 들어간다.


이 마을에서 70살은 삶의 한계선이다. 더 이상은 삶을 영위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이 마을에서 늙음은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인간도 매미와 연어, 그리고 동백꽃과 사막의 야생화처럼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 같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끼워 넣은 동물의 장면도 그런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늙음이 있다. 〈나라야마 부시코〉가 만들어진 것도 그것을 전제한다. 


고(古)인류학자 이상희는 현생 인류의 노년기가 갑자기 늘어난 것이 30,000년 전인 후기 구석기 시대라고 말한다. 그동안 유타대학교 커스틴 호크스(Kirsten Hawkes) 교수의 “할머니 가설”에 따라 200만 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부터 노년기가 부각되었다고 봤는데, 이상희는 이를 반박한 것이다. 커스틴 호크스는 할머니가 손주를 돌봄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보다 잘 유지하기 때문에 폐경기의 할머니도 필요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였다. 하지만 이상희는 노년이 후기 구석기 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본 것이다. 그게 맞는다면, 왜 하필 그때였을까? 


이상희에 따르면 당시에는 기후변화가 예측 불허할 정도로 변화무쌍했는데, 이런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할 필요가 부각되었고, 축적된 정보의 필요성이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그 지식 축적을 구현하고 있던 것이 바로 노인이었던 셈이다. 3대(代)가 모여 노인이 체득한 지식을 나누고 후대에 전수하는 것이다. 기원 전 30,000년경부터 이른바 예술적 행위 및 상징적 활동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것도 노년층의 형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각주:2]


그런데 이상희의 노년은 우리가 생각하는 노년과는 사뭇 다르다. 그가 노년을 설정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젊은이의 시기를 체구의 성장이 끝나고 재생산이 가능한 때로 보고 맨 뒤쪽 어금니인 사랑니가 나온 시점을 기준으로 삼았다. 반면 노년기는 사랑니의 치아 마모도가 젊은이보다 2배 더 닳은 시점으로 정했다. 사랑니가 18살 때 나온 젊은이는 이 때 재생산이 가능한 나이가 되어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가 자라 18살이 되었을 때 손주를 봤을 것으로 간주하여 젊은이의 2배를 노년으로 삼은 것이다. OY 비율(Old/Young ratio)은 젊은이 수에 대한 노인 수의 비율을 말하는데, 1을 넘지 못하다가 후기 구석기 시대에 갑자기 비율이 2를 넘게 되었다는 것이다.[각주:3]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이상희가 주장하는 노년이 우리네의 30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 언제부터 늙은이로 여겨야 하는가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고, 기준이 되는 시대와 사회마다 달라질 것이다.


3. 다양한 늙음: 그리드-그룹(Grid-Group) 분석


필자의 관심사는 현재 우리가 노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이고, 급격하게 바뀌는 노년에 대한 관점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우선 노년 혹은 노인에 대한 태도가 다양하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 자신의 관점을 마치 보편타당한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 기준에 의거하여 작업을 행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관점을 당연하게 간주하면서 출발하는 대신, 그 관점이 소속되어 있는 보다 포괄적인 맥락을 검토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요청된다.


여기에서 늙음을 보는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1921-2007)의 “그리드-그룹”(grid-group) 분석에서 늙음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더글러스는 “그리드”와 “그룹”의 두 가지 축을 만들고 그 강약(强弱)에 따라 4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그리드는 수직축으로서, 분류체계 혹은 규범의 규제력이 강하게 작용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위, 아래로 구분된다. 공유된 분류체계가 사람들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칠 경우에 강한 그리드인 반면, 약할 경우에는 개인적 분류체계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분류체계 혹은 세계관의 공유 정도를 알려주는 것이 그리드이다. 


그룹은 수평축으로서, 특정집단에 소속됨으로써 받는 압력을 나타낸다. 집단내의 관계로 인해 개인의 행동과 사유가 소속 집단의 압력에 통제되는가, 아니면 그로부터 벗어나는가에 따라 오른쪽과 왼쪽으로 구분된다. “그룹”은 개인의 행동과 사유가 사회적 집단의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제약받는 정도를 나타낸다. “그리드”와 “그룹”의 강약(强弱)에 따라 4가지 유형이 만들어진다. 



각 영역의 기본 특징과 늙음에 대한 태도는 다음과 같다.


1) 늙음은 저주


A 영역: 약(弱)그리드-약(弱)그룹: 개인주의(individualism)


여기에서 개인은 특정 집단의 소속 여부에 별로 관계없이 사회적 경험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인의 사회적 맥락을 이루는 외적 경계(境界)에 제약받지 않으며, 개인을 분류하는 사회적 규범에도 묶이지 않는다. 개인의 거의 유일한 관심사는 사적(私的)인 이익 추구이다. 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자유 시장 체제가 이상적인 상태로 간주되며, 경쟁자로부터도 부러움을 사는 혁신적 기업가가 이상적인 인물이다. 집단 외부뿐 아니라, 집단 내부의 경계선이 모두 분명하지 않다. 


A 영역에서 나이를 먹는 것은 결코 자랑스럽지 않다. 늙는다는 것이 공경의 증좌이기는커녕 물질적 정신적 능력의 쇠퇴를 의미하며 경쟁에서 탈락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늙은이에 대한 배려나 우대 정책이 있을 리 없다. 늙은이는 저절로 배제된 자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 늙은 모습은 수치스럽고 숨겨야 하는 것처럼 간주되어서 가능한 한, 젊은이와 같은 용모와 몸매를 가지려고 애를 쓰게 된다.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으며, 젊은이와 같은 스타일과 정열적인 색깔로 치장한다. 질병에 걸리면 개인이 알아서 처리해야 하듯이, 몸이 늙게 되면 개인이 알아서 그 과정을 멈추게 하든지 천천히 완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인이면서 병자(病者)는 최악의 조합으로서, 이중적인 “루저”(loser)를 나타내며 거의 저주받은 상태에 있다.


2) 소외되는 늙음


B 영역: 강(强)그리드-약(弱)그룹: 숙명주의(fatalism)


개인의 행동이 사회적 분류체계 혹은 세계관에 의해 강하게 규제되어, 개인의 사회적 역할 및 지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반면, 사회에 통합된 정도가 약해서 개인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다. 자기의 역할을 완수하더라도 사회적 보상을 받지 못하며, 자신을 고립된 상태로 유지시키는 힘이 멀리 있으며 비인격적이라고 여긴다. 외부의 힘에 의해 통제되고 있지만, 자신은 다른 이들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처지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이 이 영역의 전형적인 구성원이다. 따라서 개인의 자율성이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게 되며, 소외된 채 외부에서 부과된 규범에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집단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분명치 않은 반면, 집단 내부의 경계선은 뚜렷하게 분할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B 영역에서 죽음은 전적으로 사적(私的)인 문제이며, 전형적인 죽음은 고독사(孤獨死)다. 매스컴에서 고독사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것이 B 영역에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통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안락사는 긍정적으로 수용된다. 비록 절망적인 해결책이지만 필요하다고 본다. 병자(病者)가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여지는 없다. 국가를 비롯하여 여느 집단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병자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취약한 상태에 처해있다. 


노인도 병자의 상태와 비슷하다. 노인에 대한 복지정책은 마련되어 있지도 않고, 앞으로도 마련될 가능성이 없다. 아무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지 않으며 당사자도 자포자기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노인이 비슷한 처지의 이들과 접촉하지 않고 격리되어 있으며, 젊은이들과의 관계도 없다. 집단의 지원(支援)도 없는데다가 친지와 친구와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철저한 고립무원 속에 처해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 대한 개선의 의지가 없고, 그런 조건에 대해 저항할 생각도 없이 무기력감에 빠져있다. B 영역의 미덕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도 그런 상황을 만든 권력에 그저 복종하는 것이다. 


3) 늙음은 성숙


C 영역: 강(强)그리드-강(强)그룹: 위계주의(hierarchism)


개인의 모든 행동과 생각이 규범에 의해 치밀하게 규제되어 정해진 대로 이루어지게 만들며, 집단 소속감이 강하게 작용한다. 집단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개인의 모든 삶을 전반적으로 통제하고, 그의 사회관계를 좌우하기 때문에 개인 선택 폭이 최소화된다. 그가 태어난 가문, 성별 등에 따라 지위와 할 일이 정해지는 위계적 질서화가 촘촘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분류체계의 발달이 고도화된다.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혈연(血緣)과 지연(地緣)그리고 학벌(學閥)에 따른 인맥(人脈)에 따라 사회관계가 형성된다. C 영역은 집단의 안과 밖을 분리하고, 안에 포함된 내부인과는 강한 유대감을 표시하는 반면, 밖으로 배제된 외부인에게는 강한 배타심을 드러낸다. 집단의 강한 결속감 때문에 내부 분열을 경계하며, 집단의 규모를 크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집단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선이 뚜렷하고, 집단 내부의 경계선 역시 분명하다는 특징이 있다.   


C 영역에서는 늙는 것을 수치스럽거나 감추어야 할 것으로 보는 대신, 자연스러운 일로 여긴다.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의 활력이 떨어져도, 평생에 쌓인 지혜가 더욱 빛을 발한다는 식으로 젊은이와 구별되는 노인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노인의 독자적인 생활 스타일을 인정해준다. 따라서 체제가 원활하게 운영되는 한, 젊은이와 노인 사이의 세대 갈등은 발생하지 않는다. 사회는 노인을 공경할 만한 존재로서 간주하고, 융숭한 대접의 조건을 마련한다. C 영역은 늙은이에게 매우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4) 늙음, 자연스러운 그러나 불안한 지위


D 영역: 약(弱)그리드-강(强)그룹: 평등주의(egalitarianism)


개인의 사회적 경험은 무엇보다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면서 집단의 결속을 다짐하는 모습을 취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개인이 발휘하는 힘은 오직 집단의 가치와 목표를 내세울 때 드러나며, 집단의 이름을 걸고 움직이는 소속원은 집단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반면 집단의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내부적 역할 분할 및 서열(序列)적 질서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집단 내 관계가 어쩔 수 없이 모호성을 띠게 된다. 그래서 만일 내부의 갈등이 생길 경우에 이를 해소할 효과적인 기제가 없기 때문에 체제의 불안정이 늘 잠재되어 있다. 갈등 유발자에 대한 거의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처벌이 집단으로부터 축출(逐出)이다. 


집단 안에서는 모든 이가 서로 평등하고, 신의(信義)로우며, 외부의 적대적인 세력과 맞서서 함께 단합할 것으로 기대된다. 내부 갈등은 마지막 단계까지 수면 밑에서 잠재되어 있다가, 드러나는 순간 파국을 맞게 된다. 외부세상을 적대시하는 평등주의적 코뮨 혹은 섹트(sect)가 전형적인 예이며, 리더가 집단을 이끌고, 의사결정을 내리며, 권위를 행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집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서 대개 소규모이다. 집단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선이 뚜렷한 반면 집단 내부의 경계선은 분명하지 않은 점이 기본 특징이다. 


D 영역에서 병에 걸리는 것은 신체의 방어선을 뚫고 침입한 사악한 존재가 준동(蠢動)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치료는 이런 사악한 기운을 쫓아버리는 것이다. 병자(病者)의 몸은 선과 악의 대결이 일어나는 곳이며, 공동체는 이런 결투에 승리하도록 병자를 지원해줄 의무가 있다. 병자에 대한 돌봄은 집단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병자와 간호하는 사람 모두 악의 세력에 맞서 전투를 선의 승리로 이끌기 위해 영웅적으로 노력하는 존재들이다. 


D 영역에서는 늘 환자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간호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다. 또한 죽음은 삶의 단계에서 거쳐야 하는 하나의 자연적인 과정으로 간주된다. 장례식은 공공적인 관심사이므로 모두가 참석한다. 자살하는 것과 안락사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자살이 칭송되는 경우는 집단을 위해 자기희생을 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동안(童顔)을 위해 주름진 얼굴을 성형수술하려고 하지도 않고, 축 늘어진 피부를 팽팽하게 당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노인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간주되며, 집단 내 논쟁이 격화되었을 때,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D 영역에 늘 잠재되어 있는 체제적 불안정성 때문에, 내부인과 외부인의 대립, 선과 악의 대결 구도, 흑백 논리가 지배할 때에는 노인의 지위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만일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의 의견 대립이 내부인-외부인의 갈등 구도로 전개될 경우에 집단의 폭력적 에너지가 늙은이를 희생양 삼는 방향으로 진행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5) 늙음의 초월


E 영역: 은둔자”(Hermit)의 영역


“그리드-그룹” 분석의 특징은 구분된 네 가지 영역이 거의 완결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네 가지 영역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간과하는 약점이 있다. 각 영역과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면 좌우, 상하, 그리고 대각선의 방향으로 활발한 움직임이 생기는데, 여기서 각 영역이 합치는 중간 지대가 중요해진다. 


“그리드-그룹” 분석에서 이 중간 지대는 텅 비어있는 곳, 혹은 혹처럼 붙어있는 곳으로서 별로 의미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다섯 번째인 E 영역은 각 영역의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곳으로서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은둔자”의 영역은 네 가지 범주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자신의 변화를 위해 숨을 고르는 곳, 자신들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곳, 그리고 다른 영역으로 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곳의 성격을 띤다. “은둔자” 영역은 교섭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여, 모든 형태의 강압적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을 취한다. 또 다른 특징은 앞의 네 영역이 각각 나머지 세 영역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낸다면, “은둔자” 영역의 아이덴티티는 네 영역을 한 묶음으로 하면서 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은둔자”는 다른 네 영역의 구성원과는 구별되는 성격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내세운다. 예컨대 네 영역은 갑론을박하면서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은둔자” 영역에서 볼 때, 그들은 비슷하다. 반면 은둔자는 4가지 영역의 소속원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은둔자의 초월적 성격(transcendence)이 강조되며,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성격이 부각된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의 일치성, 서로 상반된 것의 합일성, 삶의 고통으로부터 궁극적인 해방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 등의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이처럼 자율성과 초월성을 강조하는 “은둔자” 영역에서 늙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 1883–1983)은 전형적인 예를 보여준다. 그는 왕성한 삶을 영위하다가 100살이 되어 한 달 반의 단식 끝에 스스로 목숨을 거둔 사람이다. 


헬렌과 스콧 니어링 부부는 화폐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했고 돈 사용을 자제했다. 자신들이 먹는 것은 텃밭에서 길러 자급자족했다. 그들은 하루를 둘로 나누고, 반(半)은 빵을 얻기 위한 노동(“bread labor”)을 하고 다른 반(半)은 글 읽기와 글쓰기, 음악 연주 등 의미 있는 활동에 썼다. 스콧 니어링의 주름 가득한 늙은 얼굴이 보여주듯이 그는 외모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늙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일하는 것은 늙는 것을 막아준다. 나의 작업은 나의 인생이다. 어느 한쪽 없이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 그리고 지루해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 희망과 미래의 계획대신 후회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늙게 된다. 가치 있는 일에 관심을 쏟고 일을 하는 것이 나이 드는 것을 막는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이석태 역, 서울: 보리, 1997), 215쪽.


헬렌은 스콧에게 누가 늙었다라고 하면 화를 냈다. 헬렌은 대부분의 사람이 60살 정도에 늙기 시작한다면 스콧은 90살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늙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스콧이 50대에 햇볕 속에서 일을 해서 얼굴에 주름이 많지만, 몸과 마음의 활기는 왕성했다는 것이다.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삶은 “은둔자” 영역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들의 자립적 생활과 불굴의 저항정신, 그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 이론과 실천의 합일, 죽음을 맞이하는 담담한 태도는 삶의 자율성과 초월성을 강조하는 자세와 잘 연결된다. 늙음에 대한 태도에도 은둔자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늙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도 아니다.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측면과 세상 전체를 관조하면서 파악하는 측면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태도는 앞의 네 가지 영역 어디에도 발견하기 힘든 것으로서, 다섯 번째 영역의 특징을 나타낸다.


4. 마무리를 대신하여


단세포 동물에게는 늙음이 없다. 대부분의 다세포 동물도 마찬가지다. 포유류의 경우에, 이제 비로소 인간과 비교될 수 있는 늙음의 주제가 거론되고 있지만[각주:4] 인간의 늙음과 견주기는 힘들다. 늙음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길이와 농도의 측면에서 다른 포유류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늙음을 대하는 태도는 이미 거기에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물론 인간의 경우에는 더하다. 


필자가 메리 더글러스의 “그리드-그룹” 분석에 주목한 것은 늙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다양하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어떻게 그 다양한 태도를 평가할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살펴보는 과정에서 그 가운데 어느 태도가 옳고 그르냐고 묻는 것은 적합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특정의 조건이 결합하면서 특정의 태도가 등장하고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사회적 문화적 분석이 그리드-그룹의 4가지 유형 가운데 A와 C의 영역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또한 전통과 근대, 집단적 사고(思考)와 개인적 사고, 공동체와 이익단체 등의 이분법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그리드-그룹”은 A와 C 영역만 있는 것이 아니고, B와 D의 영역도 있음을 환기시켜 주었다. 


또한 각 영역의 관점이 다른 영역을 전제하면서 만들어진다는 점도 깨닫게 해주었다. B의 숙명적 고립주의자와 D의 전투적 코뮨주의자의 영역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으면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게 된다는 점도 알 수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이 전(全) 지구에 걸쳐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전체적 관점을 갖는 것은 긴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각 영역의 상호작용의 측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5의 영역인 “은둔자” 영역은 전 시스템을 조망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우리가 반드시 은둔자의 시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쨌든 포괄하는 시각에서 설명을 해야 한다. 


늙음을 보는 이 다섯 가지 관점이 구체적으로 우리사회에 어떻게 서로 얽히고 주고받는 작용을 하는가? 그래서 어떤 효과를 산출하고 있는가? 다음에 이 주제를 살펴보고 싶다.



  1. 후카자와 시치로(深沢七郎)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으로, 1983년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이 소설은 1958년에 기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된 적이 있다. [본문으로]
  2. 이상희, 윤신영, 《인류의 기원》, 사이언스북스, 2015, 105-115쪽. [본문으로]
  3. 위의 책, 111-112쪽. [본문으로]
  4. 앤 이니스 대그,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 노승영 옮김, 서울: 시대의 창, 2016.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