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미-연어-동백-사막의 꽃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오랫동안 땅속에 있다가 지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다. 약 한 달 동안 저렇게 소리치다가 땅에 떨어져 죽을 것이다. 5년 혹은 7년의 땅속 생활 끝에 날개를 달고 마음껏 고함치다가 간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자신의 청각을 손상할 정도여서 매미는 잠시 자기 귀를 닫아 놓는다고 한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하늘에 닿고, 산이 울리도록 내지르는 매미의 그 소리를 무시하지 못한다. 필자와 함께 걷다가 매미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춘 노 교수는 가슴이 저려온다고 조용히 말한다. 어느 시인은 그런 매미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근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 박지웅,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매미 소리가 우리에게 주는 처연함은 여름과 함께 그 소리도 곧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에 생긴다. 마음이 애틋하게 곧 스러질 생명체를 향해 기울여지는 것이다. 저절로 아름다움의 감각도 일어난다. 매미만이 아니다.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태어난 강기슭으로 돌아와 죽는 연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몸 안에 있는 한 가닥 힘까지 모두 짜내어 회귀한 다음, 알을 낳고 죽는 연어를 보면서 우리는 결코 심드렁할 수 없다. 


어디 매미나 연어뿐이랴? 목이 꺾기는 듯이 한 송이 꽃이 툭 떨어지는 동백의 지는 모습도 우리들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도대체 왜 꽃잎이 하나씩 날리지 않고, 미련 없이 세상을 하직하는 듯이 그렇게 떨어진단 말인가! 우리는 동백꽃의 지는 모습을 감당하기 어렵다. 송창식의 《선운사》를 우리가 30년 넘게 불러왔고, 앞으로도 부르게 될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에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또 다른 풍경도 떠오른다.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라는 칠레의 아타카마(Atacama) 사막에 핀 엄청난 꽃들! 엘니뇨의 영향으로 20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리자, 사막이 온통 꽃으로 뒤덮인 것이다. 그 풍경을 그냥 아름답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거기에는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생명의 환희와 스러짐이 아주 가깝게 붙어있다. 사막에 습기가 사라지게 되면 그들은 곧 사라지고, 이전의 황량한 사막으로 다시 돌아간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은 불꽃 놀이하듯이 서둘러 꽃을 피우고 말라 죽는다.


Flowers Bloom in Chile's Atacama Desert
Photo:Espores
사진출처: telesurtv.net



2. 인간의 늙음


매미와 연어, 그리고 동백꽃과 사막의 야생화는 모두 닮은 점이 있다. 삶의 정점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몸부림은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보는 이에게 깊은 공감을 남긴다. 우리는 남은 자로서 열심히 살다가 스러지는 자를 보며, 결코 무심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있지만, 그들에게는 없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늙음이다. 그들은 천천히 죽음으로 향하는 늙음의 과정이 없다. 매미는 목청 높게 짝을 찾고 교미하자마자 곧바로 죽는다. 연어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강을 거슬러 올라가, 수정란을 만든 다음에 곧 숨을 거둔다. 동백꽃은 가장 활짝 핀 상태에서 갑자기 목을 꺾고 땅에 떨어지며, 사막의 야생화는 몇 년을 기다려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다음에 서둘러 사라진다. 하지만 인간은 어떠한가? 그들은 번식기가 지난 다음에도 한참동안 살아남아 있다. 


필자에게는 가끔 불현듯이 생각나곤 하는 영화가 있는데, 오래 전에 본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가 그 가운데 하나다. 1983년에 만들어졌으나,[각주:1] 한국에 개봉된 것은 1999년이다. 하지만 필자는 개봉관이 아니라, 비공식 영화제에서 보았으니 아마도 1980년대 후반에 접했을 것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부모 나이가 70살이 되면 자식이 그를 깊은 산 속에 내다버려야 하는 일본의 시골 마을이다. 일본판 “고려장”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렇게 부모를 버리는 까닭은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마을에서 식량을 절약하기 위함이다. 45살의 장남, 타츠헤이(辰平)가 건강하지만 이제 70세가 된 어머니, 오린을 마을의 관습대로 산 속에 버리는 이야기이다. 자연의 순환대로 생명의 탄생, 성적 교접, 그리고 죽음은 “단호하게” 이어진다. 


이 단호함은 노골적인 성 행위와 삶의 폭력적 장면으로 나타난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보기에 여기에 윤리가 끼어드는 것은 어쭙잖은 짓이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곤충과 새, 뱀 등의 동물이 태어나는 장면, 그리고 서로 잡아먹고, 노래하며, 교접하는 장면이 클로즈업되는데, 결국 인간도 이들과 다를 게 없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어머니 오린은 건강한 치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식량이 부족한 마을에서 부러움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린은 이제 쓸모없어진 자신을 보이기 위해 스스로 돌로 이빨을 부러뜨린다. 오린으로 나오는 사카모토 스미코(坂本澄子)는 이 장면을 위해 실제 자신의 이빨을 여러 개 부러뜨렸다고 한다. 이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이나 배우들이 가졌던 분위기를 짐작할 만하다.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북극의 이누이트인들도 눈이 침침해져서 바느질을 하기 힘들게 되면 스스로 집을 떠나 북극곰이 출몰하는 곳으로 간다. 곰이 자신을 먹고, 그 곰을 후손들이 잡아먹는다. 어차피 삶은 그런 식으로 움직여야 되는 것이 아니던가? 


오린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마친 다음에 장남 타츠헤이에게 나라야마 산으로의 여행을 강요한다.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장남을 재혼시키고 차남에게 총각 딱지를 떼게 하는 것이다. 오린은 타츠헤이의 등에 업혀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라야마 산 속으로 들어간다.


이 마을에서 70살은 삶의 한계선이다. 더 이상은 삶을 영위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이 마을에서 늙음은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인간도 매미와 연어, 그리고 동백꽃과 사막의 야생화처럼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 같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끼워 넣은 동물의 장면도 그런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늙음이 있다. 〈나라야마 부시코〉가 만들어진 것도 그것을 전제한다. 


고(古)인류학자 이상희는 현생 인류의 노년기가 갑자기 늘어난 것이 30,000년 전인 후기 구석기 시대라고 말한다. 그동안 유타대학교 커스틴 호크스(Kirsten Hawkes) 교수의 “할머니 가설”에 따라 200만 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부터 노년기가 부각되었다고 봤는데, 이상희는 이를 반박한 것이다. 커스틴 호크스는 할머니가 손주를 돌봄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보다 잘 유지하기 때문에 폐경기의 할머니도 필요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였다. 하지만 이상희는 노년이 후기 구석기 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본 것이다. 그게 맞는다면, 왜 하필 그때였을까? 


이상희에 따르면 당시에는 기후변화가 예측 불허할 정도로 변화무쌍했는데, 이런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할 필요가 부각되었고, 축적된 정보의 필요성이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그 지식 축적을 구현하고 있던 것이 바로 노인이었던 셈이다. 3대(代)가 모여 노인이 체득한 지식을 나누고 후대에 전수하는 것이다. 기원 전 30,000년경부터 이른바 예술적 행위 및 상징적 활동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것도 노년층의 형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각주:2]


그런데 이상희의 노년은 우리가 생각하는 노년과는 사뭇 다르다. 그가 노년을 설정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젊은이의 시기를 체구의 성장이 끝나고 재생산이 가능한 때로 보고 맨 뒤쪽 어금니인 사랑니가 나온 시점을 기준으로 삼았다. 반면 노년기는 사랑니의 치아 마모도가 젊은이보다 2배 더 닳은 시점으로 정했다. 사랑니가 18살 때 나온 젊은이는 이 때 재생산이 가능한 나이가 되어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가 자라 18살이 되었을 때 손주를 봤을 것으로 간주하여 젊은이의 2배를 노년으로 삼은 것이다. OY 비율(Old/Young ratio)은 젊은이 수에 대한 노인 수의 비율을 말하는데, 1을 넘지 못하다가 후기 구석기 시대에 갑자기 비율이 2를 넘게 되었다는 것이다.[각주:3]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이상희가 주장하는 노년이 우리네의 30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 언제부터 늙은이로 여겨야 하는가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고, 기준이 되는 시대와 사회마다 달라질 것이다.


3. 다양한 늙음: 그리드-그룹(Grid-Group) 분석


필자의 관심사는 현재 우리가 노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이고, 급격하게 바뀌는 노년에 대한 관점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우선 노년 혹은 노인에 대한 태도가 다양하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 자신의 관점을 마치 보편타당한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 기준에 의거하여 작업을 행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관점을 당연하게 간주하면서 출발하는 대신, 그 관점이 소속되어 있는 보다 포괄적인 맥락을 검토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요청된다.


여기에서 늙음을 보는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1921-2007)의 “그리드-그룹”(grid-group) 분석에서 늙음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더글러스는 “그리드”와 “그룹”의 두 가지 축을 만들고 그 강약(强弱)에 따라 4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그리드는 수직축으로서, 분류체계 혹은 규범의 규제력이 강하게 작용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위, 아래로 구분된다. 공유된 분류체계가 사람들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칠 경우에 강한 그리드인 반면, 약할 경우에는 개인적 분류체계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분류체계 혹은 세계관의 공유 정도를 알려주는 것이 그리드이다. 


그룹은 수평축으로서, 특정집단에 소속됨으로써 받는 압력을 나타낸다. 집단내의 관계로 인해 개인의 행동과 사유가 소속 집단의 압력에 통제되는가, 아니면 그로부터 벗어나는가에 따라 오른쪽과 왼쪽으로 구분된다. “그룹”은 개인의 행동과 사유가 사회적 집단의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제약받는 정도를 나타낸다. “그리드”와 “그룹”의 강약(强弱)에 따라 4가지 유형이 만들어진다. 



각 영역의 기본 특징과 늙음에 대한 태도는 다음과 같다.


1) 늙음은 저주


A 영역: 약(弱)그리드-약(弱)그룹: 개인주의(individualism)


여기에서 개인은 특정 집단의 소속 여부에 별로 관계없이 사회적 경험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인의 사회적 맥락을 이루는 외적 경계(境界)에 제약받지 않으며, 개인을 분류하는 사회적 규범에도 묶이지 않는다. 개인의 거의 유일한 관심사는 사적(私的)인 이익 추구이다. 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자유 시장 체제가 이상적인 상태로 간주되며, 경쟁자로부터도 부러움을 사는 혁신적 기업가가 이상적인 인물이다. 집단 외부뿐 아니라, 집단 내부의 경계선이 모두 분명하지 않다. 


A 영역에서 나이를 먹는 것은 결코 자랑스럽지 않다. 늙는다는 것이 공경의 증좌이기는커녕 물질적 정신적 능력의 쇠퇴를 의미하며 경쟁에서 탈락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늙은이에 대한 배려나 우대 정책이 있을 리 없다. 늙은이는 저절로 배제된 자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 늙은 모습은 수치스럽고 숨겨야 하는 것처럼 간주되어서 가능한 한, 젊은이와 같은 용모와 몸매를 가지려고 애를 쓰게 된다.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으며, 젊은이와 같은 스타일과 정열적인 색깔로 치장한다. 질병에 걸리면 개인이 알아서 처리해야 하듯이, 몸이 늙게 되면 개인이 알아서 그 과정을 멈추게 하든지 천천히 완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인이면서 병자(病者)는 최악의 조합으로서, 이중적인 “루저”(loser)를 나타내며 거의 저주받은 상태에 있다.


2) 소외되는 늙음


B 영역: 강(强)그리드-약(弱)그룹: 숙명주의(fatalism)


개인의 행동이 사회적 분류체계 혹은 세계관에 의해 강하게 규제되어, 개인의 사회적 역할 및 지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반면, 사회에 통합된 정도가 약해서 개인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다. 자기의 역할을 완수하더라도 사회적 보상을 받지 못하며, 자신을 고립된 상태로 유지시키는 힘이 멀리 있으며 비인격적이라고 여긴다. 외부의 힘에 의해 통제되고 있지만, 자신은 다른 이들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처지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이 이 영역의 전형적인 구성원이다. 따라서 개인의 자율성이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게 되며, 소외된 채 외부에서 부과된 규범에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집단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분명치 않은 반면, 집단 내부의 경계선은 뚜렷하게 분할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B 영역에서 죽음은 전적으로 사적(私的)인 문제이며, 전형적인 죽음은 고독사(孤獨死)다. 매스컴에서 고독사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것이 B 영역에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통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안락사는 긍정적으로 수용된다. 비록 절망적인 해결책이지만 필요하다고 본다. 병자(病者)가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여지는 없다. 국가를 비롯하여 여느 집단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병자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취약한 상태에 처해있다. 


노인도 병자의 상태와 비슷하다. 노인에 대한 복지정책은 마련되어 있지도 않고, 앞으로도 마련될 가능성이 없다. 아무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지 않으며 당사자도 자포자기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노인이 비슷한 처지의 이들과 접촉하지 않고 격리되어 있으며, 젊은이들과의 관계도 없다. 집단의 지원(支援)도 없는데다가 친지와 친구와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철저한 고립무원 속에 처해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 대한 개선의 의지가 없고, 그런 조건에 대해 저항할 생각도 없이 무기력감에 빠져있다. B 영역의 미덕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도 그런 상황을 만든 권력에 그저 복종하는 것이다. 


3) 늙음은 성숙


C 영역: 강(强)그리드-강(强)그룹: 위계주의(hierarchism)


개인의 모든 행동과 생각이 규범에 의해 치밀하게 규제되어 정해진 대로 이루어지게 만들며, 집단 소속감이 강하게 작용한다. 집단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개인의 모든 삶을 전반적으로 통제하고, 그의 사회관계를 좌우하기 때문에 개인 선택 폭이 최소화된다. 그가 태어난 가문, 성별 등에 따라 지위와 할 일이 정해지는 위계적 질서화가 촘촘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분류체계의 발달이 고도화된다.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혈연(血緣)과 지연(地緣)그리고 학벌(學閥)에 따른 인맥(人脈)에 따라 사회관계가 형성된다. C 영역은 집단의 안과 밖을 분리하고, 안에 포함된 내부인과는 강한 유대감을 표시하는 반면, 밖으로 배제된 외부인에게는 강한 배타심을 드러낸다. 집단의 강한 결속감 때문에 내부 분열을 경계하며, 집단의 규모를 크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집단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선이 뚜렷하고, 집단 내부의 경계선 역시 분명하다는 특징이 있다.   


C 영역에서는 늙는 것을 수치스럽거나 감추어야 할 것으로 보는 대신, 자연스러운 일로 여긴다.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의 활력이 떨어져도, 평생에 쌓인 지혜가 더욱 빛을 발한다는 식으로 젊은이와 구별되는 노인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노인의 독자적인 생활 스타일을 인정해준다. 따라서 체제가 원활하게 운영되는 한, 젊은이와 노인 사이의 세대 갈등은 발생하지 않는다. 사회는 노인을 공경할 만한 존재로서 간주하고, 융숭한 대접의 조건을 마련한다. C 영역은 늙은이에게 매우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4) 늙음, 자연스러운 그러나 불안한 지위


D 영역: 약(弱)그리드-강(强)그룹: 평등주의(egalitarianism)


개인의 사회적 경험은 무엇보다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면서 집단의 결속을 다짐하는 모습을 취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개인이 발휘하는 힘은 오직 집단의 가치와 목표를 내세울 때 드러나며, 집단의 이름을 걸고 움직이는 소속원은 집단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반면 집단의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내부적 역할 분할 및 서열(序列)적 질서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집단 내 관계가 어쩔 수 없이 모호성을 띠게 된다. 그래서 만일 내부의 갈등이 생길 경우에 이를 해소할 효과적인 기제가 없기 때문에 체제의 불안정이 늘 잠재되어 있다. 갈등 유발자에 대한 거의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처벌이 집단으로부터 축출(逐出)이다. 


집단 안에서는 모든 이가 서로 평등하고, 신의(信義)로우며, 외부의 적대적인 세력과 맞서서 함께 단합할 것으로 기대된다. 내부 갈등은 마지막 단계까지 수면 밑에서 잠재되어 있다가, 드러나는 순간 파국을 맞게 된다. 외부세상을 적대시하는 평등주의적 코뮨 혹은 섹트(sect)가 전형적인 예이며, 리더가 집단을 이끌고, 의사결정을 내리며, 권위를 행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집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서 대개 소규모이다. 집단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선이 뚜렷한 반면 집단 내부의 경계선은 분명하지 않은 점이 기본 특징이다. 


D 영역에서 병에 걸리는 것은 신체의 방어선을 뚫고 침입한 사악한 존재가 준동(蠢動)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치료는 이런 사악한 기운을 쫓아버리는 것이다. 병자(病者)의 몸은 선과 악의 대결이 일어나는 곳이며, 공동체는 이런 결투에 승리하도록 병자를 지원해줄 의무가 있다. 병자에 대한 돌봄은 집단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병자와 간호하는 사람 모두 악의 세력에 맞서 전투를 선의 승리로 이끌기 위해 영웅적으로 노력하는 존재들이다. 


D 영역에서는 늘 환자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간호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다. 또한 죽음은 삶의 단계에서 거쳐야 하는 하나의 자연적인 과정으로 간주된다. 장례식은 공공적인 관심사이므로 모두가 참석한다. 자살하는 것과 안락사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자살이 칭송되는 경우는 집단을 위해 자기희생을 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동안(童顔)을 위해 주름진 얼굴을 성형수술하려고 하지도 않고, 축 늘어진 피부를 팽팽하게 당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노인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간주되며, 집단 내 논쟁이 격화되었을 때,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D 영역에 늘 잠재되어 있는 체제적 불안정성 때문에, 내부인과 외부인의 대립, 선과 악의 대결 구도, 흑백 논리가 지배할 때에는 노인의 지위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만일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의 의견 대립이 내부인-외부인의 갈등 구도로 전개될 경우에 집단의 폭력적 에너지가 늙은이를 희생양 삼는 방향으로 진행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5) 늙음의 초월


E 영역: 은둔자”(Hermit)의 영역


“그리드-그룹” 분석의 특징은 구분된 네 가지 영역이 거의 완결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네 가지 영역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간과하는 약점이 있다. 각 영역과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면 좌우, 상하, 그리고 대각선의 방향으로 활발한 움직임이 생기는데, 여기서 각 영역이 합치는 중간 지대가 중요해진다. 


“그리드-그룹” 분석에서 이 중간 지대는 텅 비어있는 곳, 혹은 혹처럼 붙어있는 곳으로서 별로 의미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다섯 번째인 E 영역은 각 영역의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곳으로서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은둔자”의 영역은 네 가지 범주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자신의 변화를 위해 숨을 고르는 곳, 자신들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곳, 그리고 다른 영역으로 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곳의 성격을 띤다. “은둔자” 영역은 교섭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여, 모든 형태의 강압적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을 취한다. 또 다른 특징은 앞의 네 영역이 각각 나머지 세 영역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낸다면, “은둔자” 영역의 아이덴티티는 네 영역을 한 묶음으로 하면서 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은둔자”는 다른 네 영역의 구성원과는 구별되는 성격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내세운다. 예컨대 네 영역은 갑론을박하면서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은둔자” 영역에서 볼 때, 그들은 비슷하다. 반면 은둔자는 4가지 영역의 소속원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은둔자의 초월적 성격(transcendence)이 강조되며,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성격이 부각된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의 일치성, 서로 상반된 것의 합일성, 삶의 고통으로부터 궁극적인 해방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 등의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이처럼 자율성과 초월성을 강조하는 “은둔자” 영역에서 늙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 1883–1983)은 전형적인 예를 보여준다. 그는 왕성한 삶을 영위하다가 100살이 되어 한 달 반의 단식 끝에 스스로 목숨을 거둔 사람이다. 


헬렌과 스콧 니어링 부부는 화폐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했고 돈 사용을 자제했다. 자신들이 먹는 것은 텃밭에서 길러 자급자족했다. 그들은 하루를 둘로 나누고, 반(半)은 빵을 얻기 위한 노동(“bread labor”)을 하고 다른 반(半)은 글 읽기와 글쓰기, 음악 연주 등 의미 있는 활동에 썼다. 스콧 니어링의 주름 가득한 늙은 얼굴이 보여주듯이 그는 외모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늙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일하는 것은 늙는 것을 막아준다. 나의 작업은 나의 인생이다. 어느 한쪽 없이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 그리고 지루해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 희망과 미래의 계획대신 후회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늙게 된다. 가치 있는 일에 관심을 쏟고 일을 하는 것이 나이 드는 것을 막는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이석태 역, 서울: 보리, 1997), 215쪽.


헬렌은 스콧에게 누가 늙었다라고 하면 화를 냈다. 헬렌은 대부분의 사람이 60살 정도에 늙기 시작한다면 스콧은 90살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늙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스콧이 50대에 햇볕 속에서 일을 해서 얼굴에 주름이 많지만, 몸과 마음의 활기는 왕성했다는 것이다.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삶은 “은둔자” 영역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들의 자립적 생활과 불굴의 저항정신, 그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 이론과 실천의 합일, 죽음을 맞이하는 담담한 태도는 삶의 자율성과 초월성을 강조하는 자세와 잘 연결된다. 늙음에 대한 태도에도 은둔자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늙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도 아니다.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측면과 세상 전체를 관조하면서 파악하는 측면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태도는 앞의 네 가지 영역 어디에도 발견하기 힘든 것으로서, 다섯 번째 영역의 특징을 나타낸다.


4. 마무리를 대신하여


단세포 동물에게는 늙음이 없다. 대부분의 다세포 동물도 마찬가지다. 포유류의 경우에, 이제 비로소 인간과 비교될 수 있는 늙음의 주제가 거론되고 있지만[각주:4] 인간의 늙음과 견주기는 힘들다. 늙음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길이와 농도의 측면에서 다른 포유류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늙음을 대하는 태도는 이미 거기에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물론 인간의 경우에는 더하다. 


필자가 메리 더글러스의 “그리드-그룹” 분석에 주목한 것은 늙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다양하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어떻게 그 다양한 태도를 평가할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살펴보는 과정에서 그 가운데 어느 태도가 옳고 그르냐고 묻는 것은 적합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특정의 조건이 결합하면서 특정의 태도가 등장하고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사회적 문화적 분석이 그리드-그룹의 4가지 유형 가운데 A와 C의 영역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또한 전통과 근대, 집단적 사고(思考)와 개인적 사고, 공동체와 이익단체 등의 이분법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그리드-그룹”은 A와 C 영역만 있는 것이 아니고, B와 D의 영역도 있음을 환기시켜 주었다. 


또한 각 영역의 관점이 다른 영역을 전제하면서 만들어진다는 점도 깨닫게 해주었다. B의 숙명적 고립주의자와 D의 전투적 코뮨주의자의 영역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으면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게 된다는 점도 알 수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이 전(全) 지구에 걸쳐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전체적 관점을 갖는 것은 긴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각 영역의 상호작용의 측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5의 영역인 “은둔자” 영역은 전 시스템을 조망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우리가 반드시 은둔자의 시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쨌든 포괄하는 시각에서 설명을 해야 한다. 


늙음을 보는 이 다섯 가지 관점이 구체적으로 우리사회에 어떻게 서로 얽히고 주고받는 작용을 하는가? 그래서 어떤 효과를 산출하고 있는가? 다음에 이 주제를 살펴보고 싶다.



  1. 후카자와 시치로(深沢七郎)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으로, 1983년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이 소설은 1958년에 기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된 적이 있다. [본문으로]
  2. 이상희, 윤신영, 《인류의 기원》, 사이언스북스, 2015, 105-115쪽. [본문으로]
  3. 위의 책, 111-112쪽. [본문으로]
  4. 앤 이니스 대그,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 노승영 옮김, 서울: 시대의 창, 201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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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종교인문학 블로그는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매월 내 놓는 종교문화에 대한 한 발 더 들어간 논평과 에세이 등을 '월간 종교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내 놓는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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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분노, 그리고 ‘없는 물음’


박사학위를 마치고 사회에 나왔다.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학위를 마치기까지 유예되었던 많은 것들의 만기가 도래했다.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갚을 길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위로를 삼아 보지만, 인간의 도리, 사회인의 도리, 자식 된 도리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무수한 비교와 평가에서 쉬이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여전히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창작의 고통’을 핑계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실상은 뿌리 깊은 불안 탓이 크다.


불혹이 코앞이다. 이립(而立)을 완수하지 못한 삶에서 불혹(不惑)은 언감생심이다. 20대부터 이어지고 있는 불안(不安)이 있을 뿐이다. 불안은 여유를 잠식하고, 쉬이 분노케 한다. 20년 가까이 쌓인 불안은 내게 분노조절장애를 선물했다. 그리고 열등감과 콤플렉스는 뒤틀릴 대로 뒤틀려 버렸다. 위의 꼰대를 욕하며 아래로 꼰대 짓을 일삼는다. 밖에서 혁신과 평등 그리고 자유를 이야기하면서 안에서는 압제와 폭력의 화신이 된다.


나는 ‘바른’ 혹은 ‘정상적인’ 어른으로 크지 못했다. 불혹이 눈앞이지만 이립조차 버거우니 말이다. 이런 자의식 탓에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종종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에 불을 지핀 이야기가 있었다. 소위 ‘요즘 아이들 문제’라는 내용으로 대학교 신입생들의 '폭력적 신고식’을 고발하는 기사들이다(기사1, 기사2, 기사3). 


그 신고식에는 폭음, 얼차려, 기타 가혹행위 등이 동반되었다. 분명 그러한 폭력적 신고식은 ‘나쁜’ 것이다. 신입생들에게 그러한 일을 시키는 선배들이 ‘나쁘다.’ 이러한 인식까지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뭔가 빠져있다. 중요한 질문이. 그 선배라는 친구들이 저런 짓을 왜,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제대로 묻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체 저런 짓을 어디서 배운 것인가 물어야 하지 않았을까?



군사문화? 조폭문화? 위계질서와 감춰진 수혜자


이런 기사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신입생들이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봄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했다. 가혹행위가 동반된 신고식으로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된 것에는 특히 체육학과의 사례가 많았다.[각주:1] 최근 기사들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원인론이 과거 기사들에서는 제법 제시되었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원인론(기원론)은 ‘군사문화의 잔재’라는 것이다(거슬러 올라가서 일본식 군대 문화의 잔재라고 하기도). 이러한 기원론은 제법 설득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가혹한 신고식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옷을 벗기고, 추위나 폭염에 노출시키고, 폭음이나 폭식을 시키고, 오물을 먹이기도 하며, 약한 동물 죽이기를 강요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혹한 신고식이 이루어지는 조직이 위계질서를 강조한다는 면에서, 계급을 두고 있는 위계 조직인 군이 그러한 문화의 원천이라는 지적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참여정부 때 병영문화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기원론이 군에 대한 모욕으로까지 해석되었다.[각주:2] 그리고 등장한 것이 ‘조폭문화’ 기원론이었다. 이는 해당 체대 학생들의 폭력적 신고식이 군의 유격훈련장을 떠올리게 하는 시설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반론권 없는 ‘악당들’의 문화를 그 기원으로 지목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논의들은 폭력적 신고식을 그와 유사한, 그러면서도 가장 ‘나쁜’ 형태라고 생각되는 행태와 연관 짓는 방식의 내러티브다.


그러나 비슷한 것이 원인(혹은 기원)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어떤 기사들은 대학과 사회의 위계질서를 이야기한다. 대학 내 위계에서 최상층에 있는 교수는 왜 ‘나쁜 선배’들의 행동을 막지 못하는지, 혹시 위계질서에 기초한 유대가 중시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러한 신고식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등을 묻는 것이다. “이런 신고식의 가장 큰 수혜자는 과연 누구인가?”



위계질서의 현실감각 그리고 폭력적 구조와 불안


감추어진 수혜자를 폭로한다고 해서 ‘폭력적 신고식’의 원인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은폐되어 있는 ‘더 욕을 먹어 마땅한 존재’를 상기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말이다. 입문식, 신고식, 무엇으로 불리든지 그것이 어떤 집단의 구성원으로 들어가기 위한 의례적 과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 의례적 과정을 통해서 참여자가 얻게 될 가치는 무엇인가? 


현실 사회를 모사하는 위계질서에 대한 학습과 순응이 군대문화, 조폭문화를 들먹이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그것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현실 감각’ 때문일 것이다. 조직문화, 위계질서를 익히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그것이 사회 현실이라는 이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뭣 같아도 순응할 수 있어야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를 아마 한 번은 들어 봤을 것이다. 나처럼 잘 참지 못하는 족속들은 이런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듣고 자란다. 위계적 질서에 순응하지 않았을 때, 사회에서 도태되고 배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을 통해서 뼈저리게 알고 있는 부모, 스승, 선배, 그리고 그것을 민감하게 포착해 낸 동료들이 ‘친절하게’(?) 알려 준다. 그래서 ‘폭력적 신고식’의 원인으로 지금 사회 구조의 내적 폭력성을 지목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내적 폭력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간단한 스케치를 해 보자. 저성장 사회로 진입한 한국,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고, 가계 소득은 정체된 반면 기업 소득은 증가하고 있다. 빈부 격차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양극화 사회가 아닌 1:99의 사회가 이야기되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불안에서 탈출할 수는 없다. 실직의 위험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혼 인구가 증가하고, 아이를 낳지 않거나 적게 낳는 경우가 늘어 낮은 출생률이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되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지속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붙여져 있다.


높은 실업률은 사람들로 하여금 부당한 노동 환경에 눈감게 했다. 개개인을 옥죄어 오는 소득/직업불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노동자 쥐어짜기, 갑의 횡포인 밀어내기, 낮은 최저임금, 사회 안전망 없는 노동 유연화, 경제인의 사면, 친자본 경제정책, 복지 축소, 선별 복지 패러다임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구조이자 질서로 체념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상상계에서의 개정rectification 욕구는 높였다.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사회 변혁의 이야기’는 열광적으로 소비되었다.


불안에 대한 체념은 ‘헬조선’, ‘지옥불반도’, ‘n포세대’, ‘흙수저’, ‘노오력’이란 말을 탄생시켰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란 말은 이제 순간순간의 특별한 가치에 집중하라는 의미가 아닌 ‘희망고문일 수밖에 없는 미래’에 대한 자포자기를 선언하는 언어가 되었다. 지금의 20-30대 젊은이들은 이런 현실의식을 내면화하면서 어른이 되길 강요당하고 있다.



배양액 속 아이들


자, 20-30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또 어떻게 키워졌던가. 아이들은 윗세대의 ‘친절한 조언’을 듣기보다는 불안에 짓눌린 부모들에 의해서 ‘무한 경쟁의 장’에 던져졌다. 거기서는 성공을 하기 위해서 거쳐야 할 단계들이 이미 정해져 있었고 아이들은 한 눈 팔지 않고 그 단계의 사다리를 밟아 올라가야 했다.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그런 구조에서 증폭되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학교생활의 주요한 문제는 자살, 왕따, 학교 폭력 등이 되었다. 그런 문제에 경찰이 개입해서 해결하겠다는 편리한 후속조치는 ‘폭력적 신고식’에 대한 대처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 바 있다. 아이들은 양육되는 게 아니라 배양되는 것 같다.


제대로 된 인간 대접을 못 받는 ‘나이 어린’ 사람이 어디에서 다른 사람에게 인간 대접을 하는 방법을 배우겠는가? 아이들은 귀신 같이 약자를 찾아내서 놀리고 괴롭히고 때리고 돈을 빼앗는다. 그 ‘폭력적’ 아이들이 특별히 ‘나쁜’ 아이라서가 아니다. 그 아이도 위로부터 짓밟히고 짓눌리고 있어서 숨을 쉴 수가 없는 상태다. 폭력적 구조는 계속 약자를 찾아 폭력이 집중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런 구조 하에서 ‘차별 철폐’를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 것인가.


약하기에 짓밟혀 왔던 경험은 그대로 약자는 ‘짓밟혀도 된다’는 생각을 정당화하기 쉽다. 그리고 아이들은 약자로 몰리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폭력적 구조에 순응하는 경험을 일찍부터 학습해 온다. 힘 센(물리적이든 물질적이든) 아이의 부조리한 행위가 ‘우리’와 ‘약자 한 녀석’을 구분 지을 때, 아이들은 종종 기꺼이 ‘힘 센 아이’의 옆에 선다. 또래에서 배척될 때, 폭력적 구조의 희생양이 된다는 것을 민감하게 눈치 채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납득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폭력적 신고식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또래 집단의 따돌림, 배척을 감수하고? ‘이의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순간 듣게 될 소리는 뻔하다. “모난 녀석은 정을 맞게 되어 있다.” 시쳇말로 ‘관종’ 취급을 받을 것이다.[각주:3]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누군가 하나 손해를 각오하고 저항하지 않는다고 책임을 추궁하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짓인가.



아이들의 미러링 대상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배운다. 이 땅의 어른들은 불의에 저항하고 상식과 원칙에 따라서 행동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공무원이 정부에 입바른 소리 했다가 고초를 겪었다는 사례는 너무 많다. 4대강의 문제를 제기했다가 불이익을 받은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원, 승마회의 부정 심사 문제를 원칙적으로 처리하다가 ‘나쁜 사람’이 되어 사직해야 했던 공무원 등 열거하자면 한이 없을 정도다.


최근에 이런 기사도 보았다. “23명의 죽음을 막지 못한 한국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다(관련기사). ‘막지 못한’ 이유는 해당 공무원이 자신의 업무에서 밀려나서다. 그 죽음의 책임은 다른 공무원들에게 있었다. 그 비극적 사건이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이다.


기사의 주인공은 화성시 사회복지과 공무원이었다. 당시 해당 시설의 허가는 유아청소년 시설관리를 담당했던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는 그 시설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허가를 내 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에게 돌아온 건 상사의 압력, 민원인의 회유와 협박이었다. 그는 결국 전보되었고, 새로운 담당자가 이를 허가했으며, 결국 참사가 벌어졌다. 사건 이후 그가 경찰에 제출한 비망록으로 인해 동료들이 구속되면서 그는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그 이후 그의 삶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바는 없다.


세월호 때도 이런 일은 반복되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다가 죽은 선생님들에 대한 예우가 문제시되고 있으며, 아이들을 구하다 살아남은 생존자는 더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지만 치료비조차 제대로 지원받지 못했다. 사고 이후 희생자들을 수습했던 잠수사들은 또 어떤가("뼈 썩어가고 트라우마에 생활고"). 사회는 그들이 받아야 마땅한 찬사와 예우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도.[각주:4] 반면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 중에서 그 책임을 다한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책임회피, 은폐는 쉽게 눈에 띄었다. 가장 먼저 사고 현장에 도착한 해경 경비정의 지휘관에게만 사법적 책임을 묻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사회에서 펜을 굴리는 사람 중에 누가 떳떳하게 아이들의 부조리에 일갈할 수 있겠는가. 어두운 현실에 답답한 한숨을 몰아쉬는 것 밖에는 할게 없다. 아니 펜으로 써 내려가는 글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식이란 걸 가지고 있다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에 대한 통렬한 반성의 글을 먼저 쓰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자신들의 무기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래서 어른들이 어떻게 책임을 지고 세상을 바꿀 것인지, 그러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할 것인지 이야기 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을 바꾸어 놓았음에도 위계를 내세우고 부당한 폭력을 가하고 있다면, 따끔한 회초리로서의 펜의 비판이 빛을 발할 것이다.


분노조절장애 탓에 이야기가 다소 엇나갔다. 그러나 여기서는 분노의 결을 따라 가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분노가, 그래서 가질 수밖에 없는 자기반성이 현실 부정의 의식을 만들어 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현실을 ‘지옥’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신화적 역사’ 속으로


‘세계는 온갖 부조리, 죄악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역사는 역행하고 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나도 그러한 시각을 공유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역사가 뒤틀려 있다는 생각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요청한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바로 그 뒤틀린 역사에서 나온 게 아닌지 ‘상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다. 반칙해도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 나라를 팔아먹어도 우리가 대대로 떵떵거리고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반칙을 하며 산다는 생각, 줄만 잘 대면 ‘안 되면 되게 하라’의 정신이 통한다는 생각, 동향이고 친척이고 동문이면 프리패스라는 생각 등등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반공시대, 군부독재 시대에 뒤틀린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시간 여행을 조금 더 좋아하는 사람들은 조선의 유교적 허례허식의 폐단, 붕당정치의 폐해, 세도정치의 폐해, 쇄국정책의 폐해를 들먹일 수도 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소위 ‘어른’이라 자임하는 인간들이 수백 년 동안 해 온 일이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꼽아가면서 기성세대의 권위를 부정해 버린다. 그러나 오로지 역사 이야기, 그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에서만 말이다. 현실 속에서 그 권위를 전복할 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그것이 충분히 사실에 기초해 있다고 하더라도 종말론적인 특성을 갖는다.[각주:5] 


현실은 그릇된 지배세력의 세계이고, 악하고 무도한 세계이다. 이 세계가 악한 것은 과거에 부당하게 부와 권력을 획득한 지배세력이 아직까지도 그 부와 권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당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칙을 일삼고 있는 한 우리 사회에 정의가 바로 설 수 없다. 그러니 누군가 '초인'이 나타나 이 부조리를 혁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다.


라는 이해인 것이다. 변화의 열망은 새로운 정치적 지도자의 출현을 통해서 일거에 달성될 수 있다는 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몇 차례의 선거에서 그러한 기대가 좌절되면서, 자조적 현실 인식은 더욱 강화된 것 같다. 이미 이 현실은 ‘지옥’이다.[각주:6] 새로운 세계의 등장에 여전히 미련을 두고 있는 사람들보다 이제는 ‘될 대로 되라, 이런 세상은 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든 저렇든 나 하나 잘 살기도 바쁜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회고되는 역사를 어쩌면 ‘신화적 역사’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과거는 팩트 그 자체로 눈에 보이는 사물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유물, 유적, 전적 등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읽어내는 사람의 독특한 ‘관점’에 따른 해석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니 말 그대로의 ‘역사’는 없다. 여러 신화적 역사들 중에서 사회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획득하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현실 감각’도 신화적인 내러티브를 동반한다. ‘한국 지옥론’은 그러한 감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성인이 되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맥락 위에 놓고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단순하게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 전이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환경적 조건과 그것에 대해 만들어지고 잘 유포된 각종 이야기들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을 상호 조직하는 과정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 되기’와 폭력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하게 성인식을 거쳤다는 혹은 법적 성인이 된다는 문제와는 또 다른 것이다. 공식적으로 성인이 되는 것은 분명 법적 수준에서 완료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특정한 ‘자격’을 부여해 줄지언정,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성인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을 정당화시켜 주지는 못한다. 거기에서 입문식이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입문식 이후에도 성과를 통해서 인정을 받는 과정들이 동반되어야 비로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인류학적 사례들과 비교해 보면, 이런 식의 ‘어른 되기’의 특징은 보다 복잡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구전문화권이자 소규모 공동체 사회에서는 성인식 자체가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을 위한 입문식의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그러한 성인식은 통상 큰 위험을 동반하는 ‘통과의례’를 요구한다. 한 예를 들자면, 남태평양의 바누아투의 펜테코스트 섬에서 이루어지는 점프 성인식이 있다(번지점프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나무로 만든 점프대에서 나무 덩굴을 발목에 묶고 뛰어내리는 것으로 보통 땅에 머리를 부딪친다. 여기에서 무사히 살아남으면 어른 대접을 받는 것이다. 종종 사망자가 발생하는 의례다. 이 외에도 죽음의 위험이 따르는 의식 혹은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의식을 통과해야 어른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부족들이 많이 알려져 있다. 서구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러한 문화가 점차 약화되어 가고 있지만 말이다.


 


조선만 해도 이런 성인식을 찾아볼 수 없다. 관례라고 하는 성인식이 존재하지만 거기에 죽음의 위협이나 극심한 고통이 수반되지는 않는다. 그럼 조선시대 사람은 어른이 되기 위해 ‘폭력적 입문식’을 거쳐야 하는 일이 없었을까? 조선시대의 일부 사람들은 그러한 과정을 거쳤다. 관직에 나간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신참 관리들은 허참례(許參禮)와 면신례(免新禮)라는 ‘신참 신고식’을 거쳐야 했다.[각주:7] '면신례'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을 보자.


보통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성대하게 대접하였다. 부임 즉시 ‘허참례(許參禮)’라 하여 일차 향응을 베풀고, 열흘쯤 뒤에 ‘면신례’라는 명목으로 다시 주연을 벌여야 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 선배관원들은 온갖 방법으로 신참관원을 시험하고 괴롭혔는데, 이 시련과정을 ‘면신’이라고 불렀다. 이 때 선배들은 인격적인 모독을 가하고 직무상의 함정에 빠뜨리는 것은 물론 육체적인 가혹행위나 구타도 행하였다.[각주:8]


‘면신’이라는 말 자체는 ‘신참을 벗어난다’는 말인데, 그러기 위해서 금전적 손해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조선 조정은 이러한 관습을 숱하게 금지시켰지만, 이 신고식은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 애초 고려 말에 권세가 자제의 콧대를 꺾어주기 위한 의도로 시작되었다고 설명되기는 하지만, 조선시대에 보인 그 끈질긴 지속성을 고려해 볼 때 역사적 기원도 실제로는 그보다 오래되었을 수도 있겠다("조선시대 공포의 '신참 신고식'").


조선의 사례는 성인식과 폭력적 입문식이 분기된 양상을 보여준다. 직업이 다양하게 분화된 규모가 큰 사회에서 ‘정상적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은 실제 직무 집단에 소속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조선시대 관례가 조혼풍습으로 혼례와 밀접하게 결합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각주:9] 실질적으로 사회적 구성원으로 인정되는 과정을, 면신례의 ‘완료’ 시점까지 확장할 수 있겠다. 


그런데 면신례는 고관대작에게도 어느 정도 적용되긴 했던 것 같다. 주로 금품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지며, 면신 전까지는 노비마저도 대들 수 있는 ‘애매한’ 위상을 갖는다. 그러나 고관대작의 면신례에서 폭력적 의식이 수반되었던 것 같지는 않다. 구타나 가혹행위와 같은 고약한 신고식은 비교적 사회 초년생에 해당하는 직급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폭력적 신고식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가끔 외신을 통해 보도되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신고식(운동부 사례가 많다)을 보면 말이다. 해외의 사례에서도 신참자들은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폭행을 당하고, 얼차려와 같은 가혹행위를 당한다.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하고 물건이나 동물처럼 취급되는 것이다. 전이적 상태에 놓인 신참자들이 애매한 위상을 갖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제시될 수 있을 텐데, 이런 설명은 왠지 동어반복적인 느낌이다. 왜 이런 신고식이 곳곳에서 행해지는 걸까?



왜 인간은 ‘폭력’과 ‘위험’을 필요로 하나?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 사람들의 몇 가지 특수한 행동 패턴에 주목해 보자. 어린 아이들은 특정한 연령대가 되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놀이를 하는 등 위험한 활동을 하는 빈도가 높아진다. 청년기의 젊은이들은 그보다 더 위험한 행위를 하곤 한다. 아주 아찔하게 높은 곳에 올라가서 위태롭게 매달린 채 사진을 찍거나, 높은 절벽에서 강이나 바다로 뛰어내리거나, 건물들 사이를 뛰어 넘고 건물에서 벽들을 타고 위험하게 뛰어 내리거나 덤블링을 하며 땅바닥에 내려오는 경우도 있는데, 불행하게도 가끔 사망자가 발생해서 언론에 소개되곤 한다. 물론 그 이후 연령대에서도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를 즐기는 사람들(익스트림 스포츠 등)이 있긴 하지만 젊은이들이 하는 것 같이 무모해 보이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이들은 왜 자발적으로 위험을 무릅쓰는 것일까?



인지적 능력과 판단력이 덜 발달된 상태에서 위험한 행위를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에 들어와서는 조금 다른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아이들은 자기 행위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데 여간해서는 실패하지 않으며, 심지어 위험을 과장해서 판단하는 경향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또래의 평판을 중요한 행동 기준으로 삼게 됨으로써 무모한 행위를 감행한다고 한다(“십대의 위험한 행동 이해하기”).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자기 정체성을 수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부모 등 어른들의 가르침과 명령보다는 자신이 추종하는 인물이나 자신이 속한 또래 공동체가 선호하는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험한 행동은 단순한 ‘과시’가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는 동시에 그 능력에 대한 또래 집단의 인정을 통해서 사회화를 이루는 전략적 행위이다. 전략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능력의 시험과 증명이 또래 집단 내의 권위 획득과 모종의 관련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위험은 회피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생존 가능성을 낮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 개체의 생존, 특히 사회적 환경에서의 생존은 단순히 물리적 위험을 회피하는 수준에서만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어떻게 다른 개체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좋은 평판을 얻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이 된다. 또래의 평판은 또래 집단 내 위계를 구성하는 내러티브에 담긴다. 위험을 감수한 행위는 그러한 ‘평판의 내러티브’[각주:10]와 교환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내러티브를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면,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또래 집단의 협조와 협동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허풍은 수컷의 본능?").[각주:11] 


위험을 무릅쓰는 자기-폭력적 행위가 특수한 맥락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는 것은 우리가 늘 경험하는 사실이다. 한 중국 청년이 감행했던 청혼을 위한 1,600km 걷기, 포레스트 검프의 북미 대륙 횡단, 독일 청년의 4,600km 중국 횡단, 자전거로 세계일주하기 등등이 좋은 사례를 제공한다.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끎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위험한 행위, 폭력적 행위, 일탈적 행위들은 이처럼 상징적 가치를 생산한다. 물론 이런 행위를 통해서라도 평소에는 식별되지 않는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개체와 그렇지 않은 개체의 대응 전략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가 확인된다. 물론, 비슷한 ‘금수저’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행위를 통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폭력적 의식’과 사회성


그러나 자기-폭력적 행위와 강제적으로 행해지는 집단의 폭력적 행위는 다르다. 우리가 조금 더 해명해야할 것은 후자일 것이다. 강제적인 집단 폭력이 가학성을 가진 인간들과 자기를 방어할 수 없는 상대적 약자이자 수동적인 인간들 사이에서 우연히 발생한 역사·문화적 현상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러한 폭력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이것이 모종의 자연적인 인간성과 관련된 행위일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뒤르켐을 떠올릴 때, 이는 집단적 유대를 창출하기 위한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폭력일까? 뒤르켐의 이론을 들여다보더라도 굳이 의례가 인간들 간의 폭력을 수반해야 할 필요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적 행위가 사회로 진입해 들어가는 연령층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는 뒤르켐의 이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이 이 한계를 넘게 해 줄까? 희생제의와 입문식의 유비를 통해서 다양한 생각을 환기시킨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희생제의 이론으로 입문의례를 설명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까? 이 시기는 사회적 위상이 바뀌는 시기인데, 사회적 위상이 바뀌는 것도 일종의 ‘불확실성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니, 이 같은 전이기에 나타나는 폭력적 구조는 어떤 면에서 이전 세계의 ‘중지’와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지시한다고 말이다. 물론 ‘창조’는 참여자 개인의 관점에서만 그런 것이고, 집단의 관점에서는 기성의 체제를 그 개인에게 ‘이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이기의 의례는 인간성을 ‘재프로그래밍’하는 극적인 사회화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과정이 왜 ‘폭력적 구조’를 수반해야 하느냐는 설명되지 않는 것 같다. 이전 세계의 ‘중지’나 적극적인 ‘소거’는 폭력이 아닌 다른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폭력이 동반되는 입문식이 있는 집단은 대체로 낯선 사람들이 모여 조직화된 위계집단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다른 집단과의 경쟁관계에 놓인 집단(운동부, 체육학과, 군대, 회사 등)의 경우에 그런 의식(儀式)을 많이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쟁을 위해 집단 내 협력과 협동이 요구되는 조직에서 폭력적 의식이 빈번히 나타난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효용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관계의 친밀성이 접촉 시간에 비례할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잘 이해된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조직은 친밀성을 기반으로 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 또 조직의 통합을 저해하는 행위는 집단의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감정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사회적 감정을 함양하는 데에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조직화된 집단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다른 집단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친밀감과 사회적 감정을 일거에 효과적으로 고양시킬 수 있게 하는 공동의 경험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 집단의 폭력적 입문식이 그러한 강력한 공통 경험을 갖게 하는 효율적인 장치일 것 같다. 이렇게 보면 폭력적 의식은 '사회성'을 만드는 장치가 된다.



폭력과 기억, 그리고 생존


여전히, 왜 폭력이 그런 효율적인 기제일 수 있는가가 물어질 수 있다. 이 부분은 기억의 메커니즘이 일정 정도 해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생각해 보자. PTSD는 심각한 충격을 받았을 때 그 사건에 대한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서 생기는 의학적 증상이다. 이 경우 과거 사건에 대한 회상은 아주 빈번하게 세부적으로 일어나며 환자들은 거기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한 끊임없는 반추를 통해서 해당 사건은 그 사람의 인생을 지배하거나 규정하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또 강박충동장애(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OCD)를 보자. 많은 경우 OCD는 전염과 오염을 회피하는 기제로 진화되었다고 설명되지만, 부정적인 기억이나 관념이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발현되는 경우도 말해진다. 기억의 문제와 관련해서 PTSD와 OCD는, 위험한 폭력적 행위가 ‘의미 생성’의 효과적인 기제라는 것을 시사한다.


여기에는 약간의 진화심리학적인 설명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생존을 위협했던 사건을 ‘잘 기억’하는 개체가 비슷한 패턴의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서 살아남아 후손을 남겼고, 인간이 그런 개체들의 후손이라서 위협적인 사건을 잘 기억하도록 진화되었다고 말이다. 이런 설명을 전제한다면, 어렵고, 힘들고, 위험하고, 수치스러운 경험은 ‘유사 PTSD’를 낳을 것이다. 한편 생물(특히 인간)은 생존의 위협을 무사히 회피했을 때 ‘안도감’을 느낀다(어려운 일을 해결했을 때도 작동). 그것이 카타르시스와 관련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한 기제들은 인간이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서 살아남았을 때 누릴 수 있는 생화학적 보상체계였을 것이다. 그것이 스트레스적 상황에 대한 직전의 대처를 ‘좋은 것’으로 평가하게 해 주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런데 인간 집단의 협력을 통해서도 이러한 개체의 생존성 향상 기억 메커니즘을 활성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협동을 통해서 위협을 물리쳤다든가, 위협적인 동물을 협동을 통해서 사냥할 수 있었다든가 하는 상황 말이다.


PTSD의 대표적 사례는 참전자들의 사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전쟁 경험은 그 어떤 동료애보다 끈끈한 동료애를 만들어낸다.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드라마 말미에 전쟁이 끝나고 패전한 독일 장성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하는 말이다.



제군들, 길고도 힘겨운 전쟁이었다.

제군들은 국가를 위해 용감하고도 자랑스럽게 싸웠다. 

제군들은 특별한 군대다. 

제군들은 오직 전투에서 전우 사이에만 존재하는 또 다른 유대를 발견했다.

제군들은 참호 속에서 함께 절박한 순간순간 서로를 붙들었다. 

제군들은 함께 죽음을 보면서 고통받았다. 

제군들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 복무한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제군들 모두는 평안 속에서 길고도 행복한 삶을 살 자격이 있다.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아주 세부적인 회상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형제'가 되어 수십년이 흘러서도 주기적으로 만나며 그때를 회상하는 공동체가 되었다. 그들은 '영웅 이야기'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전우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폭력은 기억을 효율적으로 강화시키는 기제이며, 그것을 통해서 공동체의 유대를 효과적으로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입문식?


그러니 아름다운 대안은 없는 것 같다. 폭력적 입문식을 제도적으로 억압해 일시적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 수는 있지만, 이미 거대 집단을 형성해 복잡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현대인들이 지금의 생물학적 구조를 유지한 채 살아가는 한 ‘폭력적 입문식’은 어떻게든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유토피아에 가까워지면 좀 더 나은 입문식이 등장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부조리를 새로운 부조리로 대체하는 시시포스적 노력은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처럼 언제든 고개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집단화 기제로서 폭력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폭력적 입문식에 최종적인 면죄부를 선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구축해 발전시키고 있는 생명, 인권에 대한 이해가 그러한 폭력적 행위를 단죄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육과 훈련, 그리고 입법과 사법적 규제를 중시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행동 방식은 본능만이 아니라 문화를 통해서도 영향을 받으니 말이다.



오늘날 한국의 시시포스적 ‘어른 되기’


한국사회에서 오늘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지금 ‘어른’을 자임하는 사람들이 구성해 낸 ‘부조리한’ 사회질서에 길들여지는 과정이다. ‘부조리’의 크기만큼 그것을 반전시키기 위한 정당화의 폭력은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질서에의 순응은 순수한 정당성을 지시하는 상상 속의 신화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을 정당화하는 신화(광의의 ‘법’)에의 굴복을 개인들에게 요구한다. 그 굴복이 의례적인 흉내 내기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위계화된 사회 질서, 불안을 강요당하는 사회 질서를 흉내 낼수록 ‘부조리한 현실’, ‘부조리한 과거’에 대한 상상은 더욱더 뒤틀린 채 우리를 엄습한다. ‘지옥’에서의 복종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흉내’의 가면을 계속해서 쓰고 있는 한, 파열된 세계상은 지속적인 긴장을 잉태하며 내외의 폭력성을 증가시킬 것이다. 그러나 가면을 벗어버린다면 긴장의 압력이 내부로 향하며 세계상의 전복도 가능할 것이다. 그것이 결국 새로운 가면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잠시의 ‘희열’을 맛보게는 해 줄 것이다.


산의 정상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행복한 시시포스를 떠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 알베르 까뮈


이렇게 보면 이런 문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여겨진다. 늘 쳇바퀴 돌 듯 문제는 반복될 것이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도 그럴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빚어내는 현실에 대한 이해는 늘 시도할 수밖에 없다. 사유하지 않으면, 그리고 묻지 않으면 그 쳇바퀴 밖의 관점을, 그래서 우리를 제3자적 관점에서 그려보는 일을 할 수 없다. 자기 객관화 없는 성숙은, 개인 수준에서든 집단 수준에서든 간에,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1. 2006년 한겨레는 ‘폭력에 길들여진 대학사회 이대로 좋은가’라는 연재를 통해서 체육학과 등에서 벌어지는 폭력적 신고식 문화를 고발한 바 있다. “이것도 ‘체대식 예절교육·체력단련’?”(2006년 3월 15일) 등 참고. 이 신문은 2007년에도 대학가 폭력적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문제를 다뤘다. “비오는 날 정문앞 팬티바람 얼차려 “여기가 대학교 맞아?””(2007년 3월 8일). [본문으로]
  2. 누리꾼 발끈 “군대 모욕이다…군엔 조폭문화 없다” (한겨레, 2006년 3월 9일). [본문으로]
  3. ‘관종’은 ‘관심종자’의 줄임말이다. 이 말은 누군가 눈에 띄는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본문으로]
  4. 이런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공익적 내부 고발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한국의 실정을 떠올려 봐도 충분할 것이다. “공익제보자의 59%가 자살충동 느껴. 배신자 취급, 왕따, 생계문제 등으로 고통”을 받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건 우리 사회의 뒤틀린 자화상을 보여주는 아주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본문으로]
  5. 조너선 스미스, 《종교 상상하기》 6장 참고. [본문으로]
  6. 이 리스트에 ‘지・옥・고’가 추가되었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 딴 말이다. [본문으로]
  7. 허참례와 면신례를 합쳐서 ‘신참례(新參禮)’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문으로]
  8. “면신례”, 한국민족문화대백과(http://encykorea.aks.ac.kr). [본문으로]
  9. 최종성, “일제강점기의 의례 매뉴얼과 민속종교”, 한국역사민속학회 220차 연구발표회 자료집, 2017, 12쪽 참고. [본문으로]
  10. 여기에서 ‘평판의 내러티브’라고 한 것은 ‘허풍’과 ‘속임수’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증인이 모호하거나 혹은 조작된 경우일지라도 그럴 듯한 이야기라면 평판을 높이는 데 유효하다. [본문으로]
  11. 《침팬지 폴리틱스: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사회성: 두뇌 진화의 비밀을 푸는 열쇠》 등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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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종교인문학 블로그는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매월 내 놓는 종교문화에 대한 한 발 더 들어간 논평과 에세이 등을 '월간 종교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내 놓는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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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출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나는 내 출생을 의도하지도 않았고, 내 출생을 예상하지도 않았으며, 내 출생을 스스로 확인하지도 않았다. 나는 내 출생을 당연히 자축했을 까닭이 없다. 나는 내 출생에 무지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출생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 출생 이전에 나는 없다. 나는 내 출생과 더불어 ‘있기’ 비롯했다. 나의 없음과 있음을 가르는 계기가 내 출생인데, 그렇다고 하는 것은 그 출생과 내가 전혀 무관한 채 내가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내가 나도 모르게 내가 되었다는 것은 지극한 ‘부조리’이다. 나 스스로 나의 있음의 자리에서 나의 없음의 자리를 바라볼 때 그러하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없음의 자리에서 내 있음을 일컫는 엄청난 이야기들이 현존한다. 그것은 너무 다양하고 얽히고 몽롱하고 때로는 놀랍고 때로는 두려워서 내 있음으로는 감당하기 버겁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는 나와 아랑곳없이 쉼이 없다. 듣다 보면 짜증도 나고 지루하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몰두하게 하기도 하고 끝자락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게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 이야기의 구조는 헤어날 길 없는 소용돌이다. 나는 늘 빙글빙글 돌아 처음자리에 되돌아오지만 다시 끝자리로 나아간다.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주체가 실재하는지, 아니면 내가 내 없음과 있음에 엉키어 그것을 풀려고 다만 그렇다고 내가 여기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주 어렸을 적이다. 어머님께서 늙은 호박을 따다가 이를 썰어 마당 빨랫줄에 너실 때면 나는 내 생일을 예감했다. 그것은 배추를 뽑아 텅 빈 밭에 서리가 내릴 즈음과 거의 같은 때였다. 생일 점심때 나는 호박꼬지를 넣은 백설기를 먹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으레 아욱죽을 먹었는데, 떡에 쓴 쌀을 어머님께서는 그렇게 채우셨다. 

  나는 누님들 둘에 이어 ‘마침내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당신 친구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내 맏상제요.’ 하시던 것도 기억난다. ‘아들’과 ‘맏상제’의 함축을 터득하는 데는 무척 긴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터득은 나의 출생을 설명하는 소음의 소용돌이와 함께 있었다. 그 세월은 내게 꽤 팽팽한 긴장의 지속이었다. 이유 있음과 이유 없음의 뒤섞임이, 그리고 책임 있음과 책임 없음의 얽힘이, 나와 이어진 ‘사실’인 것일 때, 그 긴장은 자연스레 내게 그 사실을 간과하고 싶은 현실이게도 하였다.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질끈 눈감아버리면 모든 사물이 가벼워진다는 경험은 상당히 편리한 해답으로 내게 참 오래 지속되었던 것이라고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부끄러운 증언이지만. 

  아무튼 나는 애써 그 소용돌이에 무관심하려 했는데, 그러다 어느 결에 그 소음들이 실은 나 있기 이전에 있었던 어떤 주체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나한테 하는 발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짙어졌는데, 그래서 그 이야기의 주체들이란 실은 나의 다른 주체들일 거라는 생각에 경도(傾倒)되었는데, 다행하게도 나는 그러면서 그 긴장을 조금은 느슨하게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그 경사의 내림 길을 이어 살아간다. 그 끝이 어디인지 조금은 불안하지만.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의도하지 않은 일인데도, 나도 모르게 내게 과해진 일인데도, 그 일을 불가불 꾸려가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삶은 그랬다. 차마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참으로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기 이전에 이미 나는 먹고 싸고 놀고 잠자고 하면서 ‘자라고’ 있었다. 남들이 나를 꽤 자랐다고 했을 때 나도 나 스스로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때 내게 일었던 삶이란 온통 꿈으로 범벅이 된 것이었다. 삶의 주인이란 자신의 삶을 자기의 꿈으로 채우는 사람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그 꿈은 이른바 ‘꿈의 실현’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론 꿈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내겐 꿈과 현실의 갈등이 자주 일었다. 꿈에 오줌을 누면 참 시원했다. 그러나 그 꿈은 현실에서 요를 모두 적셨고, 나는 키를 머리에 이고 이웃집에 가서 소금을 받아와야 했다. 그래서 그랬겠는데, 가끔 꿈이 무서워 어서 깨어나야겠다고 꿈꾸면서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그런데도 거듭 말하지만 삶보다 꿈이 더 좋았다. 꿈에는 날개를 달고 날 수 있었다. 나는 꿈을 꿀 수 있는 밤이 좋아 하루가 즐거웠다. 그러면서 꿈이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안위라는 사실 때문에도 밤을 품은 낮이 즐거웠다는 사실마저 첨언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래도 정직하지 않을 듯하다. 

  아무런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겪은 것은 내가 꽤 자란 뒤의 일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꿈을 꾸려는 생각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를 안 것이라고 말해야 할 텐데,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 사치스러움을 누릴 아무런 자격이 내게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누군지 내게 강요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라고 해야 할 텐데, 아마도 그때부터 삶이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을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힘든 것이라는 사실에 익숙해진 것일 거라고 지금 생각한다. 그때는 내가 내 이야기를 모두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 없다는 것을 터득한 때와 같이한다. 내 몸의 현존을, 몸이 있어 내가 있음을, 그래서 내 실존을, 부모 탓이라고 해도 좋을 거라는 발언을 하고 싶은데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내가 너무 자랐었다고 해야 옳다. 그래서 나는 꿈을 꾸었다고 해도 좋다. 삶은 꿈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어진다. 내 출생과 이어진 그 많은 이야기의 소용돌이도 꿈의 출렁임과 다르지 않지 않으냐고 나는 아무에게나 묻고 싶다. 삶은 꿈이다. 꿈에서 깨어나도 꿈이고, 꿈에서 꿈을 꾸어도 꿈이다. 


  

  아버님은 찬데 따듯하셨다. 어머님은 따듯한데 차셨다. 나는 아버님이 더 좋았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고자 했다. 아버님을 잃었을 때 나는 내 ‘마지막 자리’의 상실을 경험했다. 나는 지금도 그 사실이 내 꿈의 상실과 이어져 있다는 것, 그러나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그 상실의 회복에 대한 기대로 내 생애가 점철(點綴)되었던 것이라고 믿고 싶다. 꿈의 상실이란 없다. 

  ‘따듯한 자리’의 소멸을 안은 채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건데, 쉽지 않다. ‘하느님 아버지’를 뇌이면서 나는 언제나 그것의 사실 아님과 그렇게라도 해서 내 현실에서의 아버지의 부재를 보상받아야만 겨우 숨을 쉴 수 있다는 그것의 사실성 사이에서, 그래야 따듯함에의 귀착을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의 사실성 사이에서, 편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사실은 그렇게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나는 편했었다고 발언하고 싶은데, 그 발언이 엉키게 할 숱한 내 발언에 대한 남과 나 스스로의 메아리를 나는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틀림없이 무서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버님처럼 살지 않았다. 그렇게 살지 못한 것 아니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뚜렷하게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서서히 어머님처럼 살고 싶어졌기 때문인데, 이제는 어머님처럼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 감히 그렇게 내 삶을 스스로 애써 채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내가 바라는 색이 드러나지 않는다. 답답하다. 여러 색깔의 물감을 섞어 되지으면서 끊임없이 내 삶을 개칠한다. 꿈은 아버님 편이었지만 현실은 어머님 편이었다고 말하면 왜 내가 더 좋아한 아버님 편을 떠나 어머님 편에 섰는지를 조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러한 분류방식은 나를 거의 질식하도록 한다. 아무튼 이에 대한 반응은 실은 내 몫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을 안다는 것이 때론 절망적이기조차 하다. 그런데 내 삶은 긴 삶의 흐름 과정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 내 몫의 영역을 벗어난다.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그것이 현실이다. 세월을 좇는다는 일이, 내게서는, 어느 틈에 그렇게 각인되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뜻밖에 길었다. 왜 짧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참 길다. 나는 오래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내 삶을 책임진다는 일이 ‘말도 아닌 것’이라는 자학을 일상화하고 있던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방금 말한 ‘책임’이라든지 ‘말도 안 된다’든지 ‘자학’이라든지 ‘일상화’라든지 하는 언어들이 갑자기 역겹다. 그렇게 발언하고 있는, 그러니까 그 발언을 낳은 내 삶의 경험을 그 언어들은 불완전해도 더 그럴 수 없을 만큼 모자라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언어에 담으려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싶은데, 그렇게 하지 않고는 그나마 담을 그릇이 그리 마땅치 않다는 것을 나는 넘어설 수 없다. ‘삶은 몸의 짓인데~’라고 탄식할 뿐이다. 겨우 발언한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배고팠어요. 추웠어요. 아팠어요.’ 다음에 이어진 당연한 귀결은 분명하다. ‘죽고 싶었어요.’ 몸이 겪는 일은 몸을 버리면 없는 일이 된다. 몸의 발언은 늘 이렇다. 우리는 너무 많이, 그리고 자주, 우리의 몸을 살면서도 몸을 지나친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사치라고 나는 말한다.    

  살면서, 그러니까 몸의 지속을 시간 속에서 확인하면서, 늘 배고프고 춥고 아프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좋기도 했고, 그래서 웃기조차 했다. 그러나 몸의 조건과 분리된 그런 것은 내게 불가능했고 비현실적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미워하기도 했고 분노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것도 몸의 현실과 단절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하고 싶다. 두려움도 속수무책감(束手無策感)도 다르지 않다. 나는 삶의 과정이 이른바 정신적인 것이라든지 영적인 것이라든지 하는 주장과 만나면 그의 삶의 경험이 나와 어쩌면 이렇게도 이질적일 수 있을까 갸우뚱해진다. 너도 나도 몸의 현실을 살아가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내게 참 부러운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청장년 때 늘 그랬는데, 지금은 더 그렇다. 몸과는 아무런 이어짐 없이, 몸을 넘어, 몸을 없는 듯 여기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 훌륭했던 분, 내게 인간적이었던 분, 내게 꿈과 내일을 보여준 분, 그리고 참 많은 좋은 분들이 내게 그런 다른 사람들이었다. 부러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 얼마나 압도적인 거였는지 나는 그렇다고 하는 사실이 내 열등감조차 충동하지 못하면서도 내게 늘 있는 ‘정서’였다고 실토하고 싶다. 그 정서를 벗으면 이미 내가 아니었다. 그런데 나를 스스로 슬프게 하는 것은 그 부러움을 감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늘 쫓겼다는 사실이다. 가리고 숨기고 덮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면 그 부러움은 나를 슬프게 하는 것도 아니고 강박관념을 일게 하는 것일 수도 없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기술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묘사를 찾아낼 수 없다. 그래서 이제는 오히려 부러움에의 침잠 속에서 내가 살아왔다고 하는 것이 실은 나를 편하게 한 것이라고 스스로 나를 다독거린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닿을 길 없는 것에 이르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았어도 되었다는 자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며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 싶다. 적어도 내 몸이 더 이상 있지 않을 때까지는 그렇게 나는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실은 정직하지 않다. 나는 어느 틈에 부러운 사람들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내가’ 한 일이다. 나이 먹음은 그렇게 자기를 속이는 것으로 누적된다. 그것이 또 다른 꿈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내가 범한 가장 지독한 사치였다. 나는 이를 위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과불(過拂)을 짐 지웠기 때문이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가시지 않았다. 내게서, 그리고 그들에게서. 그런데 학교는 나를 욱죄는 틀 이상의 아무것도 내게 남겨진 흔적이 없는데도 나는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을 팔면서 그것으로 먹고 살았다. 지금도 그 여운에 실려 몸을 굴리면서 살아간다. 

  앎에의 탐구, 그 알쏭달쏭한 실체는 그때나 이제나 내게 지워진 천형(天刑)이다. 왜 나는 물어야 하나? 왜 나는 소박한 수용을 살지 못하나? 왜 나는 그 많은 훌륭한 분들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이름의 잣대를 들이대야 하나? 왜 나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도 앎을 빙자한 권위를 휘둘러야 하나? 반응과 상관없이 나는 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자신하는가? 내심 인류의 지성사(知性史)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고 단언하고 싶은데, 그것은 천박하고 무지한 발언이라는 비난이 폭포처럼 내게 쏟아질 거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내 학문함의 세월이 나를 그리 어리석은 소박함 속에 가둬둘 까닭이 없다. 나는 내가 익힌 ‘학문의 기교’로 인류의 지성사는 경탄스럽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발언해 왔다. 다만 나는 그 경탄의 내용을 결코 서술하지 않음으로써 내 정직성을 유지한다고 스스로 나에게 설득하고 있을 뿐이다. 혹 누가 은밀히 물으면 나는 내가 불가피하게 참 사치스러웠다는 사실을 가늘고 낮은 소리로 발언할 터이지만 그것을 들어줄 만한 ‘좋은 사람’들은 이미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것도 꿈이다.  


  나이를 먹어 사랑을 했다. 몸이 자랐기 때문이다. 몸 없이 어떻게 사랑을 하나? 나는 그렇게 단언한다. 남자만으로는 모자란다고 내 남자가 스스로 절규하는데. 그런데 여자를 정말 만났을 때, 몸의 현존을 때로 넘어서는 전율을 사랑이라고 하고 싶어졌었다. 그 전율이 몸의 현실이 설명할 수 없는 몸의 현실을 담고 있다는 역설을 나는 처음으로 겪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기술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해도 좋을 듯하다. 나는 이를 몸의 퇴거와 몸의 새로운 내재(內在)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런 언표(言表)는 그때의 일이 아니라 지금의 일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만큼 부자연스럽게 나는 남편이 되었고 아비가 되었다. 그 삶의 마디가 제대로 선명해지지 않는다. 겨우 발언한다면 누구나 신비의 한복판에 빠지면 판단을 잃는다고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아니, 신비는 그 판단부재의 상황에서 비로소 신비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더 나아가 그 신비는 언제나 나를 자기 밖으로 내치면서 어서 나가 여기에서의 경험을 증언하라고 강요하는 폭력의 주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나를 신비스러운 불안에 떨게 한다고 하는 사실도 내처 말하고 싶다. 나는 신비에 쫓겨 내 삶을 서둘렀다. 삶이 신비를 좇는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아니다!’라고 나는 단단히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고 하는 사실을 내가 마침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래서 드디어 내게서 발언되었을 때, 그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자식들이라는 사실을 나는 발견한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 그것은 짐작 못한 놀라움이다. 공포이기도 하고 환희이기도 한다. 애써 가렸던 것의 절망스러운 노출이기도 하고, 이제야 획득한 자유의 처음 호흡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나는 일그러지는 몸의 쇠잔함과 ‘버텨온’ 내 실존의 뚜렷한 기욺의 낌새를 확인했었다. 이제는 낡아진 것이다. 이렇게 삶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늙은이라고 부른다. 나도 그렇게 나를 알고 있다.  

  

  몸의 회복 불가능한 퇴행 과정에의 들어섬. 몸의 준거를 배제한 노년의 묘사는 거짓이다.  그러므로 노년을 일컫는 이러한 묘사는 참이다. 세월의 흐름에 실려 떠가면서 햇볕에 의해 퇴색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몸의 현실이 삶인 것을.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도 일컫는 초월이란 어쩌면 퇴행에의 저항을 개념화한 슬픈 언어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지막 자기의 자존(自尊)을 지키려는 몸의 도로(徒勞)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초월이 몸의 현실에서 구체화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것이 몸의 발언이라는 사실을 승인한다면 그것은 도로이기 보다 몸이 애써 가꿔 결실(結實)한, 누려야 할 실재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의 퇴행이 짓는 그늘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삶은 어차피 꿈인 것인데. 

  하지만 못내 불만스럽다. 세월은 흐르지 않는다. 아니, 세월은 흐르지만 삶은 흐르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차근차근 쌓인다. 늙음은 제법 솟아오른 퇴적(堆積)이다. 그것은 집적된 덩어리이다. 길이가 길지 않아도 좋다. 자그만 탐침(探針)만 마련한다면 쪼그리고 앉아 하루 종일 나는 내 몸의 현실이 거쳐 온 온갖 작은 조각들조차 내 지층(地層)에서 파낼 수 있다. 파 들어가면 내 탐침은 내 출생과 만나고, 내 지난 어느 날의 구름과 그림자를 만나고, 지금은 쉰이 넘은 자식들의 출생을, 그 순간의 그 아이의 울음을 만나고, 왜 기억나는지 모를 찌그러진 맥주 캔을 만난다. 맏상제의 태어남, 흩어지는 구름과 그림자를 짓던 햇빛, 아가의 울음, 버려진 깡통…. 그런데 문득 그 숱한 흔적들의 내일이 거기 탐침 끝에서 묻어난다. 그 잔 흙들이 못내 내 발굴을 더디게 한다. 나는 어느 틈에 먼산바라기가 되었다고들 말한다. 내가 그때 맏상제와 구름과 울음과 깡통과 더불어 어제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내일의 어울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짐작하지 않는다. 지층의 탐사가 나를 퇴적의 저변에 묻는 것만이 아니라 하늘 위로 날아오르게 한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 해야 실감 있게 전할 수 있을지 애써보지만 나는 이미 철저하게 간과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늙음은, 내게는, 곧 사라질 몸인 것이니까. 그리고 곧 없어질 존재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病 

  손자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그 녀석 배를 쓰다듬어주면서 곧 나을 거라고 했다. 시간이 한 뼘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괜찮다고 일어선 녀석이 말했다. ‘할아버지, 이런 일만 없으면 참 좋은데!’ 나는 ‘이제 아무 일도 없을 거야!’하고 말했지만 이것은 내가 내 손자에게 한 최초의, 그리고 가장 ‘정직한 거짓말’이다. 이보다 더 완벽한 거짓말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몸을 가진 인간이 안 아프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망발이다. 여러 사람 욕보이는 일이다.

  몸은 불완전하다. 더불어 사는 사람살이의 구조도 온전하지 못하다. 아주 많이 그렇다. 그래서 배가 고플 때부터, 그래서 허기져 하늘이 노랗게 빙글거릴 때부터, 나는 몸에 대한 신뢰를 모두 치워버렸었다. 내 몸을 담고 있는 이른바 공동체에 대한 신뢰도 그렇게 말끔하게 지워버렸었다. 적어도 몸이 병들어 아픈 것과 관련해서는 그렇다. 병드는 것은 병든 사람의 팔자소관인 것을 어찌 나라님 탓을 할 수 있을 것이겠는가? 그런데 한 끼 밥을 든든하게 먹고 나면 온 세상이 달랐다. 내가 어려서 일을 하며 살았던 곳의 여전도사님은 때로 나를 불러 시장에서 장국밥을 사주셨다. 지금 곰곰이 헤아려보면 아마도 2년 동안에 그 일이 세 번쯤이었다고 생각되는데 나는 그분이 어머니처럼 나에게 늘 그렇게 해주셨다고 되뇐다. 고마움, 또는 염치없음은 먹기 전의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국에서 고기 덩어리를 건져 모두 내 국그릇에 옮겨주신 그 넉넉한 포만을 만족하고 나서야 겨우 내게서 돋은 ‘현실’이었을 뿐이다. 배가 부르면 세상이 제법 살만했다. 몸에서 힘이 솟았다. 몸에 대한 자신감이 차고 넘쳤다. 그러면서 나는 가난은 병들게 하고, 병들면 가난하게 된다는 것을 터득했다고 하고 싶은데, 그 터득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현실을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때는 왜 그리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가난과 질병의 이어짐만으로 몸의 아픔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아픔을 아파하지 않은 때였다. 

  몸의 아픔은 절대적으로 몸의 짓이다. 나는 문자 그대로 병드는 것이 싫고, 병들어 아픈 것이 두렵고, 병들어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속수무책의 경우가 저주스럽다. 내 아픔도 그렇거니와 다른 사람의 몸의 아픔도 그렇다. 내 피붙이의 아픔은 정직하게 말하건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질병’을 공유하며 아파할 만큼 선하지 않다. ‘그의 아픔’이 조금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질끈 눈을 감든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본다. 속은 찢어지는데 참여의 여지는 전혀 내게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몸과 나의 몸은 엄연히 다르다. 나는 앓는 이의 병상 옆에 서 있기보다는 티브이의 채널을 돌리듯이 그렇게 ‘타인의 질병’을 외면하는 것이 내게도 그에게도 정직한 것이 아닌가하고 고민하기도 한다.    

  게다가 질병은 아무리 해도 설명할 수가 없다. 의학적인 설명은 늘 넘친다. 그리고 더 친절해지고 있다. 원인과 처방은 날로 나아진다. 예방의학에 이르면 그 친절은 기가 막힌다. 일어날 일을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것 말고 다른 설명을 나는 아픈 사람의 아픔에 참여하려면 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런데 막상 아픈 사람의 아픔에 참여하려 해보면 그 설명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힘이 든다. 아픈 이에의 참여는 그 아픔에 대한 설명을 나에게, 또는 너에게, 해야 마땅하다는 불가능한 의무를 내게 안기기 때문이다. 괴롭다. 그런데 할 수 없는 일과의 직면은 나를 비겁하게 하고 도망치게 한다. 살아가면서 나는 정말이지 늘 이런 일을 이렇게 겪어왔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왔었으니까. 그리고 ‘산다는 것, 다 꿈이지요.’하는 말이 차마 발설되기 어려운 경우가 바로 이 경우이기도 하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나 자신의 경우라면 나는 내 아픔에 아예 푹 빠져버리는 용기를 발휘하고 싶다. 가끔 그랬었다. 용기는 때로 설명을 폐기해야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몸의 아픔의 숙명적인 수용에서 비로소 승인하게 되었다는 것을 발언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피붙이의 아픔은 또 다르다. 그것은 함께 아파하고 싶은 ‘참여’나 마주치기조차 두려운 ‘외면’하는 몸의 아픔과는 다른 아픔을 삼킬 수 있게 할 뿐이다. 그런데, 나는 사랑에서의 경험처럼, 이 경우에서도 몸의 현실을 넘어서는 아픔이 실재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질병은 몸의 현실이면서도 몸의 현실에서 비롯하는 것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을 겪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 흔한 창조의 완전성에 대한 서술에 공감하지 않을 까닭은 없다. 종국이 초래할 몸의 고통 없는 ‘나라’에 대한 동경에 감동하지 못할 까닭도 없다. 그런 이야기도 없다면 몸으로 인한 이 고통의 처절함이 말미암게 된 몸의 불완전성을 견딜 아무런 그루터기도 몸의 주체는 마련할 수 없었을 것이니까. 그래서 ‘오죽 몸의 아픔이 심하면 초월의 간섭을 못 견디게 아쉬워했을까’ 하는 데 생각이 이르면 애가 탄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진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승인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겸손할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몸은 앓아야만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너도 아프고, 나도 아프고. 

  

  나는 참 자주, 그리고 많이, 또한 오랫동안, 치병을 위한 기도를 했었다. 나는 그러한 기도가 내 성장의 궤적에 상흔처럼 남아있는 어떤 ‘충동’의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참으로 주책없는 일반화라고 느껴지는데도 나는 그것이 사람 누구나의 일상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누구에게 한 기도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할 길이 없다. 앞서 지적했듯이 초월의 간섭을 요청하는 절규였을 뿐이라고 해야 옳은데, 이러한 진술이 소통을 이룰 까닭이 없다. 초월은 이미 다듬어질 수 없을 만큼 그것 자체가 엉켜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폐기하기 전에는 그 엉킴을 풀 길이 없다. 그러니까 초월은 나를 넘어선 나에 대한 희구였다고 발언해도 할 말은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초월은 몸의 현실이 낳는 필연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꿈을 살아가는 존재니까. 

  그 기도의 성취를 믿느냐는 물음도 내게 주어진다. 이 물음 앞에서 나는 상당히 긴장한다. 그랬었다. 왜냐하면 내 현실에 대한 직설적인 서술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몸의 아픔이 ‘아직 아프지만 곧 가셔질 거야.’라고 대답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답하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발언이 의도와는 다르게 발언되는지, 또는 되어야하는지, 우리는 익히 경험하고 있지 않으냐고 항변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말은 차마 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사실이란 희구가 내용일 수 없다. 사실은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늘 희구를 배신하곤 한다. 나는 내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땀을 쏟고 숨을 멈추면서 내 바람이 아픈 이의 몸속에서 구현되기를 바란 적이 있다. 그러고 나면 몸이 휘둘릴 정도로 힘이 빠졌다. 하지만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죄의식과 자학이 내 기도를 뒤따랐었다. 결국, 치유에의 기원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지 않으냐는 자문(自問) 앞에서 나는 내 언어를 잃곤 했었다. 아픈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그런데도, 너는 몸의 아픔과 만나면 또 기도를 할 거냐고 묻는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의외로 잔인하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발언될 때 더욱 그러하다. 나는 내가 더 답변할 의무를 지니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그 물음주체가 짐작할 때까지 침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침묵을 나는 치유를 위한 기도로 채울 것이다. 때로 우리는 질병의 고통과 직면하면서 오직 기도할 수 있는 일밖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나는 무릇 기도란 몸의 아픔과 이어진 것일 때 비로소 기도다워진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어려운 일’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에 직면하여 드리는 기도는 편의를 위한 게으른 떼쓰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질병은 다르다. 그 아픔이 치유 불가능하다는 것은 기도를 통해 수용될 때 비로소 꿈의 범주 속에 수용된다. 참으로 불가능한 현실이 아니면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다. 몸의 아픔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거듭거듭 확인하게 한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거듭거듭 기도한다. 그렇게 했다. 기도의 성취 여부를 묻는 것은 그가 질병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 ‘밖의 자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차피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몸짓이 다만 기도라면 그것을 하지 않을 까닭은 없다. 질병은 내게, 우리에게 이러한 현실로 있다. 몸이 현존하는 언제 어디에서나 그렇다.   

  사랑하는 여인이 숨을 거두었을 때, 나는 내 기도의 성취를 확인했었다. 이제부터는 결코 몸의 아픔을 이 여인은 겪지 않으리라는 위로 때문이었다. 성취되지 않는 기도는 없다. 우리의 삶은 늘 꿈이다.


 死 

  몸의 소멸은 아픔을 가시게 해준다. 삶의 마디마디에 낀 그 온갖 사연들도 잠잠하게 해준다. 그랬었다. 몸이 없으면 있는 게 없다. 남는 게 없다고 해도 좋다. 

  아낙네는 화장품을 아꼈다. 비싼 것은 감히 살 엄두도 못 냈다. 친구가 외국에 다녀왔다면서 사준 크림을 그녀는 아끼고 아껴 썼다. 그러다 유효기간이 그만 지나 아직 반도 안 쓴 크림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울상을 한 채 화장대 위에 얹어 놓고 있었던 것을 남정네는 기억한다. 아낙네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남정네는 그녀의 화장대를 치우지 못했다. 꽤 오랫동안.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난 어느 봄날, 남정네는 검은 비닐봉지를 가지고 와 화장대에 있는 모든 화장품을 한꺼번에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낙네의 몸의 사라짐이 이렇게 완성되었을 때, 남정네는 갑작스러운 고요를 느꼈다. 없음과 있음이 아울러 제각기 자기 자리를 벗어나, 고요 안에서 스스로 자기를 지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고요가 아낙네를 어떻게 이어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몸이 더는 아프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고요가 남정네를 어떻게 이어갔는지는 그릴 수 있다. 그는 곧 그 고요에서 벗어나 소음의 현실 속에서 그의 삶을 이어갔다. 잊음은 상실의 흔적을 지워갔다. 몸은 고요 속에 머물 수 없어 몸이다. 몸은 언제나 새로운 오늘을 만나 새 삶을 빚는다. 다시 죽음의 고요 속에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 침묵의 늪에 들어설 때까지는 그렇다. 그렇다고 남정네는 스스로 다짐했다. 그런데 그 과정은 이제는 없는 아낙네와 더불어 있었던 소음의 세계와는 다르다. 고요의 경험은 남정네로 하여금 ‘더불어 있었던’ 세월에서는 꿈도 꾸지 못한 삶을 스스로 숨 쉬게 했다.    


  죽음은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이다. 몸의 현실에서 죽음처럼 당연하게 ‘당연한 자연’이란 없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있는 몸의 몸다움이 초래하는 자연스러운 몸의 현실이다. 그렇게 총체적이고, 그렇게 완결적이고, 그처럼 절대적인 현상이 다시 어찌 몸에서 일 수가 있겠는가. 몸은 언제나 삐거덕거리지만 죽음에서만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죽음을 구현한다. 그런데 그 일상이 사람들에게 사건이 된다. 마치 그 남정네의 경우처럼.

  사람들은 죽음을 수습(收拾)한다. 사건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망자가 각별하게 비일상적으로 다루어진다. 하지만 실은, 모든 사건에서 그렇듯이, 망자는 치밀하고 정교한 ‘절차’에 의해 ‘치워’지는 것이지 ‘모셔’지는 것은 아니다. 수습해야 하는 일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처치(處置)다. 흥미로운 것은 치우면서도 모신다는 기술(記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까닭은 어쩌면 너무 분명하다. 일상을 사건화하고 있는 것이다. 상상도 못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는 데 그 흥미로움이 자리 잡고 있다. 자연인 줄 알면서도 아니라고 하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 아니면 흔히, 우리는 늘 속고 속이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로 이를 가릴 때가 있다. 죽음의례에서 우리는 그렇다고 하는 사실이 극화(劇化)된 현실과 만난다.  

  까닭인즉 다른 것이 아니다. ‘자기의 경우’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자기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자기도 살아있는 자들에 의하여 치워질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것은 좀 싫다. 그 싫음을 분석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내가 나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안다. 그런데 그거야말로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가장 버거운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일상을 사건화하는 일은 삶의 일상을 파열(破裂)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상이 깨지는 것이다. 사건을 일상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최소한 사건이 야기할 일상의 깨짐을 예방하여 일상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경각심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일상의 사건화는 다르다. 지극히 당연하게 있어 온 일, 있을 일, 누구나 겪을 일을 마치 꿈도 꾸지 못한 난데없는 없어야 할 일, 없었던 일이 발생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일은 정상을 일탈하는 일이다. 그것은 바른 인식도, 성숙한 정서도, 고상한 지향도 아니다. 건강한 모습일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음의례의 화려함은 일상의 처참한 붕괴와 비례한다. 죽음의 정치적 의례화에서 우리는 종종 그렇다고 하는 것을 확인한다. 나는 이를 의도적으로 힘주어 발언하고 있다. 거듭 ‘사실이 그러니까.’라는 말도 곁들이고 싶다.    


  죽고 싶었었다. 춥고 배고팠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윽고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 죽고 싶었다는 생각을 잊어갈 즈음에도 때로 그런 생각이 문득 들곤 했는데, 그때는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누가 무어라 해도 죽음은 내 매일 아침, 아니면 매일 저녁의 현실이어서 죽음을 희구나 두려움이나 초조의 맥락에서 운위한다는 것이 근원적으로 현실성을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죽음은 그대로 내 삶의 현실이다. 그러니 나는 죽음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밖에 내가 지금 내 죽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실은 지금만이 아니다. 삶이 늘 그렇다. 그랬었다. 지금 그것이 더 짙게 내게 채색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철없는 나만의 울안에서 이루어지는 독백인지도 모르지 않는다.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설명할 수 없는 분노와 절망, 그리고 나도 모르는 자학이 내 속에서 가라앉지 않는다. 몸에 폭약을 두르고 시민들 한 복판에서 자신을 터트리는 사람과 그 일로 죽는 사람들, 그리고 며칠 전 우리 동네 길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배달청년의 일이 지워지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왜 ‘흐름의 마디를 건너 뛴 사건’으로서의 죽음을, 일상이기를 거부한 죽음을, 우리는 살아야 하는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바르게, 정직하게, 누구나 서로 아껴주면서 잘 살았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터인데….’라고 하는 말이 내포한 온갖 사유(事由)의 설명이 넘친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위로해줄 수 있을는지, 그럴 수 있는 힘이 과연 그 설명에 담길 수 있을는지. ‘똑똑한 사람’들의 자기 정당화의 구실로 작동하는 것 말고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신비의 용출을 확인한다는 말의 성찬에서라도 무슨 출구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내 못난 또 다른 사치일는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것을 과불하는.


  하지만 여전히 죽음은 내 죽음을 내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내 몸의 현실이니까. 

  아우가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치료가 불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달려가 아우를 만났다. ‘얼마 남은 것 같지 않아요.’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그래. 그렇구나.’라고 응수했다. 늦기 전에 사람들과 만나 풀지 못한 것들 모두 다듬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래야겠지.’라고 나는 말했다. 크리스마스 날 나는 아우가 다니는 교회에 가서 아우와 나란히 앉아 예배를 보았다. 아우가 눈물을 훔쳤다. 새해, 첫 주말, 아우는 자기가 차를 몰고 병원에 들어갔다. 그러기 전에 나는 아우와 영정사진을 사진첩에서 골랐다. ‘웃는 얼굴로 하고 싶어요.’라고 그가 말했다. 우리는 등산사진에서 그의 환한 얼굴을 찾았다. 외국에 있는 두 아들이 왔을 때는 통증완화센터에 있었다. 내게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라는 찬송가를 불러달라고 했을 때는 이미 섬망(譫妄) 현상이 가끔 나타날 때였다. 나는 그 찬송을 부르다가 나도 모르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우가 간신히 눈을 떴다. 그리고 말했다. ‘고마워요. 아버지 노릇 대신 해주셔서요.’라고. 그리고 말을 이었다. ‘참 행복했어요. 우리가 이쯤 살아온 게요. 감사해요. 모두에게.’ 의사가 계수에게 인공영양제 공급을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본인에게 이 말을 전했다. 아우가 손가락으로 오케이 표현을 했다. 웃음이 얼굴 전체에 흘렀다. 그리고 20시간 뒤 아우는 잠들 듯이 떠났다. 2월 1일 새벽 2시 17분이었다. 다음다음 날, 아우는 한 줌 재가 되어 어머님 옆에 묻혔다.  

  나는 내 죽음 다음에 아버님을 뵐 거다. ‘당신은 몸을 어디다 두고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하고 여쭈어 보고 싶지만, 저리게도 여쭙고 싶은 물음이지만, 아마 나는 그 물음을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못할 거다. 어머님도, 큰 누님도, 아우도 만날 거다. 사랑한 여인도 만날 거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들을, 그러니까 살아있는 내 피붙이를, 그곳에서 기다릴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이 꿈 이외의 죽음 이후는 내게 사치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나의 출생으로부터 비롯하여 내 삶이 이리도 길게 흐른다는 사실, 흘러왔다는 사실, 그런데 내가 내 삶의 주인이기를 선언하고 사는 일이 거의 불가능한 채, 그래도 그렇게 주인 노릇을 하는 양 내 삶을 이어왔다는 사실, 나는 설명할 수 있는 것 하나 없는 삶을 설명하려 도로(徒勞)로 점철된 내 삶을 때론 측은해 하지만,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생로병사에 그처럼 막연한 감사를 하고 싶은,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저 스스로 확인하는 나를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 내 죽음을 맞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언이었으면 좋겠다. 내 몸의 마지막이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그 꿈을 살고 싶다. 아니,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면, 아예 내 몸은 그렇게 살아왔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종교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이 꿈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고마운 꿈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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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연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월간 종교인문학 블로그는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매월 내 놓는 종교문화에 대한 한 발 더 들어간 논평과 에세이 등을 '월간 종교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내 놓는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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