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버스토리/공간과 장소

'밀양'이 비추는 것은?

비교적 최근(2004년부터 현재까지) ‘밀양’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소환되었을까? 구글 트렌드로 알아보면 ‘밀양’이 어떤 사건들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왔는지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위의 그림을 보면 밀양에 대한 관심이 가장 폭발적이었던 때는 2004년 12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밀양에서 있었던 사건은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2004년 밀양’으로 구글링을 해보면 볼 수 있는 핵심 정보들이 해당 사건에 관한 것들이다.



‘밀양’을 구글링 해보면 영화 〈밀양〉 정보를 먼저 볼 수 있다.



〈그림1〉로 보면 2010년, 2013년, 2014년, 2016년에 밀양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2010년 12월과 2016년 6월에는 ‘신공항’ 이슈가 있었고, 2013년과 2014년에는 ‘송전탑’ 이슈가 있었다. 2016년 2월에는 ‘시그널’이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치면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새로이 조명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보면 밀양이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사건은 단연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밀양’에 관해서 이 사건과 함께 불러일으켜진 관심을 넘어서는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을 때(2016년 2월)도 역시 이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기본 정보). ‘집단 성폭행’ 사건 그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다른 집단 성폭행과 질적으로 달라지게 만든 일들은 사건이 문제시 된 이후에 나타났다. 은폐, 은폐, 은폐, 피해자의 2차 피해 등등. 가해자 부모의 막말, 피해자 배려 없는 경찰 수사, 가해자에 대한 온정적 판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부조리한 모습을 사람들이 확인했던 사건이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본 사람들의 추악한 모습을 우리 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유력자에 의해서 저질러진 사회적 물의는 약하게 처벌되며, 어떤 사람들은 예외적으로 ‘나라를 위해서’ 처벌을 면제받는 특혜까지 받기도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처지가 뒤바뀌는 것은 너무나 쉽게 목격하게 된다. 피해자가 2차 피해 등 제대로 사회에 적응하여 살아가지 못하는 반면 가해자는 무탈하게 살고 있는 모습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가해자들이 그러한 행위를 왜 하게 되었는지는 사실 물음으로 등장하지도 않았다. 큰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어떻게 잘 해결할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그와 유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뭐 그런 고민이란 것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집단 성폭행 사건의 전형으로 기억되는 '밀양 사건'


어쨌든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준 사건이고, 성폭행 사건 중에서도 손꼽히는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서는 하나의 모델이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밀양'하면 떠올리는 가장 핵심적인 이미지를 이 사건이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지역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사건은 '강력한 환기력'이 필수 요소일 것으로 보인다.



밀양을 대표하는 이 사건 외에 밀양이 전국적 관심을 받은 것은 한창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이 있던 시기이다. 



그 다음이 ‘신공항’ 이슈이고 그 다음 정도가 영화 ‘밀양’이다. 



밀양 송전탑 사건


밀양 송전탑 사건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해당 지역에 송전선로가 지나는데, 보상을 더 받기 위해서 반대 시위가 이루어졌던 사건 정도로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해당 사건은 총체적 문제를 안고 있는 사건이었다. 아래의 동영상에서 답을 들을 수 있다.




이 사건이 비추는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테일을 좀 살펴야 한다.


밀양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존(재산권, 조망권 등)을 위해 일어섰기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로 비춰질 수 있다. 한국이 전기가 부족하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핵발전소가 필요하고,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대량의 전기를 송전하기 위한 설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의 경우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많은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서 이러한 설명을 일방적으로 듣기 때문에 그러려니 생각한다. 실체가 어떠한지는 알 길이 없기도 하다.


위 동영상에서 하승수 변호사의 설명 중에 나오는대로 한국의 전력소비량이 급증하였는데, 그 중요 이유는 산업용 전기료가 저렴해서다. 정부에서 전력 수요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족' 운운할 정도로 전력 소비량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체 전력 소비량을 인구당 소비량으로 보면 한국이 주요 선진국들의 소비량을 앞지르고 있다. 이런 결과는 단지 '가정'의 소비량의 증가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산업용 전력 소비량이 큰 폭으로 오른 결과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표가 위의 표이다(출처: "한국 가정용 전기 소비, OECD 절반 불과"). 1인당 전력 소비량으로만 보면 위 표에서 미국에 이어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주거용 전력 소비량을 보면 상황이 정반대이다. 위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전체 전기 사용량의 13.6%에 불과한 가정용 전기는 최대 11.7배의 누진제를 적용하면서 종류별 전기 가운데 두번째로 비싼 요금을 내고 있다. 반면, 산업용 전기는 전체 소비량의 56.6%를 차지하면서도 종류별 전기 가운데 상업용, 가정용, 가로등용, 교육용보다 더 싼 요금을 낸다. 산업용보다 더 싼 요금을 내는 것은 심야용과 농사용 전기뿐이다.


산업용 등 전기 요금을 싸게 해서 해당 종류의 전기를 사용하는 업종에서 전기 사용을 늘린 결과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전은 해마다 전기요금 인상을 이야기하며,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기요금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산업용 전기 요금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수출 경쟁력을 위해서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문제들에 사람들이 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전기 과소비 정책'에 따라서 지방 주민들이 다양한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현실이다. 재산피해, 건강피해가 대표적인 발전소 및 송전탑 인근 주민의 피해 사례다. 이 피해가 본인들에게 돌아올 때는 누구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타인, 지방민, 시골사람, 노인들 등에게 돌아갈 때는 '너희도 혜택을 보는데, 손해 보기 싫다고 하는 것은 이기적이다'라고 비난한다. 실상을 모르고 자기 속만 편한 이야기를 한 셈이다.


밀양 이야기에서 전기 이야기로 다소 벗어났지만, 이 이야기가 밀양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밀양 송전탑 사건은 한국인 다수의 '침묵의 공모'를 통해서 만들어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강정마을, 평택 대추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 자기 몸을 태워 죽음을 맞았다. 2012년 1월의 일이었다.



그제서야 밀양의 싸움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위 그림 참고. 2012년 1월부터 그래프가 다시 나타난다). 많은 경찰이 투입되어 마을 주민들이 끌려나오는 장면이 만들어져서야 사람들이 밀양의 싸움에 관심을 기울였다. 언론이 그러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기레기'라는 표현이 이미 충분히 익숙해진 시기였기 때문에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희망버스'를 통해서 사람들의 연대가 이루어졌다. 2013년에서 2014년의 일이다.





밀양 송전탑이 세워졌지만 아직 반대 운동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탈핵을 위해 싸워왔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위해 싸워왔다. 여전히 150가구가 보상을 거부하며 반대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희망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사람들에게 이 밀양의 싸움이 잊혀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로 밀양 송전탑 철거 혹은 축소의 꿈은 사라져버렸다.


'눈물을 타고 흐르는 전기'에 대해서 사람들은 별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남의 복잡한 싸움에 개입하지 않는 게 상수라고 배워왔다. 괜히 엮이면 골치아픈 일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밀양의 싸움을 힘겹게 해왔던 한 할머니도 마찬가지의 결론에 이르렀다.


〈밀해의 사계절〉에서 김말해 할머니, 도곡마을의 유일한 반대자였던 그녀는 싸움 과정에서 많은 몸의 상처를 얻었는데, 고립되어 고통에 빠졌다. 후회에 사무쳐 김말해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 배운기라... 하나 배운기라...' 나서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는 말이었다. 약자에게 가해진 고통에 대해 다수가 침묵할 때, 이러한 인식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세월호를 설명하는 핵심적 표현이 '가만히 있으라'였다. 나서면 정 맞는 사회이기 때문에 저런 말이 의미심장하게 회자되었다. 우리는 아직 '정당한 저항'조차도, 외면 속에서 불의함만 못한 가치를 갖는 행위로 치부하는 정서를 유지시키고 있다. 밀양 송전탑 사건은 이런 모습을 비춰준다. 순응의 공범자로서 '우리'의 모습을 말이다.


밀양 송전탑 사건은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 비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1차적 환기력은 낮은 지역 이슈였다(전기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국적 이슈이기도 했지만). 권위주의적 정부의 공권력 집행에 문제를 느끼고 있던 대중에게 호소력이 있었던 사건(분신, 행정대집행의 폭력)이 기사회되면서 밀양 송전탑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당대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조건이 이 사건의 환기력을 높인 측면이 있었다. 반면 탈핵 이슈에서는 밀양이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다.


신공항



송전탑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국책사업이다. 땅을 빼앗길 사람들, 공항 옆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지역 개발'과 그 이익을 향유하는 지역 사람들에 의해서 주목된 사업이다. 2016년 여름에 결국 현재의 김해 공항을 확장하는 안으로 결정되었다. 밀양과 가덕도에서 격렬한 시위가 잠시 있었다.


송전탑과 닮은 측면은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밀양 신공항은 2011년 3월에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경쟁지인 가덕도도 역시 경제성 없음으로 판단되어 신공항 계획이 백지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은 설왕설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안은 확실히 지역적 이슈에 불과했다. 타지역 사람들은 영남지역 신공항론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경제성, 환경문제 등 여러가지로 말이 되지 않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런 분석과는 상관없이 지역개발이 가능하다고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난리를 치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이건 확실히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어느 지역이나 특히 상대적으로 덜 개발된 농어촌 지역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세금의 낭비요소나 환경문제 등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 당장 짓고 보자는 식으로 나서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밀양'을 규정하는, 밀양 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되지는 못했다. 계획 단계에서 무산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밀양'



앞서도 보았듯이 '밀양'을 검색하면 영화정보를 볼 가능성이 높다. 밀양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密陽을 'secret sunshine'으로, '비밀스러운 빛'으로 파악하게 함으로써 영화의 공간 '밀양'은 실제 밀양보다는 비유적 의미를 담는 상상의 공간처럼 여겨진다. 밀양이라는 지역 자체를 의미화하는 측면에서 이 영화가 크게 기여했는지는 그래서 의문이다.


'밀양'이 비추는 한국은?


'밀양'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충격적인 사건들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 자극적 정보(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여중생, 집단 성폭행, 2차 피해, 가해자의 적반하장, 경미한 처벌, 경찰의 발언 등, 송전탑 사건의 경우 분신사건, 경찰과 할매할배의 대치와 진압 등)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제대로 구제받지 못했고, 사회 구조적 폭력에 희생자로 남아 있다.


한국 역사의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일제 강점, 미군정, 친일파 득세, 6.25전쟁, 군부정권, 반공주의와 공포정치, 서울의 봄, 5.18, 6월 항쟁, 6.29, IMF 등등. 유사한 패턴이 이 사건들에 내재되어 있다. 악의 평범성, 무사유의 성실과 방조의 문제. 자신에게 부조리한 폭력과 고통이 가해지지 않으면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는 '타자'의 문제이다. 그러한 구조와 시스템을 은폐하는 언어, 만들어진 이야기, 왜곡된 사실을 검증하지 않는다. 그 허구성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것은 귀찮은 일이고, 어려운 일이다. 생각만큼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생각되기 때문에 진실에 다가서는 한 걸음이 무겁다.


밀양은 사회의 문제를 지역의 문제로, 정의의 문제를 숫자의 문제로, 생명의 문제를 돈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주류의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믿으며 안락을 누리는 우리의 감춰진 얼굴에 빛을 드리운다. 그런 의미에서 '비밀스러운 빛'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이러한 수준에까지 밀양의 이미지가 투사되는 것은 아니다. 밀양은 그저 추악한 누군가들의 얼굴만을 비추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밀양이라는 한정된 지역이 그 모든 죄악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드는 우리의 민낯 탓이다.


밀양은 그저 우리의 은폐된 공모를 밝혀주고 있다.


'하나 배운기라...'

'대학 가서는 시위한다고 앞에 나서지 말그라...'

'모난 돌이 정맞는다'

'혼자 잘난 척 하지 마라'

'입바른 소리 하면 너만 손해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


...


그렇게 비춰지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좀 더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다면, 서로에게 연대한다면, 세상은 변할 수 있을까?'


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