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문학 잡써얼’ 코너는 연구소의 ‘잡(雜)분과’에서 다뤄진 재밌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잡분과’는 ‘종교’라는 말에 얽매이지 말고 인간에 관해 흥미로운 모든 것을 열린 자세로 논의해 보자는 취지에서 장석만 선생님께서 제안하여 시작하게 된 분과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2017년 12월 21일 첫 번째 모임에서 장석만 선생님께서 소개하신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의 기억에 의존해서 정리하는 것이다 보니 현장 발언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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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가 인터넷에 유행하고 있습니다.


제목: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음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더 우둔해지리라. 

가능한 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자주 구경하리라. 

산에도 더욱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 하리라.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되 콩 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더 많이 겪을 것이나 

상상 속의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하리라.

보라, 나는 시간 시간을, 하루하루를 

의미 있고 분별 있게 살아온 사람 중의 하나이다. 

아, 나는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나의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지리라. 

사실은 그러한 순간들 외에는 다른 의미 없는 

시간들을 갖지 않도록 애쓰리라.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이 순간만을 맞으면서 살아가리라.

나는 지금까지 체온계와 보온물병, 레인코트, 우산이 없이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는 그런 무리 중의 하나였다. 

이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장비를 간편하게 갖추고 여행길에 나서리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춤추는 장소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데이지 꽃도 많이 꺾으리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carpe diem'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런 이야기에 한국 사람만 혹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원래 영문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영어 원문도 대조를 위해 한 번 살펴보죠.


If I could live again my life,

In the next – I’ll try,

- to make more mistakes,

I won’t try to be so perfect,

I’ll be more relaxed,

I’ll be more full – than I am now,

In fact, I’ll take fewer things seriously,

I’ll be less hygienic,

I’ll take more risks,

I’ll take more trips,

I’ll watch more sunsets,

I’ll climb more mountains,

I’ll swim more rivers,

I’ll go to more places – I’ve never been,

I’ll eat more ice creams and less lima beans,

I’ll have more real problems – and less imaginary ones,

I was one of those people who live

prudent and prolific lives -

each minute of his life,

Of course that I had moments of joy – but,

if I could go back I’ll try to have only good moments,

If you don’t know – that’s what life is made of,

Don’t lose the now!

I was one of those who never goes anywhere

without a thermometer,

without a hot-water bottle,

and without an umbrella and without a parachute,

If I could live again – I will travel light,

If I could live again – I’ll try to work bare feet

at the beginning of spring till the end of autumn,

I’ll ride more carts,

I’ll watch more sunrises and play with more children,

If I have the life to live – but now I am 85,

- and I know that I am dying …


영어로 검색하면 이 글의 저자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국내에도 그렇게 적고 있는 게시물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자를 다른 사람으로 표현하는 글도 많습니다. 나딘 스테어다, 켄터키 주 노인이다, 미국 할머니다 등등.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미국인 할머니 나딘 스테어로 좁혀집니다. 85세에 죽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시의 마지막 줄에 쓰인대로 말이죠.


장석만 선생님께서는 영어본과 한국어본의 차이에 주목해서 뭔가 한국적 취사선택이 있었던 게 아닌가 추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시가 보르헤스의 시일 리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문장 형식이나 표현이 보르헤스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영어본도 뭔가 여러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시가 한국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측면, ‘현재에 충실하라’, ‘카르페 디엠’의 메시지에 경도되어 저자가 누군지, 본래 내용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이야기되지 않는다고 보셨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월간 편집자의 생각입니다.


몇 차례 검색을 해 보면, 이런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이거 보르헤스가 썼다고 하는데, 저자가 나딘 스테어로 나오고 어딘가에서는 ‘무명’이라고도 함. 개인적으로 스페인어로 쓴 보르헤스의 시를 스테어가 영어로 옮긴 것 같음.’ (http://www.selfhelpdaily.com/fridays-quote-of-the-day-3/)




혹은


‘이거 보르헤스가 쓴 거 아님. Don Herold 아니면 Nadine Stair일 거임.’

(https://www.poemas-del-alma.com/instantes.htm)


영어나 스페인어 시 제목은 Moments[Instantes]로 알려져 있음을 위 글로 알 수 있습니다.


위키에는

‘이거 보르헤스가 쓴 거 아니고, Don Herold가 1935년 이전에 쓴 산문에서 발전된 거임’

(https://en.wikipedia.org/wiki/Moments_(poem)#cite_ref-1)




이 정도 검색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에서는 이 시의 출처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음.

2. 이 시는 애초에 시가 아니었던 것에서 점차 시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 많은 사람이 참여한 것으로 보임. 나딘 스테어는 그렇게 참여한 저자들 중에서 이름이 알려진 경우일 수 있음.

3. 현대판 2차 구술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임.

4. 류시화의 책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에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고, 저자를 나딘 스테어로 적고 있다. 이것이 한국에서 이 시를 ‘나딘 스테어’ 혹은 켄터키 주 85세 노인(할머니)의 작품으로 이야기하게 된 근거일지도 모름. (1998년 4월 출간됨)

5. 위키 기록을 근거로 보면, 돈 헤롤드의 산문(제목: “I’d Pick More Daisies”로 “데이지꽃을 더 꺾으리라”)이 이 시의 출발점으로 생각할 수 있음. (원저자가 돈 헤롤드인지 확정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음. 돈 헤롤드도 다른 글을 참고했을 수 있으니.)

[위키에 링크된 해당 글: http://www.livinglifefully.com/flo/floidpickmoredaisies.htm]

6. 현재 영어본은 돈 헤롤드의 산문에 비춰 볼 때도 차이가 있음. 류시화가 《지금》에 수록한 시는 돈 헤롤드의 산문에 더 근접함.

7. 나딘 스테어(내딘 스테어 혹은 내딘 스테인일 수 있음)의 참여 정도는 그가 썼다고 하는 글을 확인해야 확정지을 수 있음.


이 외에도 영어본의 문제점(가령 6행의 full은 sillier나 foolish가 맥락에 맞는 것으로 보임), 한글본의 원본 문제(Moments가 원문이 아닐 수 있음) 등을 더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만, 위 자료들을 체크해 보면 누구나 살펴볼 수 있는 문제이니 이 정도만 정리하겠습니다.


분명 제목도 바뀌고, 국경을 넘어갈 때마다 표현도 조금씩 달라지고, 저자도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특정 인물’이 저자로 선호되는 경향, 외국에서는 주로 보르헤스, 국내에서는 류시화의 기록 덕분에 스테어로 모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전달되는 정보는 이렇게 변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로 ‘구전’ 전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텍스트에 대해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전자문서의 발달로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1935년에 기록된 돈 헤롤드의 글(1935년 이전에 쓰인)이 이미 90년대까지 저자가 바뀌고 제목이 바뀌면서 시의 형태로 변형되고, 시도 본래 내용에 살을 붙이면서 변화되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텍스트가 학자들이 주목하기에 의미 있는 글(저자로나 내용상으로나)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대중에 호소력 있는 메시지가 ‘그러한 정보’와는 별개로 그만의 생명력을 가지고 변화되어 나간다는 것을 이 사례가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텍스트’라는 한계 덕분에 어느 정도 계보를 추적할 수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지적할 수 있습니다. 텍스트가 구술 정보와는 달리 어느 정도 변이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사례는 전달 과정에서 변형이 잘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해 줍니다.


사실 과학적인 정보조차도 애초 대중에 소개될 때와 한참 후에 대중에게 인기를 얻어 확산되었을 때 상당한 차이를 보이죠. 이 이야기도 언젠가 다뤄질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이야기는 아래 이야기로 마무리짓겠습니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은 누구 작품인가?에 대한 답변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은 1명의 저자가 쓴 게 아니라 전승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덧붙이면서 변형되어 지금에 이른 작품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르헤스나 내딘 스테어의 작품이라고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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