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의 길/구르는 돌

"양아치"론

편집자주) '글의 길'은 '개인칼럼'을 대체하는 말입니다. '구르는 돌'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님이신 장석만 선생님의 '글의 길' 명칭입니다. 일반적인 표현 방식대로 하자면 '구르는 돌'='장석만 칼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아치의 뜻은 무엇인가? 흔하게 제시되는 주장은 동냥아치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동냥은 동령(動鈴)에서 왔으며 방울을 흔들며 구걸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각주:1] 아치는 벼슬아치의 경우처럼 어떤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동냥아치는 구걸해서 사는 거지, 그리고 탁발하는 승려를 낮춰서 부르는 말이라는 것이다. 네이버 사전에서도 “거지를 속되게 이르는 말, 품행이 천박하고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각주:2]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설명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동냥에서 동이 떨어져나가 양으로 되었다고 보는 것보다는 양(洋)과 아치의 결합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글은 필자가 오래 전에 쓴 글로서, 지금은 이미 없어진 잡지에 실렸던 것이다. 잡지 이름도 가물가물하고 게재된 연도도 확실하지 않다. 그동안 잊고 있던 이 글이 불현듯 생각나서, 뒤져보니 파일은 찾을 길이 없고, 팩스로 보냈던 것이 너덜거리며 나왔다. 이 글이 왜 갑자기 생각났는지에 대해서는 글의 말미에 덧붙여 서술하겠다. 원래 그대로의 내용은 아니고 조금 고친 것이다.



"양아치"론


서양과 '양아치'


양아치라는 말이 주는 일반적인 어감은 그리 좋지 못하다. 이 말에는 이른바 생산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고 빈둥대면서 남 괴롭히는 것을 능사로 삼고 있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양아치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는 부정적인 의미는 “양”을 접두어로 만들어진 많은 단어와 비교할 때 예외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예컨대 양복, 양품, 양주, 양옥, 양식, 양화, 양약, 양의 등의 단어에는 적어도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뢰할 만하고 세련된 것이라는 함의가 깔려 있다. 


“양”이라는 말이 서양과 동양 모두를 지칭할 수 있음에도, 서양만을 나타내게 된 것은 “동양”이 단지 “서양이 아닌 곳”이라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의미만을 띌 수밖에 없었던 19세기 후반 이후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일본의 동양”이라는 제목의 책을 쓴 스테판 타나카에 따르면, “동양(東洋)”이라는 말은 일찍이 중국 상인들이 지금의 자바 섬 근처 바다와 인도양을 가리킬 때 사용되다가 유럽의 존재가 보다 첨예하게 인식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접어들면서 지금의 의미처럼 “서양”과 대립적인 지역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각주:3]


물론 당시 동양과 서양의 용어적 대립이 현실적으로 균등한 세력이 대결하는 양상을 의미할 수는 없었다. 예컨대 군사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인 팽팽한 대결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양은 이미 문명과 진보의 미래를 선취하고 있었던 반면, 동양은 야만적인 타성에 젖어 과거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서양이 모범을 보이고 있는 진보의 행진에 동양이 합류를 하면 할수록, 구식의 동양과 신식의 서양의 대립은 더욱 확연해질 수밖에 없었고, 서양적인 것의 가치는 모든 측면에서 우월하게 간주되었다.


이렇게 서양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서양에 닮아가려는 안간힘이 근대 비(非) 서구사회의 주요 작동원리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점이다. 그러나 비서구 사회에서 서양 모델에의 동화 과정은 정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들쭉날쭉 불균등한 것이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서양적인 것이 쉽게 지배적으로 된 반면, 다른 부분에서는 구식(舊式)이 완고하게 버텨 신식(新式)이 잘 스며들지 않기도 한다. 만약 특정 분야의 서양적 제도나 문화가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비(非)서양적인 것을 주변으로 멀리 밀어내는데 성공했거나 빈사상태에 이르게 했을 경우, 앞에 붙은 양(洋)은 구태여 있을 필요가 없게 된다. 


예컨대 19세기 말부터 서양의 압도적인 힘을 비서양에게 절감케 했던 의료 분야의 경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의사는 그저 양의사를 일컫는 것이요, 약(방)은 양약(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주변적인 한방 의료는 한의사 또는 한약방이라고 스스로 한정된 접두어를 붙여야 한다.


이처럼 19세기 말 이후의 한국 역사는 지금의 서양의 모습이 미래의 우리의 것이 되기를 갈망하며 자신을 채근질해 왔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의 모델이 일본이건 혹은 서유럽이건 간에 서양은 언제나 우리의 미래로서 나침반 구실을 해주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근대 한국사회에서 서양을 나타내는 표현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띠게 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양아치와 양갈보


필자는 양아치라는 말이 서양을 뜻하는 양과 어떤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아치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든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서구가 확립해 놓은 근대성의 업적이 모든 인류가 따라야 할 모델로서 당연시되어 서양적인 것이 자동적으로 높은 가치 평가를 받게끔 기본 틀이 만들어졌다면 어째서 양아치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양아치와 연관되는 또 다른 용어를 살펴봄으로써 단서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양갈보 혹은 양색시(양공주)라는 말이다. 


양아치와 양갈보라는 말은 동시적으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접두사 양이 붙은 다른 용어들과는 다른 출생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접두사 “양”의 가족 내에서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양아치-양갈보”라는 용어가 한국사회에 등장하여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이 시기는 개항기와 일제시대로 이어지는 접두사 “양”의 다른 가족 구성원의 등장 시기에 비해 상당히 늦은 것이다. “양아치-양갈보”가 접두사 “양”의 다른 용어들과 다른 것은 출생 시기뿐만이 아니다. 이전의 다른 용어들이 서양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기원(起源) 이미지와 관련을 맺고, 환유적으로나 은유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에 비해, “양아치-양갈보”는 서양의 현실적 욕망 및 상황에 매이게 되면서 등장하게 되었다. 


예컨대 양초, 양파, 양주, 양복 등은 이전부터 있었던 초, 파, 술, 옷과는 다른 성질과 다른 모양을 지닌 것으로, 서양으로부터 유래되었거나 그와 닮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양갈보는 서양에 기원을 둔 갈보가 아니라, 서양인 특히 서양군인들을 상대하며 그들의 성적 욕망의 하수구 노릇을 하는 자이다. 마찬가지로 양아치가 하는 일이란 서양인이 쓸모없다고 버린 쓰레기 더미를 뒤적여 끼니를 잇는 자이다. 서양의 세련되고 문명적인 모델을 좇아 자신을 훈육하고자 하는 이들과는 달리, “양아치-양갈보”는 서양인의 쓰레기 속에서 기생하는 “한심한 인간 말자(末子)”이다. 민족의 자존심에 먹칠하고, 조상의 심기를 심히 어지럽히는 이런 이들에게 어떻게 긍정적인 가치 평가를 할 수 있으랴?


이제 접두사 “양”의 구성원이 두 종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서양에서 유래하였음을 강조하는 것, 또는 서양이 진보의 척도임을 환기하여 지칠 줄 모르게 모방함을 권유하는 부류,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서양의 배설물을 처리하느라 자신을 더럽히면서 살아가는 부류이다. 하나는 여기에 부재하는 서양이 “우리의 구식”을 떨쳐버리라고 보내는 신호로 작용하는 반면, 다른 하나는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서양이 자기 노폐물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과정에서 등장하였다. 


이처럼 서양의 배설물을 뒤처리하는 “양아치-양갈보”의 개념은 ‘더러움“과 연결되어 처음부터 부정적인 평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남이 버린 것을 제 입속에 넣는 자는 배와 창자를 더럽히는 자이고, 남의 정액의 하수구가 되는 자는 피를 더럽히는 자이다. “양아치”보다 “양갈보”가 좀 더 혐오의 대상이 되곤 하는 것은 바로 이 “피”를 더럽힌다는 생각에 있다. 피의 순수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둘러싸고 민족의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양아치의 여유


본래 “양아치”가 서양인, 특히 서양 군인이 버린 쓰레기를 뒤져 창자를 채우는 자를 가리키는 용어였다면, 어째서 지금의 “양아치”에 대한 대체적인 의미가 거지라기보다는 “제비족”이나 건달 혹은 사기꾼에 가깝게 된 것일까?


아마도 이에 대한 답변은 “양아치”가 지닌 여유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서양인의 밑을 뒤적거리는 “양아치”가 일반 거지보다 훨씬 여유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서양에 대한 선망을 이용하여 평범한 일반인보다 “양아치”가 더 위세를 부리는 일도 없지 않았다. 양대인 자세(洋大人 藉勢)가 백 년 전에만 있던 것은 아닌 것이다. 나중에 부대찌개로 이름을 바꾼 “꿀꿀이죽”에는 당시 보통사람들이 구하기 힘든 고기 덩어리며, 귀한 치즈와 소시지, 그리고 케이크과 초콜릿 부스러기가 모두 들어있지 않았던가. 가끔 거기에 담배꽁초 같은 이물질이 섞여있기도 했지만, 그건 뜨겁게 펄펄 끓이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는 진기한 음식이었다. “양아치”가 누리는 이런 여유는 일반 거지의 절박함과는 대조적이었으며, 서양의 놀라운 풍요로움을 사람들에게 인상적으로 각인시켰다. 덕분에 “양아치”는 서양이 강력함을 효과적으로 과시하는데 기여한 대가로 빤지르르한 “제비족”에 가깝게 이미지를 포장할 수 있었다.


지식인 양아치, 그리고 이중 기생자


서양의 헤게모니 착근 사업에 기생하며, 지방질의 번들거림과 빈둥거림을 누리게 된 “양아치”의 모습이 단지 특정한 집단, 즉 미군부대 주변의 “쓰레기 처리자”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영역에서 보다 원형에 가까운 제비족 “양아치”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한국의 문화계를 좌지우지하는 이른바 지식인이 그들로서, 대학교수는 그 대표라고 할만하다.


그들은 조선시대 선비집단의 후예로 자처하며 혹은 인정받으면서 그 후광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옛 선비들이 지녔던 최소한의 기개와 자기 문화에 대한 긍지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선비들의 자기 절제와 도덕적 기준이 그들 권위의 원천이고, 존경을 받은 이유였다면, 오늘날 그들이 위세를 부리는 근원은 대부분 서양의 학위와 그 권위에의 추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인이 먹다 버린 음식찌꺼기를 가지고 으스대었던 “양아치”처럼 그들은 학문적 “꿀꿀이죽”으로 우리의 머릿속을 채우려고 하면서 자신의 권세를 다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생(寄生) 집단 때문에 또 다른 집단이 이에 기생하면서 활개를 칠 수 있게 된다. 


이들 이중(二重) 기생자는 바로 아무 논리도 맥락도 없이 우리 민족과 “우리나라”의 절대성을 내세우고, 무조건 전통을 앞세워 목소리를 높이는 자이다. 이들이 관심을 두는 유일한 것은 자신의 원리주의적 충성심을 보이는 일이다. 자신들이 기생하고 있는 학문적 양아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들은 한없이 자신의 “우국충정”을 펼치려고 할 것이다.


자칭 양아치


그런데 요즈음 유별난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양아치”라는 말에 여러 부정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에도 스스로 양아치임을 자처하는 이들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왜 요사이 자칭 양아치가 등장하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한 단서는 양아치가 해야 했던 원래의 작업 성격을 살펴보면서 찾을 수 있다. 양아치는 서양인이 버린 쓰레기 더미 속에서 다시 쓸 수 있는 것을 골라 활용하는 자이다. 적어도 쓸모없던 것에서 쓸모를 찾아내는 눈썰미가 있어야 양아치 일을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못쓰게 된 여러 조각을 이리저리 맞추고 배치하여, 새로운 유용성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니다. 배가 부른 이들은 찾을 수 없는 사물의 연관성을 양아치는 알 수 있다. 좀 더 넓게 본다면 이런 능력은 서양과 동양의 구분을 넘어서 인류 전체의 보다 나은 삶에 기여할 수 있다. 순환되지 않고 멈춰있던 것을 움직이게 하고, 죽어 있던 것을 다시 살려내는 것은 생태계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양아치는 서양의 쓰레기를 뒤지면서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살리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 서양이 무모하게 낭비하는 광경을 똑같이 보면서도 그것을 대하는 자세는 전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원님 행차에 나팔 부는 자”처럼 서양의 낭비를 모방하며 으스대는 자가 있는 반면, 버려진 서양의 쓰레기 속에서 “우리”와 “그들”을 함께 살리는 이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칭 양아치는 자신이 하는 일의 성격과 한계를 알고 있다. 그래서 남들이 피하려고 하는 양아치의 부정적인 의미도 기꺼이 수용하는 것이다.


기회주의자 vs 일탈자


그동안 양아치에 대한 인상이 별로 마땅치 않았던 것은 한편으로 쓰레기를 만진다는 것에서 오는 불결함의 인상,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서양의 위세를 빌어 으스대는 이미지가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양아치는 권력의 부침(浮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원님이 바뀌면 자신의 처지도 보잘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아마도 그동안 저지른 행패가 양아치 자신에게 돌아와 커다란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다. 양아치는 권세가에 붙어있는 얼마동안 어설프게 들떠 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자신이 쓰레기 신세가 된다. 그래서 양아치는 항상 갈아탈 말을 눈치 빠르게 주목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아치가 이런 식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양아치가 기존의 권세에 빌붙어 기생하는 방식을 택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주변성을 활용하여 기존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본다면 새로운 삶을 모색할 수 있다. 기생이 아니라 일탈하는 양아치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양아치의 일탈이 기존의 경계선을 지우고 새로운 영역의 설정을 이루는 데까지 가게 되느냐 아니면 흔드는 척하다가 기존의 것을 더욱 강화하게 되느냐 하는 점은 분명치 않다. 


양아치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그동안 한 쪽 길로만 통행이 많았다. 요즘 자칭 양아치들은 다른 쪽 길로 가고자 한다. 과연 기존 권세에 빌붙지 않는 양아치의 집단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 생긴 것이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건 최근 일은 아니다. 영어 발음 그대로 영화제목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짤막한 글도 쓴 적이 있고, 화장품의 영어투성이 이름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멍해 있기도 했다. 저녁이 “이브닝”으로 문화가 “컬처”로, 여행이 “트래블”, 교육이 “에듀케이션” 등으로 단어가 바뀌는 것에 사람들은 이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비하인드 더 뉴스를 보며, 아이원(I Want) 아파트에서 산다.


일본에는 외국어 표기를 위해 “가타카나”가 있다. 일본은 그런 외국어 표기법과 함께 수용하고자 하는 것의 의미 해석을 위해 오래 고민을 해온 역사가 있다. 요새 우리는 외국어 표기법을 일본의 가타카나 방식 비슷하게 쓰되, 무조건 영어로 환원해 버리고 해석 과정은 편하게 생략해 버리는 상태이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는 영어를 사용해야 하고, 그러면 세계화, 지구화에 동참하는 것이 된다고 보는 듯하다. 문학과 출판계도 점차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분위기인지 슬슬 영어로 덮이고 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우리의 문화적 수용 주체는 찾기 힘들고 고민하는 과정이 사라지고 있다. 이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혹시 북한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북한은 이런 점에서 나름의 주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남한은 북한이 취하는 방향과는 결코 같이 하면 안 되니까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리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래 전에 쓴 양아치에 관한 글이 기억난 것이다. 지금의 우리 신세가 원님 행차에 나팔 부는 양아치로 여겨지지 않길 바란다.


글: 장석만

  1. <불교용어사전: 동냥(動鈴)>, http://studybuddha.tistory.com/606 [본문으로]
  2. "양아치", 네이버 국어사전.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25877100 [본문으로]
  3. Stefan Tanaka, Japan's Orient: Rendering Pasts into Histor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Revised edition, 1995, p. 4.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스테판 다나카, <<일본 동양학의 구조>>, 박영재, 함동주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4. [본문으로]